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수학여행 등에 사용되는 전세버스 연식을 속여 제공한 대전 지역 전세버스업자 10여 명이 지난 6월 공문서 위조와 사기죄 등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가운데, 인천지역 전세버스업체들도 버스 연식을 속여 학교 수학여행 등에 제공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대전 지역 전세버스업자들의 불법 행위는 지난해 5월 대전의 한 중학교 수학여행에서 버스가 산비탈에서 굴러 41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고가 발생한 뒤, 경찰이 해당 버스의 연식이 조작된 사실을 확인하고 지역 업체 전체로 수사를 확대한 끝에 밝혀졌다.
당시 대전 지역 업자들은 학교가 안전상 문제로 전세버스 계약 과정에서 버스 차령(사용연한)이 5년이 넘지 않을 것을 요구하자, 5년이 넘은 버스의 자동차등록증을 위조해 계약을 따냈다. 그런데 이번 <시사 인천>의 단독 취재 결과, 인천에서도 대전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시사 인천>은 제보자가 건넨 자료와 함께 노현경 인천시의회 의원이 인천시교육청에 요청해서 받은 초·중·고등학교 열 곳의 2008~2013년 수학여행과 현장체험학습 시 계약한 전세버스업체 현황과 버스 임대차 계약서, 계약 당시 접수한 전세버스 자동차등록증 등을 한 달 동안 분석했다.
분석 결과, 학교 열 곳 중 다섯 곳에서 전세버스업체 두 곳이 버스 11대의 자동차등록증을 스무 차례 위조해 학교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계약 당시 업체가 학교에 제출한 자동차등록증 사본과 사본에 적힌 차량 번호를 토대로 누리집 '자동차대국민포털'에서 발급한 자동차등록원부 또는 제보자가 보유한 실제 자동차등록증과 자동차등록정보확인서를 비교해 확인할 수 있었다.
A업체(동구 소재)는 서구에 위치한 ㄱ초교의 2009년 4월 1학년 현장체험학습에 버스 여덟 대를 제공하기 위한 계약을 체결하면서 1999년 연식인 버스의 연식을 지우는 방법으로 위조한 자동차등록증을 제출했다. 이 업체는 최초 자동차 등록일을 2000년 2월에서 2004년 2월로 위조했다.
또, 이 업체는 남구에 있는 ㄴ초교의 2011년 6월 1·4·5·6학년 현장체험학습과 수련활동에 버스 49대를 제공하기 위한 계약을 체결하면서 2002년 연식인 버스를 2007년 연식으로 위조한 자동차등록증을 제출했다. 최초 등록일도 2002년 4월에서 2007년 7월로 위조했으며, 이런 방식으로 버스 여덟 대의 자동차등록증을 열세 차례 위조해 제출했다.
B업체(연수구 소재)는 연수구에 있는 ㄷ중학교의 2011년 5월 1학년 수련활동에 버스 일곱 대를 제공하기 위한 계약을 체결하면서 2005년 연식인 버스를 2006년 연식으로, 최초 등록일도 2005년 7월에서 2006년 7월로 위조한 자동차등록증을 제출했다.
이 업체는 또, 남동구에 위치한 ㄹ초교와 2011년 10월, 2012년 8월 전세버스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면서 버스 세 대의 자동차등록증을 세 차례 위조해 제출하는 등,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버스 세 대의 자동차등록증을 여섯 차례 위조해 학교 세 곳에 제출했다.
이밖에 제보자가 확보한 A업체의 2008~2009년 배차표를 비교·분석해보면 A업체는 다른 학교 세 곳에도 위조한 자동차등록증을 제출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학교서 자동차등록증 사본 안 받아... 계약서류에 날인·날짜 없기도자동차등록증 위조 외에 다른 문제점도 발견됐다. 먼저 자동차등록증 사본을 제출하지 않은 경우가 전체 계약 건수의 절반이 넘었다. 이에 노현경 의원이 2차 자료 제출을 요청하자, 해당 학교들은 '차량 연식을 구두로 확인해서 별도의 자동차등록증 사본을 제출받지 않았다'는 내용의 사유서를 제출했다. 2차 자료를 보면, 일부 학교에선 '5년 이내'라는 연식 제한을 뒀음에도, 8년에서 10년이나 지난 버스들을 계약한 사례도 발견됐다.
