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 e시민기자'는 한 주간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린 시민기자 중 인상적인 사람을 찾아 짧게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인상적'이라는 게 무슨 말이냐고요? 편집부를 울리거나 웃기거나 열 받게(?) 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편집부의 뇌리에 '쏘옥' 들어오는 게 인상적인 겁니다. 꼭 기사를 잘 써야 하는 건 아닙니다. 경력이 독특하거나 열정이 있거나... 여하튼 뭐든 눈에 들면 편집부는 바로 '찜' 합니다. 올해부터 '찜e시민기자'로 선정된 시민기자에게는 오마이북에서 나온 책 한 권을 선물로 드립니다. [편집자말] |
10여 년 전 나는 캄보디아를 찾았다. 아니, '앙코르 왓'을 보러 갔다고 하는 게 맞겠다. 정식 국명보다는 '앙코르 왓'으로 더 유명한 나라, 캄보디아. 한국산 중고 버스를 타고 비포장 황톳길을 반 나절 달려 도착한 앙코르 왓은 그간의 고생스러움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온 듯한 고대 제국의 사원은 나를 사로잡았다. 그 황홀감에 그 후에도 한 번 더 그곳을 찾았다.
물론 한국인 여행자들이 꼭 들른다는 '평양랭면' 집도 갔다. 외화벌이를 위해 열국으로 온 어여쁜 북측 여성과 사진도 찍었다. 숨쉬기도 힘든 더위와 밀림 속 고대 사원은 캄보디아에 대한 어떤 고정관념을 만들었다. 시간이 멈춘 나라, 캄보디아. 아직 그 나라는 앙코르 제국이 번성하던 그 시절을 사는 듯했다.
그래서일까. 박정연 시민기자의 기사를 봤을 때 의구심이 들었던 건. 캄보디아에 뉴스거리가 있을까, 그것도 한국에 있는 독자들이 흥미를 보일 만한 뉴스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기자의 생각과는 달린 캄보디아발 소식은 계속해서 <오마이뉴스>에 날아들었다. 아래는 박정연 시민기자와 나눈 이메일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 박정연 시민기자 기사 보러 가기북한식당은 조미료 안 쓴다? 사실은...
- 캄보디아엔 어떻게 해서 자리를 잡게 되셨나요?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무렵 배낭여행을 왔던 게 인연이 돼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국제행사 대행업무와 교민잡지사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연말까지 약 4년간 한인회 사무국장 일도 했습니다."
- 캄보디아 하면 '앙코르 왓'이 생각나는데요, 캄보디아는 어떤 나라인가요?"앙코르 왓을 떠올리는 분도 많지만, '킬링 필드'로 기억하는 분도 상당수입니다. 지난 70년대 내전(킬링 필드)을 겪으며 무려 20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여전히 전쟁의 상흔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은 1000불 안팎이고 훈센 총리가 28년째 장기집권중인 독재국가입니다.
많은 분들이 공산국가라고 오해하시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공산국가인 때는 폴 포트가 이끌던 민주캄푸치아 시대 4년과 베트남 점령기 10년을 포함, 15년 남짓이었습니다. 지금은 매년 6~7%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 중이며 곧 석유도 시추될 예정입니다. 정치가 안정되고 부패지수가 낮아지면 삶의 질도 개선될 것이라 봅니다."
- 최근 캄보디아에 있는 북한식당 기사를 쓰셨는데요. 독자들 반응이 어땠나요?"한국에선 북한식당이 흥미로운 소재임엔 틀림없지만, 북한식당이 다섯 군데나 있는 캄보디아에선 솔직히 별로입니다. 보다 북한식당 속사정에 대해 잘 아는 교민들도 많습니다. 교민사회에서는 제 기사가 조금은 식상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달린 댓글을 보고 웃었습니다. 북한식당 음식맛이 별로라며 화학 조미료를 쓰지 않기 때문이라는 내용이었는데요, 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간 북한식당 주방 한가운데에서 우리나라 회사 로고가 선명한 화학조미료 봉지를 목격하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웃음).
북한식당에서도 우리나라 식재료를 많이 씁니다. 평양소주 대신 참이슬 같은 소주나 하이트 같은 한국맥주도 팝니다. 북한의 유명한 '룡성맥주'도 10년 전엔 마실 수 있었는데, 단가가 낮다 보니 물류비 빼면 남는 게 없어서 현지의 앙코르 맥주나 한국 슈퍼에서 납품받은 한국맥주를 내놓습니다. 한국 식자재나 주류는 우리나라 교민이 운영하는 슈퍼에서 공급받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나름 남북한 교역이 이뤄지는 셈이죠. 몇 년 전 남북관계가 냉랭해졌을 때 한인회가 교민슈퍼에 북한식당에 식자재를 주지 말라고 요청했는데 주인이 묵살해 버린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 실제 북한 사람을 만나면 어떤가요?"북한 사람들을 만난 사람들이 다들 하는 말이 '그들도 우리랑 똑같습니다'입니다. 물론 동감합니다. 말도 같고 생김새도 비슷하니까요. 하지만 대화를 길게 나누다 보면 반 세기 분단이 만든 이질감은 어쩔 수 없습니다. 자주 대화를 나눈 편이긴 하지만, 항상 대화 끝엔 남한 사람들에게 뭔가 자신들의 생각이나 이념을 주입하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두 번 정도 북한식당에 들른 관광객들이 느끼는 감정이나 소회와는 전혀 다르죠. 언젠가는 하나가 되어야 할 같은 민족이지만,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큰 벽이 있는 것을 실감합니다. 물리적 통일에 앞서 그 큰 벽을 허무는 일이 선행되어야겠죠."
