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림의 가치가 실현되는 곳, 대흥슬로시티(충남 예산군)에 또 하나의 명소가 탄생했다.
옛이야기축제 기간에 맞춰 9월 27일 임시개장한 '느린손공방'은 달팽이자연학교, 민박집, 달팽이미술관에 이어 슬로시티대흥의 되살림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본디 있는 그대로의 환경과 삶을 이어가기 위한 슬로시티 운동은, 지역에 따라 무리한 새 건축물들로 취지가 훼손되는 선례가 있어왔다. 반면 슬로시티대흥은 인증 이후 슬로시티협의회 사업 차원의 신축건물은 방문자센터가 유일할 정도여서 모범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더 나아가 낡고 방치돼 있던 건물을 원형을 살리는 범위안에서 새단장해 슬로시티명소로 만들어내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주목받고 있다.
되살림의 건축
TV드라마 <산너머 남촌에는> 촬영 당시 '은자네가게'로 이름 붙여졌던 대흥초등학교 앞 문방구가 '느린손공방'이라는 새 이름을 달았다.
전면 한쪽 벽을 창으로 내고, 다른 쪽 벽은 나무를 덧대 자연색을 칠해놓으니 소박하고 정겹다. 경사 깊은 파란 함석지붕을 그대로 살리고, 처마 밑에 키 작은 꽃화분들을 올망졸망 앉혀놓아 지나는 이들의 발길을 잡는다.
"어머, 이 예쁜집은 또 뭐야?"초록색 사각기둥이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공방 안에 들어서면 은은한 천연비누향이 기분 좋다. 벽면과 바닥, 전시대의 손바느질 제품과 짚공예품 수십 종이 반갑게 맞는다.
드라마 유행어처럼 '슬로시티 장인(주민)이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만든' 가방, 지갑, 스카프들이다. 한동안 손을 놨지만 긴 세월 어르신들의 몸이 기억하고 있던 짚공예품들은 시대에 맞게 인테리어소품들로 재탄생돼 인기품목으로 떠올랐다. 농경시대 유물들이 친자연을 추구하는 도시민들의 구매욕을 자극해 가장 많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열다섯 평 남짓 작은 공간이지만 오래도록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유, 하나하나 제품들에 담긴 주민들의 시간과 정성 때문이다.
젊었을 땐 곧잘 했지만 이젠 눈을 가늘게 하고서도 한참을 헛손질해야만 꿸 수 있는 바늘 실로 누빔을 하거나, 계절마다 채취해둔 자연염료로 고루 물을 들여 햇볕 아래 가장 은은한 빛을 내거나, 알곡을 턴 볏짚을 모아 썩지 않도록 잘 말리거나, 굵어진 마디 주름진 손으로 거침없이 새끼줄을 엮거나, 짚신을 삼고 멱꾸리를 만들고 수수비를 엮거나, 여럿이 한자리에 모여 향 좋고 모양 좋은 천연비누를 만드는 모습들.
물건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그런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진다. 느린손공방에서는 소비자들도 느려진다.
협동조합 느린손
느린손공방의 주인은 '협동조합 느린손'(대표 이명구) 조합원들로, 마을주민 19명이다. 공방 물품생산자 16명과 후원자 3명이 다중이해관계자협동조합을 구성해 충남도로부터 마을기업으로 선정됐다. 앞으로 2년 동안 지원을 받은 뒤, 자립해야 한다.
예산대흥슬로시티협의회 박효신 사무국장은 "슬로시티대흥 마을기업 1호인 느린손공방은 지난 2년 6개월 동안 진행해온 주민교육의 결과물이다. 손바느질, 짚공예, 천연비누 모두 주민교육 과정으로 진행됐는데, 지속가능한 발전도구로 삼겠다는 희망이 한 단계 더 나아가 이번에 마을기업으로 탄생했다. 우리 조합원들은 2년 뒤 자립도 어렵지 않게 이뤄낼 것이다"라고 깊은 믿음을 보인 뒤 "장기적으로는 이 정도의 소규모 협동조합을 다섯 개 정도 꾸려 주민들의 안정적 자립기반을 만들었으면 하는 소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작업장은 조합원 각자의 집이고, 시설과 설비에 들어가는 돈이 없어 초기투자자금이 적은 것도 마을기업의 안정적자립에 부담을 줄여줄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 3일 인가받은 '협동조합 느린손'은 구성과정에서 출자금 650만 원(개인당 10만~90만 원)이 단 하루만에 완납될 정도로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호응이 높았다는 후문이다.
흙집짓기체험, 자연밥상체험에 이어 느린손공방까지…. 의식주 모두를 누구나 제 손으로 직접 해내던 옛 생활방식들이 슬로시티대흥에서 실현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