어떤 학교는 2011년에 계약했는데, 2013년에 정비를 받았다는 도장이 찍힌 자동차등록증 사본을 제출하기도 했다. 계약 당시 자동차등록증 사본을 받지 않았다가 자료 제출을 요청하자 급하게 허위 자료를 만들어 제출한 것이다.
다른 문제점은 학교가 전세버스업체와 작성한 계약서에 학교와 업체의 직인이 날인돼 있지 않은 경우가 다수라는 데 있다. 계약서에는 날인만 없는 것이 아니라 계약 날짜도 기재돼 있지 않았다.
계약서에 날인과 날짜가 없으니 마음만 먹으면 계약서 조작이 가능하기 때문에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한 초교는 2008~2013년에 전세버스 임대차 계약을 모두 42건 체결했는데, 열두 건의 계약서에 날인이 찍혀있지 않았고, 계약한 달만 적혀있고 날짜는 없다.
버스 업자-학교 간 리베이트 의혹... "안전 위해 차령 제한 강화해야"
이렇게 업체들이 위조한 차량등록증을 제출하고 있는데도 학교는 전혀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계약 서류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버스업체와 학교 사이에 리베이트(지불대금의 일부를 지불인에게 되돌려 주는 일)가 있었던 것은 아니냐는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
또한 인천지역 전체 학교(500여 개)를 대상으로 조사할 경우 엄청나게 많은 불법 사례가 적발될 수 있어, 이를 제대로 지도·점검하지 않은 시교육청도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노현경 의원은 지난 8일 <시사 인천>과의 인터뷰에서 "학생들의 안전을 담보로 차량등록증을 위조한 업체들을 철저히 수사해 대전 사례처럼 엄벌에 처해야 한다"며 "리베이트 의혹이 있는 업체와 학교와의 유착 관계도 철저히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교육청 복지재정과 계약담당 사무관은 "수의계약 이외에는 전자 계약을 많이 하기 때문에 날인이 안 찍혀있어도 크게 문제가 없다"며 "인천지역 업체들이 버스의 연식을 위조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업체에서 버스 사용 당일 계약상의 버스가 문제가 있어 못 왔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연식이 오래된 버스를 사용하는 경우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인천전세버스운송사업조합 관계자는 "인천에선 대전지역처럼 업체가 차량등록증을 위조한 경우는 전혀 없는 것으로 안다,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만, 업체와 학교와의 계약사항은 둘 사이의 거래이기 때문에 조합이 자세한 내용을 알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편, 대전 지역 전세버스업자들의 자동차등록증 위조 적발로 올해 초 교육부는 각 시·도교육청에 전세버스 임차 계약 시 유의사항을 안내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시·도교육청은 각 학교로 이 공문을 그대로 발송했다.
내용을 보면, '전세버스 임차 계약 시 차량등록원부를 직접 확인하거나 정부민원포털 민원24시를 통해서 등록원부를 직접 열람해 실제 출고일자를 확인해 계약업무에 만전을 기하라'는 것이다. 또한 '업체들의 민원 발생이 예상되니 과도한 연식 제한을 하지 말고, 여객자동차운송사업법에서 정한 영업용 전세버스 차령이 9년임을 유의하라'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이와 관련해 인천 지역 전세버스업체에서 일했던 제보자는 "전세버스업체들이 불법으로 지입차량을 운행하면서 운전자들이 차량 수리나 정비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연식이 5년도 지나지 않은 버스들도 운행하다 문제가 생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이어 "교육부에서 9년 이내 차량 계약은 문제가 없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지만, 이는 시정돼야 한다"면서 "학생의 안전을 위해서는 예전처럼 5년 이내 차량으로 연식을 제한해야 하고, 계약서도 이에 따라 작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울러 학교는 계약 당시 제출받은 차량등록증과 차량이 동일한지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인천(http://www.isisa.net)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