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쓴다.
"손님은 왕이다." 진부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손님의 우월감을 높이려는 장사치의 교묘한 속셈과 손님을 잡아두고픈 애절함이 교차하는 명문이기에 21세기에도 당당히 살아 남아 있다. 조선왕조를 마지막으로 이 땅에서 왕이 사라진 지가 100년이 넘어가는데도 말이다.
20세기 조선의 마지막 왕을 끌어내린 것은 일본이었으나 21세기에 왕이 살아남은 까닭은 '왕 대접' 받고 싶은 소비자의 욕망과 그 욕망을 돈으로 바꾸고자 하는 사장님의 갈급함이 맞물린 결과이다. 그 욕망과 갈급함의 가운데에는 '생계'라는 볼모가 잡혀 있다.
아무리 '선한' 손님이라도... 이럴 땐 당황스럽다 인터넷에서 캠핑 용품을 판매하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대부분의 손님들은 '선하다'는 것이다. 판매자로서 손님을 선하다고 판단하는 것조차 손님을 왕으로 모시려는 이들에게는 불경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겠으나, 캠퍼들과 거래를 하고 있으면 '선하다'라는 말이 진심으로 우러난다.
내 개인적인 경험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돈·접대·모욕·무시·칼 같은 갑을 관계가 날을 세운 제약 영업 세계에서 만난 사람들에 비한다면 캠핑의 세계는 천국의 문에 가까운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천국의 문에 가까이 다가섰다고 해도 판매는 판매, 손님은 손님이다. 곤란한 경우는 많고 해결이 되지 않는 난제 앞에서는 그저 당황스럽기만 하다. 이를테면 이런 문제들이다.
사용하자마자 문제가 발생한 제품의 교환 혹은 환불. 텐트와 같은 캠핑 용품은 대부분의 제조사에서 초기 불량이라고 해도 야외에서 사용했다면 교환이나 환불을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텐트는 써 보지 않고는 불량을 알아내지 못하는 문제가 허다하다.
저가의 제품은 A/S 비용이 판매가에 육박할 뿐더러 오가는 왕복 택배비가 판매가보다 더 비싸지는 경우가 있어 교환이나 일부 보상 처리를 주로 하게 된다. 이것을 A/S하자면 여러모로 비효율적일 뿐더러 솔직히 수리할 방법이 없는 게 대부분이다.
지연 도착에 따른 불만도 만만치 않다. 대부분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아침에 캠핑을 떠난다. 이 시간제한을 넘기면 주문한 물건은 쓸모가 없게 된다. 목요일에 주문해서 금요일에 받기를 기다리던 손님에게 "확실히 금요일까지 도착하느냐"고 묻는 전화가 자꾸 온다. 그런데 택배는 사정에 따라 하루 이틀 정도 늦기도 하는데 판매자로서는 택배회사를 컨트롤할 힘이 없다.
이런 경우 손님들이 '왕의 요구'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판매자인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들의 요구는 온당하기 때문이다.
'당신 과한 거 아냐' 조목조목 따지다간 돈이 사라진다하지만 그 요구가 온당한 것이라 하더라도 첫 마디부터 끝까지 비속어인데다가 내 직업 자체를 비하하거나, 업체 규모가 작아서 생기는 빈번한 일로 치부해버리면 그건 좀 속이 쓰린다. "그럼 그렇지", "형편 없구만.", "이럴 줄 알았어, 내가!"라는 말 등이 그렇다. 이런 전화를 하루에 두세 번 받다 보면 그날 저녁은 으레 소주 한 병, 맥주 한 병, 아주 매운 닭발 한 봉지를 사 들고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가게 된다.
그들이 왕이 될 수 있는 까닭은 그들이 돈을 썼고, 나는 가정을 꾸려가기 위해 그 돈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온당한 요구는 요구라서 접수하겠지만 당신의 태도는 과한 게 아니냐'고 조목조목 따지다간 돈은 사라진다. 가슴이 떨려 그런 말은 입 밖으로 꺼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유럽 어느 나라에서는 손님을 앞에 두고 일상사 이야기에 바빠 계산을 미루는 종업원의 사생활도 존중해준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렇기에 고객의 온당한 요구 앞에서는 말을 더듬고 만다. 조금 더 이 직업에 적응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널뛰듯 두근거리는 심장과 불안한 심리상태는 나약함에서 비롯되었으며 잘못 되었노라, 스스로를 타이른다.
