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고구마를 캤습니다. 지난 6월 21일 고구마 순을 땅에 묻은 지 넉 달 일주일 만입니다. 고구마 순은 무성했지만 생각보다 고구마가 많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여름에 가물어서 제대로 밑이 들지 않았나 봅니다.
옆에서 고구마를 비롯한 야채를 가꾸는 사람들과 비교하여 좀 늦은 편이었습니다. 저희는 지난 6월 감자 수확을 마치고 고구마 순을 묻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처음부터 고구마 순을 묻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고구마는 한국 황토 흙에서 잘 자라는데 이곳은 원래 논이었던 곳이라 고구마가 자라는 데 비교적 적합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이웃집 어른들의 말에 따르면 고구마 순만 잘 자라고 고구마 밑이 별로 들지 않아서 일찍부터 포기한 집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희는 밭에 자주 갈 수 있는 형편도 아니기 때문에 손질이 별로 필요 없는 고구마를 골라서 심었습니다.
저희는 다른 집보다 고구마 수확이 좀 늦었습니다. 먼저 길고 복잡하게 자란 고구마 순을 걷어내고 고구마를 캐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고구마 순은 자랐는데 땅 속에 고구마는 별로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땀을 흘린 것에 비해서 기대 이하였습니다. 그래도 이것이나마 수확할 수 있는 것을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이것마저 심지 않았다면 수확을 기대할 수 없었겠지요?
그런데 벌써 겨울잠에 들어간 뱀이나 개구리가 고구마 밭 땅속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낮에는 섭씨 25도 정도로 따뜻하지만 아침이나 저녁 춥기 때문에 겨울잠에 들어갔나 봅니다. 그런데 개구리는 괭이질에 잘못 다리가 잘려나갔습니다. 뱀은 똬리를 틀고 땅속에 있다가 괭이질에 놀라 혀를 낼름거리며 도망가기 바쁩니다. 처음 뱀이 나왔을 때 '무슨 지렁이가 이렇게 길지' 하고 생각했는데 배가 하얗기 때문에 금방 알아보았습니다.
흙냄새를 맡으며 땀을 흘려 이 정도라도 수확할 수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가로 3미터 세로 5미터 크기 땅에서 수확한 고구마는 라면 상자로 두 개 정도였습니다.
최근 수족관에서 사는 돌고래나 바다사자 등 포유동물은 바다에서 사는 것에 비해서 목숨이 절반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수족관에 있는 동물들은 비록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사람의 조련에 따라서 길들여지고 사람들 앞에서 묘기를 보이면 먹이는 받아서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갇힌 곳에서 훈련을 받고 묘기를 보이는 것은 많은 스트레스가 쌓이는가 봅니다.
비록 먹을 것은 자기가 힘들게 넓은 바다를 헤매고 다녀서 구해야 하지만 자유롭게 바다를 헤엄쳐 다니는 동물은 제 수명을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사람 역시 콘크리트 건물이나 좁은 자동차 안에 갇혀 아스팔트길 위에서 사는 것은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이고 목숨이 짧아지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비록 많은 수확은 기대하지 못해도 좁은 땅이라도 파면서 감자나 고구마나 푸성귀를 심는 것은 흙냄새를 맡을 수 있는 일입니다. 흙냄새가 사람은 건강하게 합니다. 사람 역시 흙으로 만들어졌고, 죽으면 흙으로 돌아갈 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덧붙이는 글 | 박현국 기자는 일본 류코쿠(Ryukoku, 龍谷)대학 국제문화학부에서 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