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아래 한수원)이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 원전 3호기의 주요 기기 중 하나인 방사선 감시설비에 대한 기술검증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1년 내 공사 완료'를 공표하는 등 '졸속 공사'를 강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경태 민주당 의원은 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해당 방사선 감시설비는 납품업체에서 검증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설계사인 한전기술이 수준 미달로 반려한 것"이라고 폭로했다. 이어 "정부와 한수원이 원전 건설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리적 시간도 지키지 않고 졸속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5년 5월로 신고리 3호 가동 시점을 잡고 있는 정부 계획이 무리한 수준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이와 연계된 밀양 송전탑 강제 건설 논란도 심화될 전망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송전탑 공사 중단과 사회적 합의기구 구성을 촉구했다.
"방사선 감시설비 부품, 1년 지나도록 검증평가 통과 못 해" 그동안 신고리 3호기는 제어 전력 계장용 케이블 문제로 건설이 지연됐다. 먼저 원전 비리 수사 과정에서 신고리 3, 4호기의 제어케이블 품질서류 조작이 드러났고, 문제의 제어 케이블은 결국 성능 시험에서도 불합격판정을 받았다.
내년 여름 완공돼 전력난 해갈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됐던 신고리 3, 4호기 가동 지연이 불가피해지자 정부가 꺼낸 '카드'는 미국산 케이블이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국회서 열린 새누리당과의 당정협의에서 "미국 업체가 테스트를 통과하면 오는 11월 말이나 12월 말부터 납품을 받아서 내년 말 이전까지는 건설공사를 완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조경태 의원은 다른 지점을 지적했다. 불량 케이블 이외에도 문제가 더 있다는 것이었다. 조 의원은 "미국 A사가 만든 방사선 감시설비 부품이 1년이 지나도록 검증평가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수원이 조 의원실에 제출한 국감 자료에 따르면 검증 기술평가를 거쳐 신고리 3, 4호기에 들어가는 주요 기기는 총 30개. 각각의 기기들은 쓸모에 맞게 내진시험이나 냉각재 상실사고에 따른 LOCA 시험 등을 거치도록 되어 있다.
조 의원이 언급한 A업체가 만든 방사선 감시설비는 내진 시험은 5개월만에 통과했지만 LOCA 시험은 지난해 8월 2일 검토를 시작해 지금까지도 '검토중'이다. 조 의원은 "A업체는 자체 해석적인 방법으로 기기검증을 해서 보고서를 냈지만 설계사인 한전기술이 이를 거부했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검증된 방사성 감시설비 없이 원전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이날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조석 한수원 사장은 조 의원 지적을 인정하면서도 "(LOCA시험) 검증을 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54개월짜리 절차를 19개월 만에 끝내려고 해"
조 의원은 정부가 문제없다고 밝힌 제어 케이블 구매 관련 절차도 졸속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통상적으로는 현재 시점에서 신고리 3, 4호기에 들어가는 안전등급 케이블 구매소요 예상기간은 54개월인데 정부는 19개월 만에 끝내려고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원전 설계사인 한전기술이 조 의원실에 제출한 메뉴얼에 따르면 제어 케이블의 기술평가 요청에만 10개월이 소요된다. 해당 미국 업체가 한수원에 공급업체로 등록한 것은 올해 9월 5일. 조 의원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일 진행"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공급자 도면 검토 및 승인 제작은 30~32개월이 걸린다"면서 "6개월만에 단축하겠다고 하는 게 정부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밥솥에서 밥이 익으려면 최소한의 물리적 시간은 필요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조 의원의 지적에 "제어 케이블 도입과 내년 내 원전 건설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내놨다. 이달 중순 미국 현지에서 진행될 기기검증 시험을 통과할 게 확실하다는 얘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다른 의견을 내놨다. 신고리 3, 4호기에 적용되는 제어 케이블은 수명, 내화성, 내압력성, 살수조건 등의 항목에 대해 기술검증을 거치는데 이중 살수조건의 기준이 미국과 다르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미국 기준은 붕소농도 2200ppm 이상이면 되는데 신고리 3호기용 케이블은 붕소농도가 4400ppm 이상이여야 한다"면서 "신고리 3호기 제어 케이블 물량이 900Km가 넘는데 주력 제품도 아닌 규격을 단기간 내에 생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같은 소식을 접한 밀양 주민들은 허탈함을 드러냈다. 한국전력공사는 최근 이 지역 주민들과 물리적인 마찰을 불사하면서 52개의 송전탑 건설을 강행하고 있다. 2015년 5월로 가동이 예정된 신고리 3호기 발전 계획에 맞추기 위해서다.
이계삼 밀양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대부분 노인인 밀양 주민들은 지난 한 달간 강제 건설에 반대하다가 46명이 병원으로 후송됐다"면서 "(질의 내용을 들어보니) 송전탑 공사를 전혀 서두를 상황이 아닌데 힘없는 노인들만 영문도 모르고 참담한 고통을 겪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밀양 송전탑 강행은 제어 케이블 교체 문제를 정밀하게 따지고 이뤄져야 하며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