"실태조사를 통해 산재은폐 실상을 공개하고 나니 산재은폐가 더욱 은폐되고 있다. 예전과 달리 재해자 작업복 명찰을 떼내거나 사복으로 갈아입은 뒤 병원을 방문토록 하거나, 업체 트럭으로 실려 오더라도 2명의 선발대가 먼저 도착해 병원 주위를 감시한 후 후송시키고 있었다."민주노총 울산본부·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등이 함께하는 '울산지역노동자건강권대책위'(아래 대책위)가 지난 9월 9일~16일 실시한 산재은폐 실태조사 결과를 23일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
이번 실태조사는 지난 3월과 5월 2차례 산재은폐 실태조사 이후 3번째이며, 작업 공정상 사고 가능성이 큰 조선소를 중심으로 조사를 벌였다. 특히 민주노총 등은 지난 7월 5일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의 산재은폐 실태 국회기자회견 및 산재은폐 노동부 집단진정을 한 바 있다. 이후 고용노동부 부산청은 7월 15일~19일 5일간 현대중공업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했다.
두 번의 산재은폐 실태 공개와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후 진행한 산재은폐 조사에서는 과연 개선이 있었을까? 대책위는 "노동현장의 산재은폐가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3차 조사를 벌였다"며 "하지만 산재은폐가 더 지능화, 범죄화되는 등 진화되고 있었다"고 밝혔다.
3차 조사에서는 줄어든 산재은폐, 실상은...대책위는 산재은폐 실태 조사를 조선소가 있는 울산 동구 지역에서는 25건, 그외 남구와 북구·중구는 22건 등 모두 47건의 산재은폐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앞서 대책위는 지난 3월 동구지역에서만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106건의 산재은폐를 적발했다. 때문에 이번 3차 실태조사에서는 산재은폐가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대책위는 "이번 조사결과는 산재은폐가 개선된 것이 아니라 더욱 교묘해지고 치밀해져 은폐의 실태가 범죄화, 지능화되고 있었음을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조선소가 있는 동구 지역의 경우 원청과 하청업체, 산재지정병원 모두가 산재은폐의 매뉴얼을 정해 조직적으로 대응하는 등 산재은폐가 날로 진화해 가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예전과 달리 재해자 작업복 명찰을 떼내거나 사복으로 갈아입은 뒤 병원을 방문해 조사 때 소속 확인을 어렵게 하고, 업체 트럭으로 실려 오더라도 2명의 선발대가 먼저 도착해 병원 주위를 감시한 후 후송시키고 있었다"고 밝혔다. 일례로 지난해 9월 17일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가 아침 출근 후 쓰려졌으나 회사 측이 산재를 우려해 119에 신고하지 않고 트럭으로 병원에 데려갔으나 숨지기도 했다(관련기사:
<"사람이 쓰러졌는데... 왜 119 대신 트럭 불렀나">).
대책위는 또한 "재해자가 일하다 다쳤다고 설명해도 병원은 초진기록지에 사고기록을 기재하지 않는 것 역시 횡행하고 있다"며 "이주노동자의 경우 한국말이 서툰 점을 악용해 교통사고로 위장하고 치료를 받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 7월 대책위는 현대중공업의 산재은폐 실태와 관련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한 후 노동부에 집단진정을 했고, 이후 고용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 내에서는 특별근로감독 기간에도 산재은폐가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었다는 것이 대책위의 주장이다.
이들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노보(사내하청노동자 350호)에 따르면, 특별근로감독이 난리법석을 떨던 그 시각, 특수선 그라인더 작업을 하던 노동자는 손가락이 잘려 실려갔고, 건조부 소속 정규직노동자는 발목을, 선행의장부 세원기업 소속 노동자는 손가락 골절 등 수많은 사고가 터졌지만 그 어디에도 산재요양을 한다는 말도, 특별근로감독에 적발되었다는 소식은 없었다"고 밝혔다.
또 이들은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7월 5일 현대중공업 산재은폐 집단진정에서 산재은폐가 적발된 하청업체가 25만시간 무재해 달성 포상을 받는 촌극이 벌어졌다"며 "이 업체는 이전에 3차례 산재은폐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으며, 이번에 2건의 산재은폐가 적발돼 20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앞서 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지난 10월 10일 국감에서 "현대중공업이 2009년~2013년 7월 현재, 산업재해 발생이 낮아져 산재보험료 768억 8000만 원을 감액받았다"며 "현대중공업이 하청업체에서 발생한 산업재해를 은폐하는 경우가 잦다"고 지적했었다.
이에 대해 대책위는 "산재보험료 감액은 현대중공업 내 산재발생이 적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며 "위험작업을 하청업체로 외주화하고, 하청업체는 산재발생시 원청과 계약연장을 할 수 없어 사고발생을 숨겨야 하는 구조 때문으로, 노동자의 희생과 고통의 대가가 자본의 천문학적인 이익으로 되돌아가는 악순환의 결과"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산재은폐가 심각해지면 질수록 노동현장의 안전은 더욱 위험해지고, 그 모든 이익은 자본의 이익으로 귀결된다"며 "이제 이 절망적 악순환의 고리는 노동자들의 단결투쟁으로 끊어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책위는 이번 산재은폐 3차 실태조사 결과를 모아 산재은폐 집단진정을 진행하는 한편 울산고용노동지청 국정감사에 적극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지난해 울산지역 산재 사고자는 모두 2668명이며, 이중 73명이 숨졌다. 이는 지난해 12월 발생한 울산신항 공사 때의 선박전복사고(석정36호사건) 사망자 12명을 산재 사망에서 제외한 수치다. 이같은 지난해 산재 사망자 73명은 2008년 59명, 2009년 58명, 2010년 60명, 2011년 64명에 비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라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