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까지 봉사활동과 여행으로 보냈던 아프리카에서의 3년은 황홀했습니다. 그것은 자본주의화되고 개인화되어 가는 우리에 대한 성찰이었고, 아직도 더불어 살아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한 환희였습니다. 아프리카하면 떠오르는 어둡고 부정적인 이미지들. 그 속으로 돌을 던집니다. 그곳은 보통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었습니다. - 기자말 모시를 탐험한다. 한낮의 땡볕 속에서 걷노라면, 얼굴이 사과처럼 익어버린다. 흘러내린 땀이 눈을 찔러 아려온다. 그래도 좋다. 사람을 만나고, 길을 걷고, 망고 나무 아래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구멍가게 차양 밑에서 시원한 소다 한잔으로 갈증을 날려 보내면 그만이다. 그렇게 살 집을 구한다는 핑계로 한 달 넘게 세상 모르고 쏘다녔다.
킬리만자로는 모시에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관광객이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아루샤에 머무는 관계로 번잡하지 않은 중소도시의 모습이다. 시내를 중심으로 동쪽으로 다르에르살람으로 가는 기다란 기찻길이 뻗어 있고, 서쪽으로는 한 시간 거리의 아루샤로 통하는 길이 나 있다. 그리고 시원하게 뚫린 이 길 주변으로 샐러리맨과 자영업자가 밀집한 소웨토 지역과 외국인·인도인 그리고 소수의 탄자니아 중산층이 거주하는 샨티 타운이 아름다운 가로수 길 좌우로 펼쳐져 있다.
수백 평 대지 유럽식 저택... 여기가 아프리카 맞아? 제국의 식민지에서 해방된 아프리카는 자신들도 가까운 미래에 그토록 닮고 싶어했던 서구의 모습이 될 수 있다는 장밋빛 꿈에 취해 있었다. 백인들의 수탈을 눈으로 봐왔던 그들 앞에는 어마어마한 돈과 앞으로 거둬들일 세금이 놓여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돈벼락을 맞은 졸부처럼, 오랜 준비와 미래에 대한 청사진 없이 등장한 권력층은 아프리카 독립 정부를 구성한다는 명목으로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기에 이르렀다. 미래를 여는 첫 단추부터 잘못 되었던 것이다.
숫자라고 해봤자 얼마되지 않는 흑인 엘리트들을 정부에 참여시키려면 당근이 필요했고, 그것은 곧 상당한 액수의 돈과 안락한 생활 여건을 의미하였다. 다행히 백인이 떠난 고급 저택은 그대로 흑인 각료들의 몫이었으나 점차 형식상의 정부를 채울 중하급 관료들이 필요하였다. 민중의 피폐한 삶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백인이 남기고 간 떡고물과 새로운 권력의 맛에 취한 자들은 아무 부끄러움 없이 그들만의 소꼽놀이에 해지는 줄 몰랐다.
예를 들면 잠비아 같은 나라에선 건설 분야에 할당된 예산 중 70% 이상이 관료들을 위한 주택 건설에 쓰인 반면, 서민들을 위한 건설 사업은 5%도 되지 않았다. 이렇게 아프리카의 많은 도시에는 수백 평의 대지를 가진 유럽식 저택이 모여있는 부촌이 있다. 다르에르살람, 루사카, 아루샤, 나이로비, 하라레 등 내가 머물렀던 모든 도시들은 '여기가 과연 아프리카인가' 싶을 정도로 잘 정돈된 가로수 길과 저택들이 모여 있는데, 식민지 시절 유럽인이 거주했던 장소에다가 지방 도시 정부 관료를 위한 고급 신흥 주택이 더해진 까닭이었다.
시내 옆에 누운 기다란 철길은 어느 사회처럼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사이의 경계선을 의미한다. 아스팔트 도로는 철로를 건너자마자 갑자기 끊기고, 풀풀 흩날리는 먼지를 뒤집어쓴 염소 떼들이 신작로를 오간다.
이곳은 도시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가난한 노동자와 거리를 배회하는 실업자, 그리고 하루에도 수없이 마주치는 킬리만자로 등반 '삐끼'들과 일당 팔천 실링짜리 포터들이 살아가는 엔조로 지역이다. 어두컴컴한 흙집에서, 울퉁불퉁한 좁은 골목에서 아이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헬로, 헬로'
"엔조로? 가서 딱 하루만 살아봐, 그럼 알게 될테니"맘에 두었던 엔조로의 킴비씨가 사는 집은 만나는 사람마다 다들 고개를 젓는다.
"시내에서 소매치기꾼들이 어디로 튀는지 알기나 하는 거야? 기찻길 아래 엔조로로 도망가는 거야. 거기로 가면 경찰도 못 잡아. 그 미로 같은, 빌어먹을 동네엔 전부 다 도둑놈들뿐이라구."터미널에서 만난 앞으로 근무하게 될 움브웨 학교 선생은 기가 막힌다는 듯, 웃음보를 터뜨리기까지 한다.
"으하하하. 이 순진한 외국 놈아. 거기는 왜 간다고 그래?" "가봐. 가서 딱 하루만 살아봐. 그럼 알게 될테니. 으흐흐흐.""거기 라리가 클럽 가는 데지? 바나나 숲이 있어 좋다고? 거기는 클럽에서 놀다가 숲속에 들어가 마약하는 데야. 낄낄.'조언을 구하는 사람들마다 다 이런 식이다.
