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가다가 눈에 띄는 현수막 하나. 거기엔 '2013 울산동구 사회복지 박람회'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지난 26일(토)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장소는 동구청 앞 마당 일원에서.
요즘 들어 곳곳마다 뭔 박람회니 축제니 하는 행사를 많이 하는 거 같습니다. 아마도 지자체가 뿌리를 내리면서 지역 공동체 사업의 일환으로 그런 행사들이 줄을 잇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그건 또 뭐하는 내용일까?'하는 궁금증이 생겨 가보기로 했습니다. 그냥 박람회면 별로 관심을 안 가졌을 텐데 '복지박람회'라고 했습니다. 저는 복지사회, 복지국가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마침 토요일이라 다른 일정이 없는 관계로 시간도 비어 있었습니다. 더구나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복지박람회를 한다는데 안 가보면 섭섭할 거 같았습니다.
오전 9시 30분경 동구청에 도착했습니다. 건물 중앙 2층 입구엔 '행복한 변화 주민과 함께하는 동구'라는 문구가 주황색 천에 적혀 있었습니다. 행사장은 동구청 옆 종합복지센터 건물 앞 마당에 있었습니다. 수십여 개의 천막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습니다.
희망복지지원단, 건강상담, 가정폭력, 성폭력 예방캠페인, 인권상담, 자활센터, 사회적기업, 자활센터, 노인복지시설, 비정규직센터, 먹거리장터, 어린이용품 바자회... 많은 부스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동구지역에서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시는 대표들이 진행을 의뢰해서 동구청과 지역 기업이 함께 협조를 얻어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지역민들이 우리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회복지시설이 무엇무엇이 있는지도 알려보고 싶었고, 어떤 내용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도 경험해 보게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행사장을 점검하는 동구지역자활센터를 운영하는 김용식 대표에게 잠시 물어보니 그같이 대답해 주었습니다. 김 대표는 동구복지협의체 공동위원장을 맡아 이번 복지박람회를 추진한 주요 인사였습니다. 거기에 동구청장도 공동대표로 이름이 올라 있었습니다.
사회복지박람회 선전물을 보니 동구 관내 사회복지시설은 종합복지관과 지역자활센터, 여성, 다문화, 청소년, 노인, 장애인, 아동으로 구분하여 모두 34개 시설이 있습니다. 그날 박람회에 참여한 부스는 30여 개나 되었습니다. 다양한 사회복지시설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도록 부스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행사장 입구에선 행운권도 나누어 주고 있었습니다.
행사는 오전 10시부터 진행했고 개막식은 오전 11시에 열렸습니다. 행사장엔 지역 대표와 시민들이 모두 3000여 명이 참석했다고 주최 단체가 밝혔습니다. 어르신도 많이 오시고, 앞을 보는 게 불편한 사람들, 듣는 게 불편한 사람들, 활동이 불편한 사람들, 서서 다니는 게 불편한 사람들과 다문화 가정, 어린이, 청소년, 여성, 남성 참 많이도 와서 북적거렸습니다. 식전행사에 이어 개막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동구는 기업복지와 노동자 복지 수준은 최고 수준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직 지역복지는 걸음마 수준입니다. 이제부터 지역복지도 튼튼히 세워야 합니다. 아동, 청소년, 어르신, 다문화 가정, 편부모 가정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입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존중 받아야 행복하게 살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모두가 존중받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힘모아 나갑시다. 다양한 복지시설에 대한 정보와 그 복지시설이 우리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 오늘 잘 체험하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동구복지협의체 공동대표인 김용식 대표가 나와 대회사를 했습니다. 이어 김종훈 동구청장도 나와 격려사를 해주었습니다.
"박람회 입구를 통과하는데 '희망 퐁퐁, 나눔 팍팍'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습니다. 인심 팍팍 쓸 거 같은 문구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새벽부터 행사장 만드느라 수고하시는 많은 분들을 보았습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사회복지 해나가는 데 힘이 됩니다. 둘러보면 어려운 이웃이 많습니다. 장애 가족이 2만여 가구나 되고 동구민 대비 12%나 된다는데 놀랐습니다. 배려, 존중, 함께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갑시다."개막식이 끝나고 개막 퍼포먼스로 떡 커팅 행사를 했습니다. 개막식이 끝나자 무대 위에선 발표회를 했습니다. 젊은 사회자가 행사를 이끌었습니다.
