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을 배달시켜 먹고 싶을 때, 여러분은 주로 몇 시에 와 달라고 주문을 하나요? 물론 답은 먹고 싶을 때이겠지요? 아마도 점심시간이 가장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오후 4시에 자장면 배달을 주문해 보려고 합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전에 계획하여 자장면 간식을 먹어보려고요. 왜냐고요? 제 코 끝을 찡하게 한 그를 다시 한 번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가을데이트에서 만난 10만인클럽 회원들제가 그를 만난 것은 지난 21일, 월요일 오후 7시였습니다. 저는 요즘 가을데이트 중입니다. 가을 햇볕 곱게 내려앉은 서교동 마당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1시간짜리 데이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오늘(24일)이 4일째인데 내일까지 이어질 예정입니다. 자장면을 핑계 삼아 다시 만나고픈 그도 제가 만난 가을데이트 파트너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가을데이트에서 저는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신혼부부, 두 아이를 둔 엄마, 결혼을 꼭 해야 하나 고민 중인 30대 여성, 세상 돌아가는 것이 답답해서 찾아왔다는 40대 은행원,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진달래술을 담가 온 50대 여성, 공무원사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공무원, 직원들과의 더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해보고 싶은 중소기업 사장님까지.
이들은 나이도 직업도 다르지만 두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오마이뉴스>에 월 1만 원씩 '자발적 구독료'를 내는 10만인클럽 회원들이라는 점입니다. 또 하나는 정의로운 사회,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뭔가 동참하고 싶은 분들입니다.
출판사 경력 4년인 한 30대 여성은 저와 인사를 나누자마자 웃으며 이렇게 묻습니다. "대표님, 왜 이런 시간을 가지시는 거예요? 궁금해요. 참 바쁘실텐데…." 저는 답합니다.
"가을이잖아요. 가을엔 사랑하는 사람, 고마운 사람을 만나고 싶잖아요. 저는 10만인클럽 회원들이 참 사랑스럽고 고맙습니다. <오마이뉴스>가 여러모로 부족한 것도 많은데, 그래도 이런 대안언론이 더 성장해야한다면서 꼬박꼬박 월 1만 원씩 자발적 구독료를 내주시니…." 가을데이트답냐고요? 이거 하기 참 잘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1사람 당 1시간이니 하루에 최고 열두 사람과 데이트를 하는데요, 아직 피곤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당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동네 골목길을 걷기도 하고, 인근 공원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낮 12시, 오후 7시에 만나는 사람과는 식사도 함께 하지요. 물론 인증샷도 찍습니다. 오늘은 배드민턴도 쳐볼까 합니다.
6개월간 하루도 쉰 적 없다는 배달원 노성출씨
다양한 세상과 만나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인생이란 참 간단치 않구나. 왜 결혼율과 출산율이 점점 낮아지는지, 30대 싱글들과 이토록 절절하고 생생하게 이야기를 나눠본 건 처음입니다. 그러면서도 희망을 발견합니다. 불안하고 위태위태한 삶 가운데서도 그들은 왜 개인에 매몰되지 않고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고 있는가? 저는 정의를 향한 그 마음의 출처가 몹시 궁금해 묻고 또 묻습니다. 물론 데이트 분위기를 깨지 않는 범위 안에서.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왔습니다. 서교동 마당집은 망원역 1번출구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있으니까 대부분의 가을데이트 파트너들은 전철을 타고 옵니다. 그런데 그는 뒷자석에 배달용 플라스틱 상자 두 개가 장착된 오토바이를 타고 왔습니다.
