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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미술관 이야기

 서울미술관
서울미술관 ⓒ 이상기

서울미술관에 가게 된 것은 부암동에 있는 유금와당박물관 때문이다. 오전에 유금와당박물관을 방문하고 나서 오후 답사지로 가까운 서울미술관을 택하게 되었다. 서울미술관은 지난해 8월 문을 열었고, 개관을 기념해서 '이중섭과 르네상스 다방의 화가들'전을 열었다. 그후 상설전시와 특별전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현재는 상설전시인 '한국 근현대 거장전'과 운보 김기창 탄생 백 주년 기념전 '예수와 귀먹은 양' 전시가 열리고 있다.

미술관 뒤에는 석파정이 있어 조선 후기 사대부가의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서울미술관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서울미술관은 유금와당박물관과 지척지간에 있다. 유금와당박물관이 도로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에 있다면 서울미술관은 대로인 부암동 자하문로 변에 있다.

 '우보천리'전 포스터
'우보천리'전 포스터 ⓒ 서울미술관

서울미술관의 입구는 길 쪽 동향을 하고 있다. 계단을 통해 1층으로 올라가면 매표소와 제1전시실이 있다. 이곳에서 나는 지난여름 박찬호의 야구 인생과 미술의 만남 'The Hero - 우리모두가 영웅이다'전을 보았다. 그리고 2층의 제2전시실에서 상설전인 '우보천리(牛步千里)'를 보았다. 이곳에는 나혜석, 이중섭, 장욱진, 천경자 등 한국 근현대 회화의 거장들 작품이 걸려 있다.

그동안 전시가 바뀌어 현재는 제1전시실에서 '예수와 귀먹은 양' 전시가, 제2전시실에서 한국 근현대 거장전인 'Deep & Wide'가 열리고 있다. 제2전시실에서는 여전히 '우보천리(牛步千里)'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들을 보고 나서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간다. 그곳에 석파정이 있기 때문이다. 건물로 따지면 3층이지만, 석파정은 대지와 정원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석파정에는 대문이 따로 있지만, 그리로는 출입을 막아 서울미술관을 통해서만 입장할 수 있다.

 석파정
석파정 ⓒ 이상기

서울미술관의 입장료는 9000원이어서 싼 편은 아니지만, 미술관과 문화유산인 석파정까지 볼 수 있으니 비싸다고 말할 수도 없다. 특히 석파정은 흥선대원군의 별장으로 유명하다. 이곳의 옛 지명은 삼계동(三溪洞)으로, 무계동(武溪洞)과 함께 창의문 북쪽에서 가장 좋은 별장터였다. 우리 일행은 표를 끊어 제1전시실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박찬호와 예술의 만남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야구 정규 리그가 끝난 지금, 영웅이 박찬호에서 류현진으로 조금은 중심 이동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The Hero - 우리 모두가 영웅이다'

히어로, 영웅, 이제는 스포츠 스타가 영웅이 되는 시대다. 그 중심에 박찬호가 서 있다. 그는 1994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 메이저 리그(MLB)에서 활동한 야구선수다. LA 다저스 선수로 활약하며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전성기를 맞았다. 15승/200이닝/200삼진/3점대 방어율을 기록했다. 그는 메이저 리그 통산 126승을 거두었고 2002년 자유계약선수가 되어 텍사스 레인저스와 5년간 6500만 달러를 받는 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박찬호
박찬호 ⓒ 이상기

이때까지 그는 야구계의 영웅이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2010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메이저리거 생활을 마감했다. 2011년 일본 프로 야구 오릭스 버펄로스에서 제2의 야구인생을 펼쳤다. 그곳에서도 성공하지 못하고 2012년 고향팀인 한화 이글스 선수로 돌아왔다. 그는 그해 11월 30일 은퇴와 함께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그는 프로야구 선수로 19년을 활동했으며, 그동안 한국 스포츠계의 영웅이자 우상이었다.
  