사회 통념상 이런 상황에서는 판매자의 장사꾼 기질(그런 성격으로 장사하겠냐?)이 논란거리가 되지, 손님의 태도는 비판받지 않는다. '손님은 그럴 수 있다'가 정답이다. 돈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허락하지 않는다. 돈을 쓰는 사람이 돈을 받는 사람의 감정까지 고려한다는 건 비상식이다. 손님이 판매자에게 공손하게 대하는 건 그 사람의 원래 성격이 공손하고 본성이 선하기 때문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거래에는 물건만 오고가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나 역시 캠핑을 다니는 한 사람으로서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 득이 되는 거래를 할 수 있는 요령은 분명히 있다.
빨리빨리. 대한민국 사람들이 너무도 사랑하는 말이다. 빠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인터넷 구매는 참으로 편하고 반갑다. 그런데 너무 급할 때가 있다. 오늘 구매 결정해서 부랴부랴 결제하고 내일 들고 가지 못해 속을 끓인다. 빠른 시스템에 내 마음은 더 바빠져서 쫓겨 다니는 거다. 그건 쉼과 여유를 찾아 떠나는 캠핑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게 급하게 결정하고 시달리는 건 성격 급한 회사 부장님 때문에 사무실에서 신물 나게 당하지 않았던가.
요즘 택배는 대체로 정확해서 접수 후 다음날 배송이 완료되고 거기에 하루만 여유를 두면 원하는 날짜에 충분히 받아볼 수 있다. 그러니까 금요일 오후에 물건을 받고자 한다면 수요일까지 주문을 해 두면 조바심 내지 않고도 여유롭게 물건을 챙길 수 있다. 중간 과정이 궁금하다면 목요일쯤 배송 조회를 해 보면 되니까 안심도 되고, 발송에 문제가 있다면 조정할 시간도 버는 셈이다.
인터넷 거래에서는 사기의 위험도 늘 도사린다. 노트북을 시켰더니 벽돌이 배달되고 파격할인이라고 해서 샀더니 돈만 받고 물건은 오리무중이고 전화도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흔하다. 하지만 그런 사기는 인터넷이 아니라 자신을 확실히 드러내지 않는 자와 하는 모든 거래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자신을 당당히 밝힌 판매자라면 그 규모와 상관없이 신뢰도는 높다.
이를테면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 주소, 사업자번호 등의 공인된 정보 말이다. 이름과 전화번호쯤은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지만 사업자번호, 통신판매신고번호는 조작하기가 힘들다. 두 번호는 공인 정보로 봐도 좋다. 국세청이나 관할 구청에서 클릭 몇 번, 전화 한 통이면 사실 확인이 가능하다.
좀 더 편하고 확실한 방법은 카드결제다. 카드결제는 거래에 문제가 있을 시 언제라도 취소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거래는 카드결제로 진행하면 안심이다. 현금결제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현금영수증을 발행해달라고 하자. 현금영수증과 카드결제가 가능한 판매자라면 세금 꼬박꼬박 내는 성실 사업자임이 증명되는 거다.
거래는 주고받는 행위이고 그것을 시작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 순전히 손님이다. 왕으로 군림할지 현명한 소비자가 될지는 손님이 결정한다. 판매자는 그저 따를 뿐이다. 하지만 거래에 물건만 오고 가는 건 아니다. 마음도 오고 간다. 마냥 허황된 소리가 아니다. 내가 파는 물건이 싸고 좋다고 칭찬하는 구매자와 거래할 때와 오전에 구매하고 오후에 물건이 도착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구매자와 거래할 때의 마음은 전혀 다르다.
판매자를 이해해주는 구매자는 어떻게는 단골을 만들어 조금이라도 더 할인해주고 싶은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현명한 소비자가 지나간 자리에는 추가 할인과 혜택이 소복이 쌓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아날로그 캠핑' 카페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