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6시 무렵이었다. 비에 바람까지 더한 런던의 초겨울 날씨는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와아' 하는 함성과 '아'하며 꼬리가 낮아지는 탄식이 연이어 들려왔다. 또 무슨 노랫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한 사내가 마이크를 잡고 뭐라 떠드는 것이었다.
짓궂은 날씨 탓에 셰어하우스(주간 단위로 세를 내고 사는 집)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던 차에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보았다. 한 블록을 걸어 주택들 사이로 난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고작 차 한 대가 지나다닐 것 같은 골목길이 끝나자 예상 밖으로 넓은 주차장이 나타났다. 그리고 높은 담장이 원을 그리며 길게 이어져 있었다. 소리는 그 담장 안에서 나고 있었다.
담장 안으로 들어서려 하자 안내원이 표를 내라고 했다. 경기를 관람하려면 표를 사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경기냐고 물었더니 축구 리그전이란다. 세상에, 런던 북서부 외지고 작은 동네 구석에서까지 축구 경기가 열리다니….
영국 특히 잉글랜드에서 그물망보다 촘촘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축구 리그'일 것이다. 1부 리그인 프리미어리그를 필두로 모두 24부까지 이어진 잉글랜드 축구 리그는 그 수만 500개가 넘고, 리그에 소속된 팀만 7000개가 넘는다.
이 가운데 1부부터 4부 리그까지를 프로로 친다. 하지만 컨퍼런스 전국리그인 5부 역시 모두 전업축구선수들이니, 사실상 이들도 프로나 마찬가지다. 6부 이하로 세미프로인 지역리그로 넘어가는데 동네에서 열렸던 축구 경기도 지역 리그 경기 중 하나였던 것이다. 홈팀은 1933년 창단된 '해로우 보로우FC'였는데 한 관계자는 "우리 클럽은 수많은 선수를 프리미어 리그로 진출시켰다"고 자랑했다.
고급 스포츠였던 축구, '노동계급의 스포츠'로 다시 태어나다영국에서 스포츠를 넘어서 일상이 되어버렸다는 축구. 사실 축구는 187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명문 사립학교(이튼 스쿨이나 해로우 스쿨 등)에서 남성다움을 키우기 위해 장려했던 운동이었다. 1871년 처음 치러진 'FA CUP(축구협회 컵)'은 각 사립학교마다 달랐던 경기 규칙을 조정·통합하여 협회를 만들어 치른 첫 대회였다는 사실을 반추해보면 당시 축구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있는 집 자식들이나 다니던 명문사학에서 취미로 즐겼던 운동이 점차 중간계급의 여가활동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사립학교에 다니던 이들이 졸업해서 사회에 진출한 영향이 컸다. 그래서 한동안 축구는 잉글랜드에서 사립학교 학생들과 중산층이나 즐기는 '고급 스포츠'였다.
고급 스포츠였던 축구가 '노동계급의 스포츠'로 다시 태어난 것은 1910년대다. 단축된 노동시간과 늘어난 수익은 노동자들이 여가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1911년, 토요일 오후부터 쉬는 반공휴일제가 처음 도입되었고, 노동조합이 유급휴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또 9시간 노동제가 자리를 잡아가는 가운데 일부에선 8시간 노동제가 도입되기도 했다.
사립학교 학생들이나 졸업생들 위주로 꾸려졌던 축구 클럽(FC)에도 변화가 왔다. 같은 공장 노동자들끼리 클럽을 꾸리고, 같은 지역 사람끼리 클럽을 만들기도 했다. 또 같은 인종이나 같은 민족끼리, 그리고 같은 종교를 지닌 가진 사람들도 클럽을 만들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축구는 노동계급의 스포츠를 넘어서 '국민 스포츠'가 돼 버린 것이다.
영국에서 축구가 이렇듯 급속도로 '국민 스포츠'화 될 수 있었던 까닭은 '남성성'을 유난히 강조하는 사회 특성 때문이다. 유달리 전쟁을 많이 치렀던 잉글랜드를 비롯한 영국에서 남성성은 한 공동체를 지키고, 유지하는 '전투'의 핵심 요소였다. 축구는 럭비와 함께 잉글랜드의 거친 남성성을 표현하기에 꽤나 적합한 운동이었다.
그라운드를 질주하며 적진 깊숙이 파고들어 결정타를 날린다. 거꾸로 침입해오는 상대는 거친 태클을 걸어서라도 제압한다. 몸은 공동체를 위협하는 거센 도전들을 하나씩 하나씩 징태한다. 뛰고, 차고, 던지는 가장 단순한 육신의 움직임이 공동체의 운명을 책임진다는 지극히 단순한 남성성의 논리.
오늘날 영국 축구를 논하는 키워드는? 하지만 근래 영국 축구를 논하는 키워드는 '국민 스포츠'도 아니고 '남성성'도 아닌 바로 '돈'이다. 돈과 관련한 각종 소식들이 화제가 되고 있고, 심지어 선수나 클럽조차 그 무엇도 아닌 '돈'으로 축구를 하는 것처럼 비쳐지기 일쑤다.
영국 티켓 대행 사이트인 TSM플러그(PLUG)는 2012∼2013시즌을 기준으로 주급이 가장 많은 선수를 공개해 화제가 됐다. 맨체스터 시티 소속인 야야 투레가 주급 18만 파운드(3억1000만 원)를 받아 최고를 기록했다.
이 사이트는 2012∼2013시즌에서 연봉을 가장 많이 지출한 팀은 맨체스터 시티로 한국 돈으로 약 3455억 원(2억2백만 파운드)을 지출했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명문 구단'이라 불리는 첼시(2960억)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2771억), 아스널(2446억), 리버풀(2035억)이 나란히 그 뒤를 이었다.
구단들이 천문학적인 돈놀이를 하고 있는 동안 그 피해는 고스란히 팬들이 입고 있다. 프리미어 리그 입장료는 최저 4만 원에서부터 최고 21만 원. 팬들의 관심이 고조되는 시즌 티켓 가격은 무려 332만 원(아스날 기준). 독일 분데스리가 바이에른 뮌헨의 시즌 티켓 가격인 11만3000원보다 약 30배 이상 높은 가격이다.
그럼 텔레비전으로 경기를 시청하면 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리 착하지 않다. 축구경기 TV중계 시청료만 월 7만5천 원, 서민들은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한다. 오죽했으면 지난 6월19일 400명의 축구팬들이 런던 한복판에서 "노동자들의 게임, 부자들의 입장료"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입장료를 낮추라"고 시위를 했겠는가.
돈이 영국 축구를 지배하는 꼴이 다른 나라 축구 감독에게도 보였던 모양이다. 독일 레버쿠젠의 사미 히피아 감독은 "과거 '열정'은 잉글랜드 축구의 상징과 같아서 빠른 템포와 거친 태클이 많았다"며 "지금 잉글랜드 축구에선 열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열정이 사라진 자리에 돈이 있다"며 "어떤 선수가 주급 20만 파운드(약 3억5000만 원)를 받는다면 그는 돈을 받는 것에만 만족할 것이다, 돈이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는데 선수들이 경기에서 열정을 쏟아내겠냐"고 말했다.
열정도 사라지고, 노동자의 주머니 사정도 생각지 않는 축구. 하지만 오늘도 영국인들은 축구 이야기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영국인들에게 축구는 일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일상이 평온해보지 않고 고단해 보이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