"오늘 사회복지박람회에 오신 여러분, 반갑습니다. 서른여 단체에서 체험행사장도 마련해놓고 발표회가 다 끝나면 행운권 추첨도 있으니 모두 즐겁게 관람하시다 행운도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무대에서도 다양한 공연이 진행되었습니다. 동구어린이합창단, 청소년비보이, 참사랑앙상블, 다함께 차차차, 리틀모짜르트를 위하여, 영남사물놀이, 오카리나, 풍물, 한얼춤사위, 수화, 댄스, 우즈베키스탄 전통춤, 청소년 댄스가 무대에 올려졌습니다.
단체에 소속된 일반인도 무대에 올라 공연을 선보였지만 대부분 복지단체에서 감각을 유지하고 키우려 배워온 장애인들이었습니다. 몸 움직임이 불편한 장애 어린이가 무대에 올라 몸짓 공연을 하기도 했고요. 귀로 듣는 게 불편한 분들은 노래에 맞춰 수화로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분들 일곱 분이 무대에 올라 오카리나를 여러 곡 연주한 공연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우리는 만질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우리는 숨쉴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이렇게 아직까지 살아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어느 장애인이 무대에 올라 처음 들어보는 노래를 부를 땐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습니다. 그 분들은 모두 그 몇분간의 무대공연을 위해 지난 여름 몇개월을 연습에 연습을 했을 것 입니다. 지적장애인, 청각장애인, 시각장애인, 휄체어에 앉아 일어설 수 없는 장애인들이 무대에 올라 꾸민 공연은 이세상 그 어느 공연보다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공연이 모두 끝나고 행운권 추첨을 준비하는 동안 부스를 한 바퀴 돌아 보았습니다. 어느 곳엔 시각장애인이 안마 시연회를 하기도 했고 어느 곳엔 어르신들 즉석에서 이·미용 서비스도 해주었습니다. 무료로 사진 찍어 즉석 인화해 주는 곳도 있었고, 장애체험 부스도 있었습니다. 행운권 추첨이 시작되었고 쌀과 전기요 같은 생활용품을 추첨으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추첨에 당첨되어 상품을 받아갔지만 저는 아무것도 당첨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박람회 일정이 끝나고나서 곧바로 동구노인요양원으로 찾아갔습니다. 그곳 직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동구청에 뭔가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사회복지박람회인데 그분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다못해 지역 아동센터 관련자도 와서 축제를 함께 즐겼는데 그분들은 왜 아무도 나오지 않고 부스도 없는지 궁금했습니다. 행사장에서 받은 선전물에도 관내사회복지시설 현황에 등록되어 있었는데 관련자가 안 보이니 무슨 일이 생겼나 싶었습니다.
남목에서 내려 당고개 쪽으로 10여 분 걸어 올라가다가 왼쪽 산아래 동구노인요양원 건물이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도 인기척이 없는 조용한 곳이었습니다. 건물 앞 주차장엔 현수막 하나가 바람에 춤추고 있었습니다. 입구 안을 보니 어느 어르신 가족이 오셨는지 시끌벅적했습니다. 노조 티를 입은 중년 여성을 불러 이야기를 들어 볼수 있었습니다. 오늘 박람회가 있었는데 왜 참여하지 않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런 게 있었나요? 우린 몰랐어요. 아직 가타부타 말이 없어요. 지난 7월에 이미 해지원을 동구청에 제출한 상태구요. 심의를 거쳐 결과가 나오려면 6개월 가량 걸린다고 해요. 원장은 몸이 아파 안나온다 하구요. 우리가 점심 때 3분 정도 구호와 파업가를 부르는데 동구청 복지과에서 우리가 그래서 원장 몸이 아파 안 나온다고 해요. 그러니 노래와 구호를 하지 말라네요? 동구청에선 지금 위탁할 착한 재단을 알아보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우린 단호해요. 착한재단이고 뭣이고 믿을 수 없어요. 우린 그냥 동구청에서 직접운영하라는 겁니다. 아무리 착한재단이라도 업자를 세워두면 지금처럼 비리가 생길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됩니다. 우리는 새는 돈 막고, 개인 잇속 챙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요양중인 어르신들께 의식주가 평등하게 돌아가게 됩니다. 그동안 이 복지기관의 복지가 얼마나 엉망이었는데요. 우리 식대까지 착복해가니 말 다한 거죠. 우리가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하는 것은 그런 이유입니다."동구노인요양원은 울산동구 복지기관으로 등록된 곳이었습니다. 24명의 요양보호사가 있었는데 현재 모두 노동조합에 가입해 있다고 했습니다. 모두 그동안 일어났던 비리사건과 부당한 차별대우를 잘 알고 있어서 노조에 가입하고 싸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쪽에선 사회복지 축제를 하는데 어느곳은 같은 사회복지시설임에도 소외되고 있었습니다. 다음번 박람회땐 한곳도 빠짐없이 축제에 참여하여 함께 위로되고 격려하는 행사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