'영웅' 전시는 박찬호 선수의 야구인생을 따라 영광의 순간을 돌아보면서 그가 우리에게 준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조명한다. 전시물은 박찬호 자신이 사용하거나 수집한 물건(Collection)이 한 축을 이룬다. 유니폼, 모자, 배트, 글러브가 대표적이다. 다른 한 축은 아티스트들이 박찬호와 야구를 표현한 작품이다. 강익중, 권오상, 김태은, 뮌(Mioon), 송필, 유현미, 이배경, 이현세의 예술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강익중의 '우리 모두가 영웅이다'
강익중의 '우리 모두가 영웅이다' ⓒ 이상기

제1부의 제목은 퍼펙트 게임(Perfect Game)이다. 처음 들어가면 LA 다저스 시절 유니폼을 입은 박찬호의 조소상을 만날 수 있다. 권오상이 만든 '무제의 박찬호'다. 두 번째 방에는 김태은의 'Voyage of 39,490'이 있다. 박찬호의 야구인생을 아크릴 형식으로 표현한 별이 빛을 발하고 있다. 이배경의 '꿈(Dream)'은 박찬호의 꿈을 메타포 형식으로 표현했다. 유현미의 '마이 웨이'는 모빌 형식으로 야구를 표현했다. 예술성이 느껴진다.

아티스트의 지명도에서는 강익중과 이현세가 단연 앞선다. 강익중은 한국을 대표해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한 바 있는 설치미술가의 대가다. 그의 작품 '우리 모두가 영웅이다'가 이곳에 있다. 벽 전체에 화려한 그림과 글자를 콜라주하고, 그 앞에 우리가 사는 지구 형상을 표현했다. 이현세는 박찬호의 전설적인 야구 인생을 만화로 그렸다. 그래서 만화의 제목도 '레전드(Legend)'다. 만화에서 박찬호는 사자에 비유되고 있다. 사자처럼 포효하는 박찬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Park's Gallery
Park's Gallery ⓒ 이상기

제2부의 제목은 '박 갤러리(Park's Gallery)'다. 박찬호 선수의 모든 것, 메이저 리그와 LA 다저스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그중 박찬호의 선수가 던진 공이 손을 떠나 타자에게 이르고, 타자가 스윙을 하는 모습이 입체적으로 느리게 표현되어 있다. 이곳에는 또한 박찬호 선수가 사용하던 야구용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미국 메이저 리그와 LA 다저스의 역사를 기록해 놓고 있다. 그중 99번을 단 류현진의 유니폼이 눈에 띈다. 

운보의 예수에서 동양풍을 보다

현재 상설전시장에서는 '우보천리(牛步千里)', 'Deep & Wide', '예수의 귀먹은 양' 전시가 열리고 있다. 그중 서울미술관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전시가 운보 김기창의 '예수의 귀먹은 양'이다. 예수는 목자(牧者)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귀먹은 양은 김기창을 말한다. 운보는 듣고 말하지 못하는 농아였지만 그 난관을 극복하고 한국화의 대가로 우뚝 섰다. 6·25사변이라는 시련 속에서 그가 그린 "예수의 생애" 연작은 서양의 주제를 한국적으로 표현한 걸작이다.

 '아기 예수의 탄생'이 그려진 전시 포스터
'아기 예수의 탄생'이 그려진 전시 포스터 ⓒ 서울미술관

이들 그림에서 예수는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으로 표현되고 있다. '아기 예수의 탄생'에서 예수는 한옥 마구간에서 태어난다. 주변에 모인 사람들도 한복에 갓을 썼다. 아내 우향 박래현의 고향인 군산에서 피난하면서 친분이 있던 선교사의 권유로 한국적인 예수를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아기 예수 이집트로 피난'은 요셉이 말을 끌고 마리와 예수는 말에 탄 채로 광야를 지나고 있다. 그런데 그 광야도 한국의 산하다. '물 위를 걷다'는 오히려 물에 빠진 심 봉사를 구해주는 모습처럼 보인다. 이들 "예수의 생애" 연작은 모두 30점이다.

