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너무 가까이 붙었다. 급정거에 차안에 있던 장난감 상자가 와당탕 굴러 떨어졌다. 오만가지 생각이 번쩍 번쩍 했다.
'차가 부딪힌 소리가 아니야. 장난감 소리야. '나도 모르게 사방 거울을 통해 주변의 사람을 확인했다. 아무도 없었다.
'내려서 확인하면 차를 긁지 않았어도 누군가에게 의심을 받을지 몰라. 부딪혔다면 소리도 나고 느낌도 있었을 거야. 내가 그렇게 둔하지 않아. 맞아. 음... 그저 가까이 붙었을 뿐이야' 그리고 살짝 후진을 한 후 코너를 돌아 내 길을 갔다. 정말 민첩하고 재빨랐다.
'씨씨티비가 있다면 어쪄지? 아냐 큰 사고도 아닌데 누가 씨씨티비를 확인해? 살짝 긁힌 건 주인도 모를거야. 나도 그렇잖아. 어느 날 보니 차에 흠집이 나 있었잖아. 괜찮아.' 아!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남의 차를 긁어 놓았다는 것을. '아닐거야. 장난감 소리였어'라는 생각이 '걸리면 어쩌지?'의 생각으로 변했다는 것은 내가 부정하고 싶은 일을 내가 저질렀다는 증거였다. 7~8분의 도착 시간 동안 나는 나의 추악한 모습을 확인했다.
요즘 꿈을 통해 무의식을 보며, 나는 당당하다. 무서운 것이 없다. 나의 평소의 모습을 내가 자랑스러워하며 거침없는 나에 반해 황홀해 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다 것짓이었나?
겨우 요것밖에 되지 않으면서 시내버스, 벨을 누르고 기다리던 동남아 외국인을 무시하고 정류장을 지나치던 버스기사에게 "아저씨! 우리가 40년 전에 외국에서 이런 설움을 당했어요. 이게 뭡니까? 빨리 버스 세워주세요! 타국에서 저분이 얼마나 서럽겠어요. 우리가 이 사람들을 이렇게 대해서야 되겠습니까! 어쩌구 저쩌구~~~~" 이랬던 것도.
놀이터에서 신나게 노는 아이들을 이상한 궤변으로 야단치던 아주 깔끔하지만 가식적 교양처럼 보이던 노인에게 "무슨 말씀이세요? 남에게 피해가 없다면 놀이터에서는 신나게 놀아야 야생을 배우고 사회성을 배우는 거예요. 그네는 강철로 만들었기 때문에 꽈배기 하고 놀아도 돼요! 모래를 차면 어떱니까, 아무도 없는데. 왜 애들을 야단치세요? 마음에 안드시면 애들 엄마에게 얘기하시지 6살배기 어린 아이들에게 뭐라고 하시는 겁니까?"이러던 나도, 내가 가해자가 되었을 때는 어떻게 하면 책임을 피할까 어떻게 하면 아무도 모르게 덮을 수 있을까 비겁해지는 모습밖에 없었다. 남의 일엔 정의의 사도인 양 거품을 물고 대변하다가도 내 일이 되었을 때 나는, 나는 가식 덩어리였다.
집에 도착해 차를 확인했다. 명백했다. 하얗게 긁힌 자국, 찌그러져 들어간 앞 범퍼. 내 차는 살짝 긁힌 정도보다 그 정도가 심했다. 이런 상태인데도 나는 '아닐거야 아닐거야'를 속으로 외쳤다. 그 상처를 보며 나는 나를 보았다. 나는 뭔가? 내가 그동안 자랑스러워 했던 나는 다 어디로 갔을까? 이 차의 상처가 남에 의해 난 상처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에 이르자 입장이 확 바뀌었다. 누군지 모를 그자를 욕하기 시작했다. 피해자가 된 나는 다시 착해지고 내가 욕하는 그 자는 응징받아야 할 나쁜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바로 나였다. 너무 속-상-했다.
유치원에서 온 아이를 받아 실내 놀이터에 데려다 놓은 후 나는 사고의 현장으로 되돌아갔다. 되돌아 가는 10여분, 그 자리로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 차량이 제발 그 자리에 있기를. 이 얼마나 속상할까? 그 사람의 슬퍼하는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화가 난 얼굴, 나를 속죄해 줄 사람.
남의 차를 긁고 도망쳐오느라 정신이 없었는지 그 피해 차가 흰색이라는 것만 생각날 뿐 정확한 위치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곳이라고 생각했던 첫 번째 자리에 흰색 차량이 있었지만 내가 차로 부딪힐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 차를 세워 놓고 내 차의 진행방향이었던 길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길의 끝 코너 옆에 흰색 차가 있었다.
앞부분의 긁힘 자국, 방금 생긴 상처의 흰색 가루. 맞았다. 아직 그 차가 거기 있었다. 차 주인은 자신의 가게 앞에 차를 주차해 놓았던 것이다. 30대중반의 매끈하고 통통한 얼굴의.
나는 이 사람의 얼굴을 보며 사기꾼일까 정직한 사람일까 또다시 내 온 감각을 동원하여 찰나의 탐색을 했다. 내가 왜 그 사람의 인격에 신경을 썼을까? 여자 운전자인 나는 아무래도 내가 피해입힌 이상의 변상 요구나 험한 사람을 만나면 어쩌나 하는 약간의 걱정을 하면서도 피해를 입혔고 뺑소니쳤다 하더라도 무조건 변상이나 사죄가 아니라, 내가 피해준 만큼만의 변상만을 생각한, 이기적인 그래서 너무나 인간적인-나는 그러므로 인간이 완벽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나를 보며 나의 행위를 피해자에게 사실대로 고백했다. 뺑소니쳤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이야기까지.
그리고 얼마의 현금으로 잘 해결되었다.
오늘 나는 아주 싼값으로 큰 수업을 받았다. 사고의 순간 사실 난 법륜스님의 팟캐스트 강좌를 들으며 다음 강좌듣기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운전이라는 버려지는 시간, 강좌 듣기 매력을 버릴 수가 없던 나는 운전 중 핸드폰 조작을 끊을 수가 없었다. 그날 아침에도, 알콜중독자의 단주 결심처럼 나는 운전중 핸드폰 조작을 말아야지를 굳게 결심했었다. 그리고 사고가 났다.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핸드폰으로 인한 사고였고, 만일 그 자리에 사람이 서 있었다면 나는 인사사고를 내는 엄청난 일을 저질렀을 것이다.
아프게 배웠다. 불에 대였으니 이젠 불을 안 만진다. 나는 깨지며 배우는 사람이다. 더 아픈 배움 하나, 남에게 주는 상처는 대부분 고의로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 의지로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아주 당당해 했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일. 어떤 것이 마음 먹은먹은 대로 되겠나? 내가 남을 아프게 할 수도 있고 내가 비겁해 질 수도 있는 것을 알았다. 나는 또 깨지며 배운다.
나의 머리로 발로 손으로 저질러 놓은 시커먼 내 자식을, 결국엔 나를, 그 나를 어떻게 대해주느냐에 따라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는지를 오늘 절절하게 배웠다. 법륜스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