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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장 같은 '피트'의 움직임 '네덜란드에서 온 새로운 메시지' 전시장의 조명작품 '피트' 사람의 심장을 구현한 작품. 외부의 작은 소리부터 큰 소리에 반응하며, 조용하고 편안할 때는 짹짹 소리를 내기도 한다.
ⓒ 정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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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은 다름에서 출발하며, 새로움은 창조된 무엇이 아니며, 기존의 것을 다시 보고 다른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것, 그리고 이를 실행에 옮기고 실천하는 것, 그 것이 네덜란드의 역사 속에 축적된 문화적 정체성이라고 이재준 큐레이터는 말한다. 이 내용은 건축과는 아무 관련 없는 내가 봐도 매력적이었고 '새로움'에 대해 네덜란드 건축 디자인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동네도서관에서 유럽디자인 책을 읽던 둘째 아이가 책을 사 달라고 하여 구입한 책이 안애경의 <북유럽 디자인> <핀란드 디자인 산책>이다. 아이가 그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면서, 눈을 반짝거리며 설명하는 것을 본 뒤 유럽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생겼다. 생각해보니 '해수면보다 낮은 땅에서 살고 있다는 것' 이외에는 네덜란드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별로 없는 상태다. 

을지로입구역 4번 출구와 연결되어있는 미래에셋 센터원 빌딩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에서 하고 있는 '네덜란드에서 온 새로운 메시지: 네덜란드 건축 디자인전'. 관람료는 무료. 이 전시는 8월 14일부터 10월 30일까지 진행됐는데, 다른 일들에 우선순위를 두다보니 전시가 이제 막바지가 되었다.

중2인 둘째 아이와 그 친구들까지 세 아이를 데리고 디자인전을 보고 왔다. 1시간 정도 보았는데, 한민자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가자고 하니, 자유로운 영혼의 중2 학생들은 먼저 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 혼자 듣고 왔다. 같이 들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쉬웠다. 한민자 도슨트의 낭랑한 음성과 세세한 설명은 네덜란드 건축 디자인전을 더욱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는데 말이다.


집에 와 셋이서 어땠냐고 물어보니 아이디어 자체가 신선했고, 모형이 있어 이해하기 쉬워서 좋았단다. 집이 진짜 좋아서 네덜란드에서 살고 싶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고 한다. 셋이 모여 있으면 덤앤더머 삼총사 같다고 놀리곤 하지만, 순수하고 발랄명랑 쾌활한 친구 셋이서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함께 관람하는 뒷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사실은 기분이 정말 좋았다.

이 전시는 다섯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RE: USE/ RE: MIND/ RE: SEARCH/ RE: NEW/ RE: MARK

RE: USE는 기존 건물에 다른 건물을 증축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12개의 건축 작품을 소개한다. RE: MIND는 사람의 행동에 대한 깊이 있는 관철을 통해 본질적 가치를 상기시키는 디자인 작품을 소개한다. RE: SEARCH는 네덜란드 사회문화 전반에 내제된 '통계'의 의미와 가치를 보여주는 섹션이다. RE: NEW는 관람객들이 참여하는 체험형 프로그램이다. 전시장의 모든 내용을 둘러보면서 전시작품 옆에 놓아 둔 엽서들을 모으고 정리하면서 자신만의 새로운 메시지를 만들면, 이들의 작업을 아카이브로 저장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지속적으로 보여준단다. 메시지가 가지는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RE: MARK는 전시에 직접 포함되지 못한 네덜란드 건축과 디자인의 이야기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RE: NEW  RE: NEW 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민자 도슨트 설명을 듣고 있는 사람들
RE: NEW RE: NEW 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민자 도슨트 설명을 듣고 있는 사람들 ⓒ 정민숙

RE: NEW
특히 시작과 끝을 같은 곳에서 하게끔 전시한 점이 절묘했다. 전시를 둘러 본 관객들이 저마다 메시지를 적은 엽서를 전시해 놓으면 그 내용을 사진으로 찍어 한쪽 벽에 그 모든 사진을 모아뒀다. 이 전시는 사람이 올 때마다 내용이 달라지는 살아있는 유기체 같다.

RE: MARK
벽면 두 곳에 빼곡하게 잡지책이 진열되어 있고, 가운데 편안한 소파가 놓여있다. 한 권 꺼내 들고 앉아서 책을 읽었다. 도서관도 아닌 전시장에서 책을 읽다니,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들춰 본 책에서 또 보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사진을 찍었다.