끈끈한 공동체 연대의식으로 법이 그리 필요치 않았던 부족사회가 해체되고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빈부의 차이가 벌어질수록 사회 범죄는 늘어나는 법이다. 그리고 이를 제어할 국가 권력이 대중으로부터 멀어진다면 이는 단순한 생계형 범죄를 넘어서 사회 전체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오늘날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계속되는 쿠데타, 독재, 부패 등으로 권력의 정통성이 부정되거나 스스로 대중들의 신뢰를 얻는데 실패하였으며, 그 결과 발생한 내전의 소욛돌이, 폭동 등 사회 불안과 범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기나긴 내전으로 인한 강간, 살해, 납치 등의 반인륜적 범죄로 세계적인 이슈거리를 만든 콩고, 기독교와 이슬람의 반목을 조장하여 권력 쟁취에만 혈안이 된 나이지리아, 수십 년간 통치해온 독재 세력이 부패한 권력 집단임이 드러난 짐바브웨, 빈부의 차이가 하늘 땅 만큼인 케냐와 남아공에서 사회 불안은 일용할 양식만큼 중요한 생사의 문제가 되고 있다.
1960년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등장한 초대 대통령 쥴리어스 니에레레는 탄자니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120여 개가 넘는 부족을 통합하고 아프리카의 미래를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 찾고자 하였다. 상공업주의의 환상에 사로 잡혀 나라의 문호를 개방하고 무분별한 도시 개발에 탐닉한 여타의 다른 아프리카 신생국과는 달리 니에레레는 농업 생산력의 극대화에 초점을 맞춘 우자마 운동 (탄자니아식 자력갱생운동)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탄자니아에는 아직까지 농촌의 공동체적 정신이 살아있다. 부족의 대립과 알력 혹은 이를 조장하는 정치 권력으로 인해 사회적 위기를 겪는 다른 아프리카 사회와는 달리, 탄자니아는 오늘날 아프리카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제 탄자니아도 변하고 있다. 행복의 최대 조건을 소유한 물질의 정도에서 찾는 자본주의의 파도는 이곳이라고 비켜가지 않는다. 이제 사람들은 더불어 함께 살던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은 기찻길 아래 자물쇠가 채워진 한 평짜리 움막에 몸을 담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소외된 자가 되었다. 킴비씨가 사는 집도 그런 곳이었다.
모두가 말렸지만, 킴비씨 집을 택한 이유 그래도 눈에 밟힌다. 철길 너머 언덕 아래로 내려가면 킬리만자로 산에서 발원한 옹달샘이 실개천이 되어 흘러가고, 그 물을 받아 빽빽이 들어찬 바나나 숲. 그리고 동네 초입부터 반겨주는 꼬맹이들.
'애들이 예쁘다고? 며칠 지나면 네 집 들어와서 훔쳐가는 좀도둑으로 변할걸? 크하하하.'그래도 다행히 그곳은 빈민들의 거주지인 엔조로의 외곽이었다. 비만 왔다하면 수렁으로 변해 자전거도 머리에 이고 가는 달동네와 불과 100m 거리이지만, 그래도 엔조로에서 제일 번화한 지역이었다. 다른 동네로는 갈 형편이 못되지만, 지옥 같은 달동네를 탈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차선책으로 사는 곳인 셈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허물어져가는 흙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미로처럼 뻗은 좁은 골목가로 시궁창물이 흘러내리고, 세상에서 가장 소외된 자들이 배설하는 악다구니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나는 옥수수 부대로 가린 공동 화장실의 냄새에 쫓기고, 널린 쓰레기 위로 윙윙대는 파리 떼에 도망치는 인간이다. 나는 슈바이처도 천사도 아닌, 자원봉사자란 옷을 걸쳤을 뿐인 그저 편리함을 좇는 이기적 인간일 뿐이다.
오랜 궁리 끝에 엔조로에서도 킴비씨 집을 선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새 집이라서 나름 깨끗할테고, 킴비씨 가족들과 한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아 안전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겠으며, 킴비씨 사촌 동생이 작년까지 움브웨 선생으로 재직했다는 소리에 믿음이 더했다.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위험하고 더럽다는 구실로 아프리카의 현실에서 동떨어진 채, 샨티 타운에 담장을 두르고 사는 외국인의 모습을 극복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시장에서 과일을 사들고 세 번을 찾아가 집을 둘러보았다. 마지막으로는 밤에 돌아다니는 '잡놈'은 없는지, 새벽녘 울어 젖히는 닭소리는 얼마나 시끄러운지 알고자 킴비씨 집의 허름한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렇게 공을 들인 후, 여관방에 묵혀 두었던 보따리를 안고 이사하기에 이르렀다
방안에 누워 있자니 행복감이 밀려온다. 문도 달리지 않는 방안엔 모기와 거미줄투성이고 바닥은 새까만 도마뱀 똥으로 어지러워도, 내 집이라 생각하니 절로 편안한 마음이 되어 눈이 감겨온다.
앞으로 생활하게 될 2년의 탄자니아 생활. 바나나 숲에서 불어온 바람이 살며시 창문을 두드리고, 귓바퀴로 둥글게 돌아 들어오는 킴비씨 집 꼬맹이들 소리가 감미롭다.
누워 공상에 도취한 저녁, 벽의 작은 창가 너머로 들려오는 아이들 소리에 행복을 발견하였던 이십대의 한대수는 어떤 모습이었던가. 세상에 날카로웠던 그의 순수한 감성과 들려오는 따뜻한 마음이 새삼스러운 이사 온 첫 날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