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 대선개입, 해도 해도 너무한다!""국가기관 대선개입, 특검으로 진상규명!"집회가 시작되자 빗방울이 굵어졌다. 9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을지로 훈련원 공원,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비닐 우의를 입거나 우산을 받쳐 쓴 시민 300여 명이 모여 사회자가 선창하는 구호를 따라 외쳤다.
이들은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의 회원들과 임원, 활동가들. 참여연대는 국가정보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 국가보훈처, 행전안전부 등 국가기관들이 여당 후보를 지지하고 야당 후보들을 반대하게 만들려고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으로 움직였음이 하나씩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의 '법과 원칙'은 도대체 무엇인가?"김균 참여연대 공동대표는 "거리행진은 지난 1987년(6월항쟁) 이후 처음 참가한다"면서 "이것은 지난 대선 당시 국가기관의 불법 선거개입 행위가 1987년 이래 유래가 없었던 사건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을 전공한 사람으로써 분노를 느낀다"고 말문을 연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국정원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 지금까지의 경과를 몇 단계로 나누어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맨 처음 사건이 터지고 (정부·여당은)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단초가 드러나니 개인차원이라고 축소했다. 전모가 드러나니 '선거법 위반은 아니다'라며 선거법 위반으로 수사하지 말라는 지시를 했다. 문제가 확산되자 '하긴 했는데 영향력이 몇%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은희 과장, 윤석열 팀장 등이 철저히 수사를 진행하고 촛불시민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 두 사람을 찍어냈다. 법원이 검찰의 공소장 변경을 허가하니 이제 물타기를 시도하면서 통합진보당, 전교조, 전공노에 대한 공격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조 교수는 "처음 부인하는 데서 시작해서 정부가 단계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보면서 어찌 국가기관이 저럴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박대통령이 말끝마다 들고 나오는 '법과 원칙'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국정원 사건을 파헤쳐 여기까지 온 것은 박 대통령의 법과 원칙이 아니라, 권은희 과장과 윤석열 팀장, 그리고 촛불시민들의 법과 원칙 때문이 아니었는가"고 반문했다.
이날 참여연대는 "선거가 불공정했다는 상식적인 지적을 해도, 박근혜 정부와 여당은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거냐고 한없이 고압적인 자세로 국민을 협박하고 야당을 몰아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참여연대는 "나름대로 국가정보원의 불법행위를 파헤쳐가던 검찰총장와 특별수사팀장을 기어이 쫓아내 버렸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나는 불법행위로 도움받은 바 없다'고 주장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남재준 국정원장, 황교안 법무부장관, 김관진 국방부장관 등은 마치 공범처럼 국기 문란행위를 옹호하거나 증거를 인멸하고 외압을 가하여 불법행위의 전모를 밝히고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을 철저히 가로막고 있다"고 성토했다.
박근혜 정부의 축소은폐 시도가 계속될수록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은 지난 대선에서 일어났던 '과거형의' 사건이 아니라 현 정부가 개입된 '현재진행형'의 국기 문란사건이라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 진상을 성역 없이 규명하기 위해서는 특별검사 임명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훈련원 공원에서 집회를 마친 참여연대 회원들은 오후 5시경 거리행진을 시작해 을지로를 거쳐 오후 7시부터 서울광장에서 국정원 시국회의 주최로 열리는 '제19차 범국민 촛불대회'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