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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하고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라캉)

사람들이 어떤 현상에 관심을 갖게되는 시점은 때로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온다. 그동안 인터넷과 방송에서 아무리 사람들이 <응답하라 1997>을 외쳤어도 그것은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했으므로, 당연히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만 생각되고 말해질 뿐이었다. 마치 <배틀스타 갤럭티카>의 장구한 세계관을 몰랐을 때의 <배틀스타 갤럭티카>를 그저 그런 SF 드라마로 인식 할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최근 한 케이블 채널에서 다시 방송을 하기 시작한 <응답하라 1994>(아래 <응사>)는 내가 생각하는 곳에서 존재하고 내가 존재하는 곳에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철학적 깨달음은 나의 이십대 초반의 서툰 시절을 다시금 꺼내게 만들었다.  

1993년 7월 7일은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월 칠석이었다. 그날 오전 11시쯤 구미역 앞에는 짧은 머리를 한 고등학생 네 명이 서 있었다. 그들은 바로 나와 함께 취업을 나갈 친구들이었다. 잠시 후 수원행 열차가 도착했다. 우리는 주섬주섬 가방을 챙긴 후 기차에 올랐다.

평일이라 객실에 손님은 많지 않았다. 서로를 마주보고 자리에 앉은 우리는 처음엔 활기찬 기색으로 수다를 떨었지만 이내 말이 없어졌다. 학교 선생님과 선배들에게 듣기만 했던 취업 실습 첫날이었기 때문이다. 시종일관 창밖을 바라보던 나의 굳은 표정은 이제부터 펼쳐질 사회 초년생 생활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짙게 서려 있었다.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 실습복으로 갈아입어."

학교 정문을 나서기 전 조언을 해준 취업 담당 선생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수원역에 도착할 때쯤 비좁은 화장실에서 이미 닳을 대로 닳고 헤진 검정색 실습복으로 갈아입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수원이 아니었다. 최종 목적지인 성남으로 가기 위해서는 수원역에서 다시 2007번 버스를 타야 했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한동안 길을 잃은 미아나 다름없었다. 관리과장이라는 사람과 수차례 통화 끝에 겨우 성남 상대원 2·3공단에 위치한 회사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삼성이나 금성 같은 대기업은 아니더라도 번듯한 건물에서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건물은 낡았고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무서웠다. 회사 운동장 한쪽엔 스티로폼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상자를 잔뜩 실은 지게차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운동장을 좌우로 오가고 있었다.

우리는 잠시 후 경비실을 지나 관리과로 들어섰다. 관리과장으로 보이는 남자는 앞에 선 남자 한 명을 호되게 나무라고 있었다. 그 남자는 이후에도 꽤 오랜 시간을 그렇게 서 있었다. 관리과장은 남자를 그대로 세워 둔 채 우리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두 명은 완제품 창고로 가야 하는데, 누가 갈래?"

완제품 창고. 설마 박스 나르기? 그랬다. 취업을 나갔다 다시 학교로 돌아온 선배들 중 박스만 나르다가 도망쳐 왔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한동안 서로 눈치만 보며 서 있었다. 망설임 끝에 상대적으로 체격이 좋았던 나와 옆에 섰던 친구가 손을 들었다. 잠시 후 관리과장은 공장 내부를 돌아보게 한 뒤 우리 둘은 완제품 창고로 그리고 나머지 둘은 생산팀으로 보냈다.

학생도 어른도 아닌 그때... 우리들의 공장 적응기

응답하라 1994 1회 서울 사람편 기차와 지하철의 차이를 모르는 삼천포 장국영은 신촌 하숙집을 찾아가기 위해서 신촌행 지하철을 기다리지만 신촌행 지하철은 오지 않는다. 갖은 우여곡절끝에 그는 10시간이 넘어서야 신촌 하숙집을 찾을수 있었다.
응답하라 1994 1회 서울 사람편기차와 지하철의 차이를 모르는 삼천포 장국영은 신촌 하숙집을 찾아가기 위해서 신촌행 지하철을 기다리지만 신촌행 지하철은 오지 않는다. 갖은 우여곡절끝에 그는 10시간이 넘어서야 신촌 하숙집을 찾을수 있었다. ⓒ tvn

완제품 창고엔 방금 전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남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박스를 나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와는 6개월 후 생산팀으로 부서가 바뀌기 전까지 일주일에 두세 번은 자정이 넘을 때까지 11톤 트럭에 박스를 날라야 했다.

