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의 단체협약(단협)이 깨져나가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전교조에 대해 법외 노조를 통보하자 교육부와 시도교육청들이 단협 파기를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난 달 28일 한 장의 공문을 전교조에 보냈다. 고용노동부의 '노조 아님' 팩스 통보 4일 만이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고용노동부에서 전교조를 노조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함에 따라 귀 기관은 단체교섭 등과 같은 노조로서의 권한을 상실했다. 이에 따라 귀 기관이 우리부로 요구한 단체교섭이 중지됨을 알려드린다.교육부의 선언 "노조가 아니니까 단협 효력은 끝났다"교육부는 지난 달 25일에도 보도자료를 내어 "기존 체결한 단협은 10월 24일 이후 효력을 상실했다"고 선언했다. 서울시교육청을 비롯한 10여 개의 시도교육청도 이런 교육부의 움직임에 발맞춰 나섰다.
1999년 전교조 합법화 이후 14년간 법으로 보장됐던 단단한 단협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된 셈이다. 이런 형편을 보면서 교육계에서는 "'응답하라 1989년' 시대, '교장천국 학생지옥' 시대가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싹트고 있다.
1989년 출범한 전교조는 촌지와 야자(야간자율학습), 0교시 등을 반대하는 운동을 펼쳐왔다. 합법화 뒤에는 학교가 민주주의 학습장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노력들이 쌓인 것은 전교조 단협이었다.
시도교육청 가운데 가장 최근인 지난 7월 26일 맺은 부산교육청-전교조 단협을 보면 전체 8개 장 60개 조항 가운데 3개 장 15개 조항이 학생의 복지와 인권과 직결된 내용이다. 여느 사기업체의 단협과 달리 전교조 단협은 교사들의 봉급 인상 등의 내용이 빠진 대신 학생복지와 학교 민주화 내용이 많이 담겨 있는 것이다.
제3장 '교육환경 개선'과 제4장 '학생자치활동 및 학생인권 보장'에서 양쪽은 ▲ 학습준비물로 초등학생 1인당 3만 원 이상 포함 ▲ 학급운영비 예산에 반영 ▲ 학교운영비의 5% 이상 도서구입비로 포함 ▲ 학생자치활동비 학교예산에 반영 ▲ 오후 9시 이후 자율학습 제한 등을 담았다.
이밖에도 단협에는 "모든 화장실에 화장지, 손 씻는 세제를 비치하도록 지도한다" 등의 글귀에서 보듯 학생복지 관련 내용이 자세하게 규정되어 있다.
2011년 이후 교육청과 단협이 체결된 9개 시도 교육청과 전교조의 단협 내용을 전교조 정책실이 분석한 결과 단협이 깨지면 대부분의 지역에서 강제보충수업과 야자, 0교시 수업이 부활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에 맺은 경기도 단협은 0교시 수업과 강제보충수업을 단협으로 금지시켰다. 단협은 "방과후학교는 수강 희망 학생만 참여하며 강제 자율학습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한다"면서 "정규 교육활동 시간 이전(0교시)에 조기등교를 강제로 시키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이 같은 내용은 2011년 7월에 맺은 서울의 단협도 비슷하다.
학생준비물 지원액과 학생 생일잔치비도 단협 규정전북, 강원, 전남, 경기, 부산 등 4곳은 학생준비물 지원액 등을 정해놓아 학부모들의 부담을 덜기도 했다. 학급 담임이 생일 등을 맞은 학생들을 위해 쓸 수 있는 학급운영비 예산을 단협에 규정한 지역 또한 9곳 전체였다.
이와 함께 9개 지역은 모두 공사립학교와 교육청에 민주적 인사위원회를 두도록 하는 내용의 단협을 체결하고 있었다. 학급담임 배정, 보직교사 임명, 교사전입요청 등을 공개된 위원회에서 심의, 자문하도록 한 것이다.
이에 대해 교장단체 등은 "학교장 책임제를 훼손하는 내용"이라면서 반발해왔다. 결국 단협이 파기되면 인사위원회 운영 또한 파행을 겪게 되어 교장의 인사전횡과 인사비리가 만연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박진보 전교조 정책교섭국장은 "전교조 단협의 내용은 14년 동안 참교육을 해온 교사들의 피와 땀이 담긴 것"이라면서 "그렇기에 교장의 독선을 막는 민주주의와 학생이 학교에 오고 싶도록 하는 학생복지 내용이 셀 수 없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박 국장은 "이런 소중한 열매인 단협이 정부의 '노조 아님'이라는 사상초유의 팩스 한 장으로 무력화될 수밖에 없어 속상하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