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바깥바람을 쐤다. 우리 북교동교회 행복한 노인대학 학생들과 함께 가을 소풍을 떠난 까닭이다. 신선한 가을바람이 물씬 풍겨왔다. 가을 단풍을 맛보기 위한 길목이었지만 아직 완연한 물결은 이루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풋풋한 가을 정취는 사라지고 오색찬란한 가을빛이 온 산과 들을 수놓을 것이다.
고창 선운사가 바로 그 길목이었다. 목포에서 그곳까지 1시간 반이 못 미치는 거리다. 비록 짧은 하룻길이었지만 어르신들이 가을 콧바람을 쐬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곳을 향하는 첫걸음부터 입이 즐겁다. 어느 권사님 딸이 자신의 부모님과 함께 한 80여 명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에게 맛난 간식거리를 제공한 까닭이다. 사과와 포도, 바나나와 떡이 들어 간 작은 상자에도 온갖 정성이 다 들어간 것 같았다.
목포 나들목에 진입하기 전이었다. 웬일인지 벌써부터 차 안이 시끄럽다. 메들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한 어르신이 노랫가락을 청하면 그 다음 어르신이 이어받는 순이었다. 중간에 곡조가 끊기면 다른 분이 그 가락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 덕분에 나는 졸음운전을 피할 수 있었다.
총무가 어르신들에게 모임을 알리는 호루라기를 부른다. 할머니들은 곧잘 따라 모이는데 할아버지들이 문제다. 두세 번 모임 나팔을 울려야 삼삼오오 모여든다. 집 안에서 드러내던 무게감을 집 밖에도 드러낼 모양일까? 할머니들 앞에서 폼이라도 잡아 볼 요량이라 그러는 걸까?
곧이어 응원과 함께 재미난 게임이 시작됐다. 이른바 요구르트 빨리 빨아 먹기가 그것이었다. 진행 총무는 어른 학생들을 두 팀으로 나눠 진행했다.
할머니들이 먼저 두 명씩 앞에 섰고, 할아버지들이 그 뒤를 이어받았다. 어떤 할머니는 요구르트의 뒤꽁무니를 치켜세우고 빨아 먹고 있었다. 답답해서 그런지 그 옆의 할머니에게 말을 건넨다.
"왜 이렇게 요구르트가 안 나온당가?"""나도 몰러. 뭣땜시 그러는지. 한 번 잘 해 보랑께." 승부욕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요구르트가 잘 안 나온 탓이었을까? 중간에 요구르트를 빨아 먹다가 휙하니 쓰레기 봉투에 던진 어르신들도 있었다. 어쩌다 그런 모습이 상대편 할아버지의 눈에 띄면 금방이라도 항의하고 나섰다.
그 게임 뒤로 풍선 굴리기가 시작되었다. 평소에는 허리가 구부정하던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그 시간만큼은 허리가 자유자재로 구르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게임 앞에서는 나이는 오간 데 없었고, 오직 승부욕만 강하게 되살아났다.
곧이어 시작된 점심식사 시간. 와우, 먹을 게 풍성했다. 목포 음식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홍어 삼합에다 고소한 된장국 맛이 일품이었다. 그 옆에는 간식거리 봉지가 보인다. 떡에다 바나나와 사탕에다 물까지 풍성했다.
오후 1시부터 2시 30분까지 드디어 자유 시간이 시작됐다. 움직임이 불편한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는 빼놓고 다들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산행을 한다. 선운사까지 잰 걸음으로 20분이 충분하다. 그 뒤편 언덕배기 길로 오래된 옛 절이 똬리를 틀고 있다지만 거기까지는 기운이 못 미치는가 보다. 다들 가까운 사찰 천왕문 앞 구름다리를 건너 돌아오는 코스를 택한다.
나도 점심 먹던 자리를 정리하고 뒤따라 올랐다. 온갖 낙엽들이 땅 위를 걷는 것 같다. 아니 땅 위를 구르는 것 같다. 덩달아 내 몸과 마음도 땅 위를 걷고 구른다. 구름다리 아래로 흐르는 냇가에 가을 나무들이 풍덩풍덩 빠져 있다. 내 몸도 그 물속에 빠져든다. 내 마음이 한결 가볍고 시원해진다.
어느 여행길이든 꼭 늦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오늘 우리들의 행복한 노인대학에서도 세 명의 어르신이 늦게 돌아오는 바람에 시간이 20분 넘게 지나고 말았다. 그래서 그랬을까? 차 안에서 다들 노래 한 자리씩 다시 뽐낼 줄 알았는데, 스르르 곤히 잠에 빠져든다. 자식들과 손주 녀석들이 꿈속에 아른거렸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