예수의 생애 외에도 인물화, 청록산수, 바보산수, 동식물을 모티브로 한 그림이 전시되고 있다. '태양을 먹은 새'는 몸뚱이를 붉게, 날개와 다리 그리고 꼬리는 검게 표현했다. 내면에 응축된 정열 또는 울분을 태양에 비유해 붉게 그렸다. '강호'와 '시집가는 날'은 청록산수의 대표작이다. 바위와 소나무 사이로 강이 흐르고, 그 사이에서 인간들은 집을 짓고 배를 띄우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관혼상제의 하나인 혼례식을 위해 가마를 탄 여인이 막 다리를 건너고 있다.

다리 건너에서는 신랑 집 사람들이 신부를 기다린다. 붉은색과 청록색이 정말 화려하다. 운보의 그림에서는 색이 강렬하고 선이 굵다. 그는 전통 동양화의 기법을 서양화에 잘 접목시킨 대가다. 동양적인 전통과 서양적인 화풍을 결합시켰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의 또 다른 그림 '군마도'는 역동적이고, '군해(群蟹)'는 사실적이다. 군마도는 말이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장면을 묘사했고, 군해는 게들이 떼를 지어 바다로 나가는 장면을 묘사했다. 이번 운보 전시회에는 그가 사용하던 붓과 물감 등 화구도 전시되고 있다.

상설전시장에서 만난 거장들의 작품

 박수근의 '우물가'
박수근의 '우물가' ⓒ 서울미술관

서울미술관은 감상자가 창조자가 되는 미술관을 지향한다. 관객이 예술품을 능동적으로 수용해서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그래서 선택과 집중 그리고 새로운 시도를 한다. 제2전시실에 공개되고 있는 '우보천리'와 'Deep & Wide'도 한국 근현대 거장의 작품을 엄선해 보여준다. 나혜석(1896-1948)에서부터 시작해서 천경자(1924-)까지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나혜석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유명하고, 천경자는 원시적인 색채와 상징적인 표현으로 유명하다.

'우보천리'전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박수근과 이중섭의 그림에서 가장 오래 머무른다. 그것은 그들의 그림이 주는 메시지가 누구보다 크기 때문이다. 박수근은 향토적인 정서와 시대적인 감성을 은근하게 표현했다. 이에 비해 이중섭은 시대의 아픔과 인간적인 감성을 표현주의적으로 강렬하게 표현했다. 박수근의 '우물가'에는 초가집과 빨래 그리고 물을 긷는 여인네들이 표현되어 있다. 이중섭의 '황소'는 화를 삭이지 못하는 황소의 숨소리가 느껴질 정도다.

 이대원의 그림
이대원의 그림 ⓒ 이상기

'Deep & Wide'전은 모더니즘 미술 1세대인 김환기로부터 지두화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오치균에 이르기까지 깊고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김환기의 작품은 한국적인 미와 정서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유영국의 그림에서는 구상과 추상이 만나 새로운 조화를 이룬다고 하는데, 맞는 것 같다. 김흥수의 그림은 점묘법을 응용해 화사한 색채의 낙원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대원의 농원 그림과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에서는 새로운 것을 찾기 어렵다.

오히려 전광영과 고영훈의 작품에서 새로운 시도가 보인다. 오치균도 물감을 두껍게 바르는 새로운 화법을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작가와 작품의 선정에서 주제의 일관성이나 기법의 통일성 같은 것을 찾기 어렵다. 기획전시가 유념해야 할 것은 전시 자체가 아니라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주제의식 또는 유형인데 말이다. '영웅'전이 새로운 콘셉트를 추구했다면, 'Deep & Wide'전은 새로움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내 미술계가 지속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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