RE: MIND
'콘크리트 안무'를 감상중인 중학교 2학년들 서로를 챙겨주는 친구들이 시청광장 자원봉사 축제에 참석한 후 갤러리에 와서 네덜란드 건축 디자인전을 관람하고 있다.
'콘크리트 안무'를 감상중인 중학교 2학년들서로를 챙겨주는 친구들이 시청광장 자원봉사 축제에 참석한 후 갤러리에 와서 네덜란드 건축 디자인전을 관람하고 있다. ⓒ 정민숙

꼭 밟아보고 싶은 '콘크리트 안무' 공원에 깔린 보도블록에는 미리 만들어 놓은 문양이 새겨져 있다. 댄스에 대해 문외한인 몸치 박치라도, 그 블록 위에 새겨진 대로 밟고, 동그라미를 그리고, 점프하고, 멈추고 하다보면 춤을 추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 공원을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끌고 지나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춤을 추고 지나가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있으면 좋겠다. 그 동네에 살면 삶이 즐거울 것 같다.

기억의 세계로 안내하는 소리 치매환자와 간병인 사이의 정서를 부드럽게 해주는 기계. 빈티지 오디오에 디지털 보석을 올려놓으면 음악이 나온다.
기억의 세계로 안내하는 소리치매환자와 간병인 사이의 정서를 부드럽게 해주는 기계. 빈티지 오디오에 디지털 보석을 올려놓으면 음악이 나온다. ⓒ 정민숙

당장 제품을 사고 싶은 '기억의 세계로 안내하는 소리'. 친숙한 음악과 디지털 보석을 활용해 알츠하이머 환자와 간병인이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만든 새로운 의사소통 시스템이다.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실제로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되살리는 능력을 잃은 것 뿐이라는 전제에서 시작해 만든 것이다. 간병인과 환자가 소통할 수 있는 음악을 선택하여 디지털보석에 저장해두고 금속 아이콘을 가진 디지털 보석을 오디오에 올려두면 해당음악이 재생된다. 디지털 보석에 불이 들어오면 스탠드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은 구멍으로 보이는 새로운 세계 '까이끄플랑크(보는 판)'. 이 작품의 작가 마츠 호르바흐는 상상력을 동원해 주변의 환경을 살펴보면 더 많은 아름다움과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기다란 나무 판에 뚫린 두 개의 구멍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특별하고 새로우며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관점'을 다르게 해 준다. 

아키텍스타일 벽 마감재, 파티션, 독립 인테리어 오브제로 사용될 수 있는 어쿠스틱 텍스타일
아키텍스타일벽 마감재, 파티션, 독립 인테리어 오브제로 사용될 수 있는 어쿠스틱 텍스타일 ⓒ 정민숙

안아보고 싶은 '아키텍스타일'. '세탁은 어떻게 하지?'라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독특한 질감의 그 작품은 손으로 정말 만져보고 싶었다. 그러나, 입맛만 다신 후 눈으로 실컷 쓰다듬고 왔다. 겨울에 등에 기대거나 앉으면 기분도 좋아질 것 같다.

피트 사람의 심장을 구현한 조명작품. 소리에 반응한다.
피트사람의 심장을 구현한 조명작품. 소리에 반응한다. ⓒ 정민숙

전시장에 유일하게 매달려 있는 '피트'. 도슨트의 설명을 듣기 전에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절대 알 수 없는 작품이다. 사람의 심장을 형상화한 조명작품이란다. 원추형 고깔로 이루어진 수많은 캡들이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반응하여 움츠러들었다, 펴졌다 한다. 큰 소리가 없을 때는 평온한 심장상태처럼 움직이면서 '짹짹'소리가 났다.

그 움직이는 반응이 보고 싶어 피트 아래에서 쿵 뛰면 깜짝 놀란 것처럼 크게 움츠러들었다 다시 펴졌다. 갑작스런 큰 소리에 깜짝 놀라는 심장 같았다. 두 달 반 정도의 전시기간 내내 너무 고생을 하여 몇 주 동안 휴식기를 가졌는데 그때 멈춰 있었다는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는 움직임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집에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 '피트'가 편안할 수 있도록 모든 식구들이 조용조용 큰 소리 내지 않고 살아갈 것 같다.