그날 저녁 퇴근 시간에 맞춰 회사 선배를 따라 회사에서 마련해 놓은 방 2칸짜리 기숙사에 경직된 몸과 마음을 풀었다. 아니 우리 모두 조금씩 낯선 상황에 놓인 채 결코 긴장을 풀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 그 다음 날도 길눈이 어두웠던 나는 마치 복사해 놓은 것처럼 똑같은 성남 상대원1동의 골목 사이사이를 헤매다 결국 회사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렇듯 나와 친구들의 공장 적응기는 <응사> 속 신촌 하숙생들의 서울 생활 적응기와 흡사하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응사> 속 인물들은 대학 신입생, 그리고 나와 내 친구들은 취업 실습생이라는 점이다. 취업! 모든 것이 달라졌다. 우리를 보호해줄 선생님이나 부모님은 더 이상 옆에 없었다. 우리가 첫발을 내딛은 그곳은, 기차와 지하철의 차이를 알지 못했던 <응사>의 '삼천포 장국영'처럼 세상을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하는 두꺼운 벽이었다.

생산팀으로 갔던 두 친구와는 달리 완제품 창고의 나와 친구는 취업 첫날부터 야근을 해야 했다. 밤 9시가 넘도록 야근을 하고 기숙사를 찾지 못한 채 어두운 골목길을 세 시간이 넘도록 헤매야 했다. 그렇게 취업을 나온 지 일주일 만에 내 몸은 쌍코피로 반응했다. 사무실에서 전화 받는 법부터 회식 할 때 술자리 에티켓까지, 교과서를 벗어난 문제들은 때로는 회사 선배에게 때로는 직속 상사에게 호된 질책을 들어가며 풀어야 했다.

명절을 쇠고 돌아오는 길 수원역엔 언제나 먹잇감을 찾는 승냥이 같은 시선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는 시골 촌놈의 어리숙함 때문에 수원역의 한 봉고차에서 24개월 할부로 세계문학 전집을 구입하기도 했고, 누구는 금장 CD 스무 장을 50만 원에 사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 산 세계문학 전집은 여전히 내 책상 밑에 켜켜이 먼지 쌓인 채로 있다.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사감 선생님의 눈을 피해 월담을 할 무렵 시내에 노래방이 생겼고 삐삐가 생겼다. 삐삐는 학교 기말시험의 최첨단 커닝도구로 사용되기도 했고 그들 때문에 내 등수는 몇 단계 밀려났다. 번호를 밀어 쓴 몇몇 친구의 비명소리를 듣고 속으로 고소해 하기도 했다. 그 시절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X세대로 정의되었다. 하지만 나와 친구들을 볼 때 '신인류의 탄생'은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화려하거나 세련되지 않았다.

열아홉. 학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한 성인도 아닌 어정쩡한 시기. 그것은 사회인이 되기 위한 통과 의례였다. 대학생이 아닌 사회인을 선택한 공고생으로서 우리는.

회사 생활은 쉽지 않았다. 다른 학교에서 취업을 나온 친구들은 하루 이틀 만에 그만두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실습이 끝나고 나서도 회사를 계속 다녔다.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무단 결근을 했다. 교회도 나가지 않았다. 회사에서나 교회에서나 얌전한 모범생이었던 나의 조용한 일탈. 파도가 넘실대는 바닷가를 배회하다 혹시나 싶어 확인한 삐삐에 녹음된 개척교회의 누나와 회사 선배의 염려 섞인 목소리로 작게나마 불안한 청춘에 대한 위안을 받기도 했다.

<응사>의 신촌 하숙집의 다양한 에피소드는 6개월간의 실습을 마치고 정식으로 회사원이 된 입사 동기들과의 자취생활과 오버랩된다. 회사 생활 2년이 지났을 때쯤 우리는 선배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기숙사를 탈출하기로 했다.