- 남북관계가 경색되면 교민사회도 뒤숭숭해질 것 같습니다. "남북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교민사회에서도 가장 중심에 있는 한인회가 제일 먼저 반응합니다. 전 세계의 수백여 개 한인회가 모두 같은 생각을 가질 순 없겠지만 대부분의 한인회가 보수적인 성향을 띱니다. 그동안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사건 때마다 한인회가 중심이 돼 규탄성명서도 발표하고 현수막도 내걸며 북한식당 불매 운동도 벌였지만, 솔직히 시큰둥하게 바라보는 교민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북한식당에서 냉면 한 그릇 팔아준다고 해서 북한에서 무기를 얼마나 사들이겠냐는 거죠. 이렇듯 우리 교민들도 각자의 생각이 달라 놀랄 때가 있습니다."
캄보디아 기사 90%는 봉사·원조... 잘못된 팩트도 많아 - 캄보디아가 아시아에서도 주목받는 나라가 아니다 보니 기사가 딱 와닿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기사를 쓰면서도 힘드셨을 것 같은데... "캄보디아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다 보니 제가 쓴 글이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을 때도 종종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편집하는 입장에서는 기사 내용이 사실인지부터 검증해야 하는데, 정보가 부족하니 제대로 확인할 방법이 없죠. 이미 나온 외신 기사를 통해 입증 가능한 사건사고가 아니면 편집부 입장에서 망설여지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좀 속상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 주위 교민분들은 뭐라고 하시나요?"기사가 나갈 때마다 종종 전화를 받습니다. 한국에 사는 가족들도 처음엔 전화를 하더니 요즘은 시큰둥해졌네요(웃음). 제가 기사 쓴 걸 보고 자기도 시민기자가 되겠다며 조언해 달라는 주변사람이 몇 명 있습니다. 어설픈 조언을 몇 마디 해주긴 했는데 실제로 실행에는 옮기지 못하는 것 같더군요."
- 캄보디아 관련 보도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캄보디아에서 중요한 사건이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저는 어김없이 찾아갑니다. 그곳에 가면 수백여 명의 외국기자들이 진을 치고 열띤 취재를 합니다. 중국 기자들도 십여 명 이상 되고, 일본 기자들도 눈에 많이 띕니다. 하지만 한국기자들은 눈을 씻고 찾아도 볼 수가 없습니다.
현장 취재 없이 번역해서 옮기다 보니 잘못 번역된 기사도 나올 때가 많고... 현지에서 보면 오류투성이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정확히 지적해줄 분석가들이 한국엔 전무하다 보니,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잘못된 정보나 기사가 결국 한국에선 '팩트'로 인정받게 되는 셈이죠. 또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캄보디아 기사의 90% 이상은 원조나 봉사활동에 관한 기사일 겁니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캄보디아 현지에 진출하려는 기업이나 현지 정보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은 여기저기 나온 잘못된 정보와 기사로 오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오마이뉴스> 지면에서 개선할 점이 있다면요. "생생한 현장 사진 위주로 국제사회뉴스를 좀 더 비중있게 다뤘으면 합니다. 요즘은 세대가 바뀌어 원고지 10장이 넘는 기사는 젊은 독자들은 거의 읽지 않습니다. 포토 뉴스 코너도 보강해서 '포토&이슈' 같은 코너를 만들어서 사진과 몇 줄의 설명만으로도 뉴스가 되게 하면 어떨까 합니다.
저도 캄보디아의 국가 중대사나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현장에서 찍은 사진 수백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에 이런 코너가 없어 그냥 컴퓨터 하드에 저장되는 게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이 로이터나 AP가 타전하는 것보다 더 좋을 때도 많은데 말이죠."
- 앞으로 쓰고 싶은 기사가 있다면요."캄보디아 현대사에 대한 연재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킬링 필드 등 캄보디아 현대사를 보면 우리나라와 매우 흡사한 면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유사한 정치적 상황을 비교하면 재미있는 글이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킬링 필드의 장본인이었던 폴 포트에 대한 인물연구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몇 년 정도 자료를 더 보충하고 세상에 대한 이해와 내공이 쌓이면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물론 편집부가 기사를 올려 줄지가 제일 먼저 고민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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