노성출씨. 40대 중반인 그는 중국집 배달원입니다. 울산에서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포클레인, 지게차 등 장비를 운전했던 그는 서울로 올라와 남대문 시장에서 8년간 자장면 배달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마포구 중동 청구아파트 후문에 있는 '남경'이라는 작은 중국집의 사장이자 배달원입니다. 직원은 주방장 한 명과 자기뿐이랍니다. "요즘 중국집들이 대부분 잘 안 되니까 매우 싸게 매물이 나와서 6개월째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에겐 주말이 없습니다. 지난 6개월간 단 하루도 쉰 적이 없다네요. 매일 오후 9시에 퇴근하는데 이날만 저와의 가을데이트를 위해 오후 6시 30분에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6개월만의 첫 조기 퇴근. 저와의 데이트가 그토록 중요한 것이었을까요? 저는 다소 긴장하고 있는데 그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합니다.
"인생은 선택이죠.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는 버려야죠. 좋은 말 들으러 왔습니다."대화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 언제부터 10만인클럽 회원이 되었는지요?"저도 기억이 안 납니다. 너무 오래 돼서, 그냥 자동이체로 매달 나가는 거니까…."(확인해보니 그는 2005년 8월부터 줄곧 회원이었고 98회를 자동이체 했더군요)
- 중국집 배달원이었으면 월급이 많지도 않았을 텐데 월 1만 원씩 낸다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았나요?"방송도 다 막혀 있고, <오마이뉴스>가 내게는 소중한 숨통입니다. 사정만 되면 더 많이 내고 싶어요. 이 시대를 사는 소시민으로서 어려워도 1만 원은 기꺼이 내야죠. 앞으로도 계속 우리 같은 사람에게 힘이 되어 주세요."
노성출씨는 요즘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목마르다"고 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때, 노무현 대통령 때는 "왠지 기분이 좋았는데" MB정부가 들어선 후부터는 "텔레비전도 보기 싫어졌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지금은 "외로운 섬에 사는 듯이 답답하다"고 합니다.
- <오마이뉴스>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제가 지금 40대 중반입니다. 불혹(不惑, 미혹되지 않는다)의 나이인데 살다보면 너무 많이 흔들려요. 비참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도 흔들리더라고요. 더 많이 배우고 싶어요. 50세는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뜻을 안다)인데, 50이 되는 것이 불안합니다. 배움이 절실해요. <오마이뉴스>가 좋은 기사를 많이 써서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길을 제시해주면 좋겠어요."
오후 4시에 자장면 시키려는 이유
그의 말을 들으니제 어깨가 참 무거워졌습니다. 그리고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저는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평소에 궁금했던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 중국집 배달원도 자장면을 먹나요?"먹지요. 점심 때 자장면 주문한 손님이 배달이 늦는다고 막 화내면서 취소해 버릴 때가 있습니다. 두 그릇 시켰는데 잘못 알고 세 그릇 배달한 후 다시 한 그릇 들고 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 것을 한쪽에 둡니다. 점심 때는 한참 배달하느라 정신없이 바쁘니 먹을 수가 없고 한가한 시간이 되면 그때 그것을 먹습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서 많이 불어져 있긴한데…. 뜨거운 물을 부어서 처리합니다."
불어터진 자장면을 뜨거운 물을 부어서 먹는다. 저로서는 상상해본 적이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오마이뉴스>를 위해 월 1만 원을 꼬박꼬박 자동이체 시켰다니…. 저는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그의 어깨를 와락 얼싸 안았습니다.
노성출씨는 약 1시간 동안 저와 이야기를 나눈 뒤 서교동 마당집을 나섰습니다.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골목길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습니다.
4일이 지났습니다. 오늘 다시 그를 봅니다. 오후 4시 그가 자장면이 든 철가방을 들고 올 것입니다. 그의 중국집은 마포구 중동 청구아파트 후문에 있는 남경이고 서교동 마당집과는 오토바이로 약 10분 이내 거리입니다. 왜 그 시간이냐고요? 그가 가장 한가한 시간에 배달을 오면 좀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는 제 욕심 때문입니다.
그는 "노래가 지친 나를 위로해준다"면서 "노래가 없었으면 못견뎠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저는 속으로 '그런 노래같은 <오마이뉴스>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따가 그가 자장면을 배달해오면 함께 노래 하나를 불러보고 싶습니다. 무얼 부르면 좋을까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