20년 동안 응답받지 못했던 것 중 하나, <응사>가 답해줬다

응답하라 1994 6화 선물학 개론 갑작스런 폐경(?)으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일화. 그로 인해 하숙생들에게도 연이어 실수를 저지르고 결국엔 남편과 함께 며칠 여행을 다녀온다. 그리고 마지막엔 두 부부에게 예상치 못한 선물이 찾아온다
응답하라 1994 6화 선물학 개론갑작스런 폐경(?)으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일화. 그로 인해 하숙생들에게도 연이어 실수를 저지르고 결국엔 남편과 함께 며칠 여행을 다녀온다. 그리고 마지막엔 두 부부에게 예상치 못한 선물이 찾아온다 ⓒ tvn

전혀 X세대답지 않았던 나는 기숙사를 같이 쓰던 선배 앞에서 술을 안 먹겠다고 소줏잔을 엎어놓았다가 두 시간이 넘도록 뒷담화를 들어야 했고, 주말에 배가 고파도 서로 눈치를 보느라 오후가 다 지나도록 라면 하나 끓여 먹기 힘들던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마음에 맞는 친구들끼리 그동안 조금씩 모은 돈을 모아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전세방 한 칸을 마련했다. 나는 책상과 냉장고를, 누구는 텔레비전을, 그리고 다른 누구는 세탁기와 전기밥솥을 사들고 우리는 신촌 하숙집의 그들처럼 밤이면 옥상에서 삼겹삽을 굽고 캔맥주를 한두 개씩 들이켰다. 월남에서 다리를 다쳤다는 집주인은 매달 잘못된 전기요금 청구서를 가지고 와서 우리를 남감하게 만들었다.

서울 생활이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응사> 속 신촌 하숙집의 하숙생들은 어느 날 아침 폐경(?)으로 여성성이 사라져 절망하고 있는 하숙집 주인 '이일화'에게 친엄마에게나 부릴 짜증을 부린다.

'만남은 익숙해지고 익숙함은 어느새 당연한 것이 된다'는 고아라의 독백처럼 시간이 지나 익숙해진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론 오해와 무례를 오가는 갈등 속에서 힘들어 하다 군입대와 대학진학과 그리고 신촌 하숙의 이일화처럼 '차마 말할 수 없는 이유'로 서로에게 이별을 고했다.

하숙집의 쓰레기(정우 분)와 칠봉이(유연석 분)와 성나정(고아라 분)의 삼각관계처럼 그 시절의 우리 또한 '사내 연애'라는 달달한 감정에 휘둘리곤 했다. 하지만 풍문처럼 떠도는 사내 연애의 진실함은 말하는 자의 양심에 따라 좌우된다.

어느 날 '너를 마음에 둔 여자'가 있다는 자재과 누나의 소개팅 주선. 토요일 오후 6시 롯데리아 건너편 신호등 앞에서 만난 그녀. 그리고 두세 번의 만남과 헤어짐. 우리들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소문은 나를 스토커로, 그녀를 피해자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몇 달 후 이 왜곡된 사실을 진실로 만들어버린 채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 또한 익숙해진 만남이 당연함으로 이어진 결과이므로 누구를 원망하지 않는다.

꿈을 꾸면 유독 반복되는 과거의 장면들이 있다. 군대 생활과도 같았던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도 그 장면중 하나다. 과거와 직면하는 까닭은 과거를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닐까? 내일을 위해서 사는 오늘이 아닌, 오늘, 바로 오늘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을 위해서. 그것이 몇 년 전 고등학교 시절을 찾아 추억 여행을 떠났던, 그리고 그 여정의 끝 부산의 한 비엔날레 작품에서 보았던 '오늘이라는 내일'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과거와 직면한 '오늘'을 끝으로 더 이상 고등학교 시절은 내 꿈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1993년 7월, 떨리는 마음으로 학교 정문을 나서던 그 시절부터 지금 오늘까지.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나는 묻고 또 물었다. 하지만 그 무수한 물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나의 삶에서 응답받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때로는 포기하고 때로는 잊어버리며 어떤 것들은 마음속에만 묻어둔 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것들도 있다. 

다만… 응답받지 못했던 것 하나 정도는 <응답하라 1994>가 답해주고 있다.


#응답하라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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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뉴스 시민기자입니다. 진보적 문학단체 리얼리스트100회원이며 제14회 전태일 문학상(소설)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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