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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자연인 남태평양의 바다와 숲, 원주민, 그리고 동물들과 공존의 삶을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면 이 영화는 충분히 가치 있는 역할을 한 셈일 것입니다.
한 번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자연인 남태평양의 바다와 숲, 원주민, 그리고 동물들과 공존의 삶을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면 이 영화는 충분히 가치 있는 역할을 한 셈일 것입니다. ⓒ 이안수

 원주민 헤럴드는 신기에 가까운 분이었습니다. 숲과 바다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그 속에 깃든 모든 동식물들의 생태에 대해서 완전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이해'라는 말은 그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영대가 헤럴드의 등에 업혀 남태평양의 투명한 바다를 유영하는 이 모습은 온전하게 자연의 일부가 된 모습이면서 토끼와 거북이의 모험을 생각나게 합니다.
원주민 헤럴드는 신기에 가까운 분이었습니다. 숲과 바다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그 속에 깃든 모든 동식물들의 생태에 대해서 완전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이해'라는 말은 그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영대가 헤럴드의 등에 업혀 남태평양의 투명한 바다를 유영하는 이 모습은 온전하게 자연의 일부가 된 모습이면서 토끼와 거북이의 모험을 생각나게 합니다. ⓒ 이안수

#1

11월 14일, 재개봉되는 제 딸, 이나리 주연의 어린이를 위한 영화 <표류일기>는 실제로 세 명의 저희 딸, 아들의 성장과 생각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16년 전 '표류일기'제작 발표회장에서의 주연배우, 이나리
16년 전 '표류일기'제작 발표회장에서의 주연배우, 이나리 ⓒ 이안수

첫딸 나리가 주연으로 캐스팅된 1997년 당시 나리는 10살, 둘째딸 주리는 8살, 막내인 아들이 4살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팔라우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되는 영화라 장기간 남태평양의 팔라우공화국에 체류해야 했습니다.

 팔라우의 자연은 미래 인류의 자산입니다.
팔라우의 자연은 미래 인류의 자산입니다. ⓒ 이안수

어린이가 주연인 영화는 그때도, 지금도 기획되거나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전 연령대가 관람 가능한 가족영화나 어린이 영화는 상업성이 크지 않으므로 제작자들이 쉽게 돈을 들이려는 분야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모든 어린이들은 할리우드나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그들의 사고와 상상으로 만들어진 꿈에 길들여질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2

그런 의미에서 나리가 어렵게 기획된 가족 모험영화에 주연으로 발탁된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의 계약에 단서를 달았습니다. 팔라우에 저의 둘째딸과 아들을 동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어린 나리의 장기간의 촬영을 위해서는 어머니의 동행이 필수적이었으므로 두 모녀가 떠나고 저와 어린 남매만 한국에 남게 되었을 경우 제가 곤란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잡지사의 편집국장으로 근무할 당시였으므로 생활이 몹시 불규칙한 때였습니다. 편집 마감을 위해 간혹 밤샘도 감수해야하는…. 

보다 중요한 이유는 아이들의 경험을 위해서였지요. 어리시절 다른 문화권에서의 생활을 통해 그들의 본질적인 삶 자체를 경험하는 것은 교실에서는 도저히 배울 수 없는 값진 기회라고 여겼습니다.

영화제작사에서도 이것은 크게 무리되는 요구가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주연배우와 그 부모를 위한 집을 렌트해야했고 식사는 캐스트와 스태프들을 위해 한국에서 요리사가 대동되었으므로 숟가락만 얻으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단지 왕복 항공권 두 장이 덧붙여지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제 의도가 주효해서 현재 아이들의 생각 방식과 지향하는 바가 남달라졌다는 생각입니다.