피트와 속삭이는 의자 음성이 낭랑한 한민자 도슨트의 '피트'설명을 듣고 있는 관람객들. 관람객들 사이로 보이는 사다리 같은 다리를 가진 속삭이는 의자
피트와 속삭이는 의자음성이 낭랑한 한민자 도슨트의 '피트'설명을 듣고 있는 관람객들. 관람객들 사이로 보이는 사다리 같은 다리를 가진 속삭이는 의자 ⓒ 정민숙

말을 걸고 싶은 '속삭이는 의자'. 양쪽에 놓여 진 의자에 두 사람이 앉아 종이(우유팩 만드는 종이)벽에 대고 살짝 속삭이면 반대편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들린다고 한다.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작은 소리로 속삭여도 대화가 된다면 만사가 편할 것 같다. 우리 집에서 목소리 제일 큰 사람인 내게 가장 필요한 의자다.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것이 가장 매혹적인 대화가 이루어 질 때라고 하니, 식구들에게 "밥 먹어" "잘 자" "사랑해"를 속삭여 봐야겠다.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하우스 와인'. 집안에서 만나는 와인제조 공정이다. 보는 순간 체코 애니메이션 '패트와 매트'가 생각났다. 우리 아이들이 어려서 마르고 닳도록 봤던 작품. 포도를 키워 포도나무에서 와인을 즉석에서 만들어 내는 기계를 설치하던 패트와 매트. 저 와인도 한 번 먹어보고 싶다.

RE: USE
국립 유리 박물관 두 개의 건물을 4개의 이동통로를 통해 하나의 건물로 완성. 연결통로에 유리제품들을 전시해 놓았다.
국립 유리 박물관두 개의 건물을 4개의 이동통로를 통해 하나의 건물로 완성. 연결통로에 유리제품들을 전시해 놓았다. ⓒ 정민숙

12개의 건축물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 하나가 보고 또 봐도 신기한 '국립유리박물관'이다. 거의 100여 년 전에 지어진 두 개의 빌라를 사무동과 박물관으로 분리하여 사용하고자 하는 건축주의 요구에 대해 건축가는 사무공간과 전시공간을 다리로 연결해 하나의 건물로 통합하는 전혀 다른 제안을 했는데 건축주가 수용하여 탄생한 박물관이다. 건물을 잇는 네 개의 이동통로는 네덜란드 유리 공예를 전시하는 전시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미 있는 건물 안은 더욱 넓게 쓰고, 새로 만든 통로 안은 소박하게 사용하는,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공존하는 멋진 건물이다. 모형만 보고서는 이해가 부족했는데, 현재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니 감탄이 나온다. 우리나라였다면 싸악 밀고 다시 지었을 것 같다.

RE: SEARCH
통계를 통해 알아보는 우리시대의 현주소. 바닥에 발자국 모양이 있는 곳에 사람이 서서 벽에 보이는 12개의 단어 중 하나를 손 그림자로 선택하면 화면이 바뀌며 통계를 이용한 정보가 나타난다. 페이스북 이용자는 대한민국이 19.7%고, 네덜란드는 45.0%다. 맥도날드, 스타벅스 분포도는 서울이 네덜란드보다 훨씬 더 조밀하게 나온다. 이를 통해 암스테르담과 서울의 커피 소비 패턴도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방법을 이용하여 우리나라의 상류층 20%의 병역유무와 국적을 알아보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네덜란드에서 온 새로운 메시지'는 "다시 '사람'에게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며, 예전부터 그렇게 해 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는 변하지 않는 가치에 대한 존중, 그 존중의 중심에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번 전시에서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이재준씨는 말한다.  

문제해결 방식이 우리의 상식으로는 나오지 않을 그런 것들이다. 두 번이나 찾아가서 보고 올 수 있었던 것은 이 전시가 무료면서도 지하철과 가까운 교통의 편리성 때문이기도 하고, 존중의 중심에 '사람'이 있음을 모형만 봐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손바닥만 한 엽서크기의 도록도 맘에 든다. 주머니에 쏙 넣고 아무데서나 꺼내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0월 30일 수요일엔 11:00~21:00까지 전시를 한다. 점심시간에 잠시 다녀와도 부담 없는 내용이다. 다음 전시는 '스위스의 지속 가능한 건축 사진전(2013.11.07~12.20)'이다. 청계천 삼일교 근처나 종각, 을지로입구역을 지날 일이 있다면 이곳에 잠시 들러 보는 것도 좋겠다.


#네덜란드 건축 디자인#네덜란드에서 온 새로운 메시지#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 갤러리#스위스 건축 사진전#을지로 입구 미래에셋 센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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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위생사 . 구강건강교육 하는 치과위생사. 이웃들 이야기와 아이들 학교 교육, 책, 영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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