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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당시 국정원의 불법 선거개입 주장이 있을 때만해도 설마설마 했다. 유신 독재 시대도 아니고 군부 시절에도 쉽게 할 수 없을 것 같은 국가기관의 불법 선거개입이 21세기에 일어날 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팩트가 됐다.

혼란스럽다. 아니, 부끄럽다.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석권하고 미국 메이저리그까지 점령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선거판만은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새삼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끼게 된다.

공정한 선거? 간단하다... 정해진 원칙만 따르면 된다

2003년 제정된 건목회 선거 규정 아무리 작은 선거라고 해도 엄격한 선거관리규정에 의거하여 진행하면 부정의 소지가 전혀 없다. 동네 선거도 이렇게 엄격하게 진행되는데 어찌 국가의 대선이 이모양으로 진행될 수 있단 말인가!
2003년 제정된 건목회 선거 규정아무리 작은 선거라고 해도 엄격한 선거관리규정에 의거하여 진행하면 부정의 소지가 전혀 없다. 동네 선거도 이렇게 엄격하게 진행되는데 어찌 국가의 대선이 이모양으로 진행될 수 있단 말인가! ⓒ 이혁제

아무리 작은 선거라고 해도 원칙이 있고, 그 원칙만 제대로 따른다면 아무런 문제없이 치를 수 있다. 60여 명의 청년으로 구성된 봉사모임 '건목회'는 결성된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 건목회는 매월 목포 시내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펼친다. 이 모임이 지난 10년 간 탄탄하게 유지 될 수 있었던 것은 뭐니뭐니 해도 엄격한 회칙과 선거관리 규정에 따라 선출된 회장의 리더십 덕분일 것이다.

이들은 모임 결성 당시 선거관리규정을 명확하게 만들어놨다. 선거 날은 매년 11월 첫째 주 금요일 저녁. 가장 큰 특징은 회장을 선출한 것이 아니라 부회장을 선출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부회장 피선거권은 일반회원 중 분과위원장을 역임한 자로 한정한다.

회장을 바로 뽑지 않고 부회장을 선출하는 것은 부회장 임기 1년 동안 회장을 보좌하면서 모임을 이끌어갈 리더십을 배우라는 의미다. 그리고 그 다음해 회장이 돼 건목회를 이끈다. 한편, 선거관리규정은 분과위원장 역임을 필수 조건으로 둬 경험이 없는 회원의 입후보를 사전에 차단해놨다. 어떻게 보면 선거의 4대 원칙인 평등선거를 위반한 면이 있지만, 선거관리규정에 명시돼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를 배운다

이 모임은 새로운 부회장 선출을 위해서 한 달간 선거 체제에 돌입한다. 먼저 10월 1일 선거관리위원회가 꾸려진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관리위원장 1인, 선거관리위원 4인으로 구성되는데 선거관리규정에 따라 전임 회장이 위원장직을 맡고, 위원장은 역대 회장 중 네 명을 위원으로 임명한다.

선거관리위원회는 10월 1일 부회장 선출 공고를 회의 카페를 통해서 전 회원들에게 알리고 뜻있는 회원의 입후보를 받는다. 지난 10년 간 이 날짜를 어긴 적이 한 번도 없다. 입후보 기간은 15일까지며 입후보를 원하는 자는 이력서·출마의 변·사업계획서 등을 선거관리위원회에 15일 자정까지 제출해야 한다. 최종 부회장 후보 등록은 제출된 서류가 선거관리위원회를 통과해야 한다. 

부회장 입후보자는 16일부터 31일 자정까지 회원을 상대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민간 모임의 회장이 무슨 큰 벼슬도 아니지만 입후보자들은 최선을 다해 회원들에게 지지를 호소한다. 물론 단독 후보일 때가 많지만 그래도 찬반을 묻는 투표를 하기 때문에 선거운동을 소홀히 했다가는 큰코 다칠 수 있다.

민심은 냉정하다

회장의 권력은 정당한 선거에서 나온다 부회장에 당선되고 1년이 지나면 회장으로 정식 취임한다. 신임 회장이 회기를 들고 회원들에게 힘찬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회장의 권력은 정당한 선거에서 나온다부회장에 당선되고 1년이 지나면 회장으로 정식 취임한다. 신임 회장이 회기를 들고 회원들에게 힘찬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이혁제

매년 선거를 치르면서 느낀 점이 있다. 그건 바로 '민심은 냉정하다'는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투표는 없다. 회원들은 입후보자의 평소 태도와 언행 그리고 회의 발전에 대한 기여를 보고 선거당일 투표를 한다. 초창기 선거에서 낙선한 회원은 몇 년 후에나 다시 도전해 당선됐고, 단독 후보인 경우에도 반대표가 상당수 나온다.

그래도 선거판에 비방이나 악의적인 소문은 없다. 그리고 선거 날은 모두의 잔칫날이 된다. 1년 행사 중 가장 즐거운 날이며, 가장 늦게까지 회원들이 집에 들어가지 않는 날이다. 부회장 당선자를 축하하기 위해서다. 부회장은 이런 엄격하고 긴장된 선거 과정을 통해서 회원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권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회장이 되고 싶은 회원들도 이런 까다로운 선거 과정이 부담되어 선뜻 나서지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회장으로서 리더십이 부족하고 주변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 회원은 엄두를 못내는 구조인 셈이다. 이런 점이 건목회가 지역 내에서 인정받는 청년단체로 성장하고 건목회장이 청년리더로서의 면모를 보이게 하는 원동력인줄도 모르겠다.

동네선거만도 못한 지난 대선

지난 대선은 철저하게 원칙과 선거법을 어긴 채 치러진 선거였다. 선거는 가장 투명하고 정당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보편 원칙을 어겼고, 국가기관 특히 정보를 장악하고 있는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은 관권선거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대한민국 선거법을 정면으로 위반했다.

하지만 이런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은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한 발 뒤에 서 있다. 또한 여당은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대선불복이라며 민심을 자극하고 있다. 건목회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건목회 같은 동네 선거도 사소한 일정 등 규정에 어긋나게 되면 회원들의 원성을 사기 때문에 철저하게 지키려고 노력하는 판에 정부의 선거 관리가 이 모양이었다니 참 한심스럽다.

또한 누구를 위한 선거개입이었는지 묻고 싶다. 아니 알고 싶다. 후보자는 가만히 있는데 지난 정권은 왜 후보자도 모르는 불법을 저질렀는가 하는 것이다. '가재는 게 편이다'라는 속담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너무나 위험한 도박을 행한 지난 정부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차기 정권을 도우려 한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이번 주 금요일(10월 31일)은 제12대 건목회 회장이 될 2014년 부회장을 뽑는 선거 날이다. 비록 단독 후보가 등록했지만, 앞으로 남은 이틀 동안 열심히 회원들을 찾아다니며 지지를 호소할 것이다. 많은 회원들이 금요일에 있을 부회장 선거를 기다리고 있다. 왜냐하면 선거는 건목회의 최대 축제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 자부심을 갖는 것은 지난 해 11월에 치러진 건목회 부회장 선거가 지난 대선 보다 훨씬 깨끗하고 공정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지금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건목회 회원입니다.



#건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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