 이 값진 남태평양에서의 체류경험들이 저의 아이들에게 공존의 이유와 기쁨을 피부에 새기는 기회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이 값진 남태평양에서의 체류경험들이 저의 아이들에게 공존의 이유와 기쁨을 피부에 새기는 기회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 이안수

#3

40여일간의 팔라우 생활에서 영화는 수많은 사람들의 협업과 희생의 결과라는 것을 지켜볼 기회가 된 것은 물론, 팔라우에서도 오지인 펠렐리우 섬에서 원주민들과의 생활 또한 어린 아이들에게 값진 체험의 기회였습니다.

 홀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영웅은 결코 없습니다.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크린 밖의 보이지 않는 수많은 스텝들의 협업과 희생의 산물인 것이지요. 아이들에게도 스크린 속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스크린 밖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면, 얻는 것은 영화 한 편 이상의 것이 됩니다.
홀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영웅은 결코 없습니다.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크린 밖의 보이지 않는 수많은 스텝들의 협업과 희생의 산물인 것이지요. 아이들에게도 스크린 속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스크린 밖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면, 얻는 것은 영화 한 편 이상의 것이 됩니다. ⓒ 이안수

아내는 그 섬에 도착하고 나서 원주민 학교에 두 아이가 출석할 수 있는 지를 물었고 그 학교에서는 흔쾌히 아이들의 수업참여를 허락했습니다. 그곳의 학교 수업이라는 것이 바닷가에 가서 조개를 줍거나 돌을 모아 세면서 셈법을 공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어머니날'에 전교생이 축제를 열어 부모님들을 초청해서 즐겁게 해주는 것도 학교의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아내는 주리와 영대를 펠렐리우의 작은 학교에 원주민 자녀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했습니다. 이곳 낯선 곳에서 함께 쉽게 어울려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이태 전에 세 아이들을 지금은 없어진 제 고향의 분교의 전교생이 10여명 남짓한 곳에서 한 학기를 다니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주리와 영대를 펠렐리우의 작은 학교에 원주민 자녀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했습니다. 이곳 낯선 곳에서 함께 쉽게 어울려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이태 전에 세 아이들을 지금은 없어진 제 고향의 분교의 전교생이 10여명 남짓한 곳에서 한 학기를 다니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 이안수

원주민 헤럴드부부는 특히 아이들을 좋아해서 야자나무에 올라 코코넛을 따주고 수시로 바다로 나가 아이들을 등에 태우고 형형색색의 고기들이 유영하는 열대바다 속의 거대한 어항같은 장관을 모두 체험할 수 있게 했습니다.

 영대는 한국으로 돌아온뒤 이때의 경험에 대한 기억으로 수영을 배웠고 딸들은 반려견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영대는 한국으로 돌아온뒤 이때의 경험에 대한 기억으로 수영을 배웠고 딸들은 반려견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 이안수

때로는 거대한 거북이를 붙잡아서 타고 놀도록 했고 어떤 날은 악어새끼를 생포해 와서 주둥이를 단단히 묶은 다음 만져볼 수 있게 하기도 했습니다.

 악어와 거북도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사는 경이로운 존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악어와 거북도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사는 경이로운 존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 이안수

특히 팔라우는 태평양 전쟁당시 격전지로서 우리의 선대 혈육이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당했던 곳으로 현재도 그 전쟁의 상흔들이 산재해있는 곳으로 아이들에게 산 역사교육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팔라우는 태평양전쟁에서 강제노역에 동원된 우리 부모와 할아버지들의 피와 눈물이 곳곳에 배인 통한의 장소입니다.
사실 팔라우는 태평양전쟁에서 강제노역에 동원된 우리 부모와 할아버지들의 피와 눈물이 곳곳에 배인 통한의 장소입니다. ⓒ 이안수

#4 

저는 영화의 촬영이 종료되는 날에 맞추어 팔라우로 가서 가족과 합류했습니다. 크랭크업뒤 스태프들이 모두 떠나고 우리 가족만 남아서 일주일 동안 영화 촬영때문에 볼 수 없었던 섬과 바다를 뒤졌습니다. 그때 저희 가족을 도왔던 분이, 나중에 KBS2TV의 인간극장에 '팔라우 미스터 김'으로 소개되었던 김정곤 선생님이었습니다.  

현지에서는 '펠렐리우김'으로 불리었던 분으로 원래 원양어선 선원이셨습니다. 팔라우에서 2년간 체류하면서 참치잡이를 하는 동안 팔라우의 18살 여고생, 마지와 사랑에 빠져서 결국 선원수첩을 반납하고 마지의 고향인 펠렐리우섬의 원주민으로 살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펠렐리우김', 18세 원주민 소녀와 사랑에 빠지고, 선원수첩을 반납해버리고 원주민의 삶을 택한 이분의 삶을 통해 저는 거역할 수 없는 운명에 이끌리는 경이로움을 믿게 되었습니다.
'펠렐리우김', 18세 원주민 소녀와 사랑에 빠지고, 선원수첩을 반납해버리고 원주민의 삶을 택한 이분의 삶을 통해 저는 거역할 수 없는 운명에 이끌리는 경이로움을 믿게 되었습니다. ⓒ 이안수

우리가 그분과 함께했었을 당시 마지와 '아리랑'이라는 딸을 두고 이혼했으며 두 번째 부인을 맞았지만 둘째 딸을 출산하면서 사별을 한 형편이었습니다. 저는 그 분과 일주일을 지내면서 피할 수 없는 인생유전의 운명에 대해 겸허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5

최근 팔라우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한국에 소개되고 휴가철에 전세비행기로 관광객들의 방문이 잦아진 곳이 되었지만 16년 전만 해도 콘티넨탈 마이크로네시아항공의 작은 비행기가 괌에서 출발해 버스 정류소에서 주민들을 내리고 태우듯 남태평양 상의 작은 섬에 착륙하고 이륙하기를 반복해서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전세비행기들이 팔라우를 오가지만 당시에는 남태평양의 섬위를 두어 번 이착륙을 반복해야 당도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전세비행기들이 팔라우를 오가지만 당시에는 남태평양의 섬위를 두어 번 이착륙을 반복해야 당도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 이안수

팔라우에서의 경험들은 우리 아이들 모두의 자아형성과 삶의 태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을 제공했습니다.

첫째 나리는 여전히 배우의 길을 가면서 다양한 삶을 연기하고 있고, 둘째 주리는 불어를 전공하고 NGO와 국제기구의 역할에 관심을 갖고 제 3세계 쪽의 일에 빠져있습니다. 막내는 자연과 동물에 집착하는 방향으로 인성이 발달되었으며 외국에서 공부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어린 자녀를 둔 모티프원을 찾아오는 젊은 부부들에게 자신 있게 권합니다. 단지 여행으로서가 아니라 원하는 나라에서 몇 개월만이라도 정주하는 삶을 살아보라고…. 그 방식을 택한 불편과 희생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있을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팔라우 팔렐리우의 앞의 남태평양 모래톱과 바닷속, 무엇보다도 보석 같은 순박한 마음을 가졌던 헤럴드 부부와 원주민들, 사랑을 쫒아 선원수첩을 반납하고 섬에 남은 펠렐리우김과 그 분의 딸 아리랑……. 지금도 팔라우의 모든 것이 그리움의 뭉게구름이 되어 우리 가족의 뇌리를 떠돌고 있습니다. 

팔라우에서의 생활은 영화뿐만아니라 '무인도에 고립된 이나리의 모험과 우정! 모험·영상소설, 표류일기'로도 발행되었습니다.

 '모험'은 누구에게 일생을 살면서 당면해야할 주제입니다. 또한 어떤 이들은 자기 앞의 그것을 수동적으로 맞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스스로 그것에 몸을 던지기도합니다.
'모험'은 누구에게 일생을 살면서 당면해야할 주제입니다. 또한 어떤 이들은 자기 앞의 그것을 수동적으로 맞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스스로 그것에 몸을 던지기도합니다. ⓒ 이안수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표류일기#남태평양#팔라우#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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