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 각자가 삶에서 도저히 답이 안 보이는 근본적 문제에 부딪혔다고 생각해보자. 그림이나 게임이라면 캔버스를 버리거나 게임을 리셋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하지만 같은 틀 안에서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면 다시 그 문제는 반복되기 마련. 어쩌면 근본적 문제를 극복하는데 필요한 상상력이란 기존 틀의 복원이 아닌 전혀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생겨날지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사흘에 걸쳐 서울시 청년허브에서 열린 컨퍼런스 2013 '삶의 재구성' 속 '재구성'의 영문 단어는 같은 틀을 다시 만드는 Rebuilding(build again)이 아닌 전혀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내는 Reshaping(shape anew or differently)으로 번역됐다.

제목에 담긴 뜻 그대로 '삶의 재구성' 컨퍼런스는 한국과 미국, 일본과 홍콩에 걸쳐 새로운 삶의 대안을 실행하는 단체들이 모여 새로운 영감과 여러 시도를 공유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이 행사에서 논의된 내용 중 오늘날 청년들에게 유효한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스물여덟 청년백수의 눈으로 본 컨퍼런스 참관기를 전한다.

제로성장 시대 속 새로운 삶의 모습


리처드 하인버그 소장의 기조연설 모습 컨퍼런스 기조연설 중인 '제로성장의 시대가 온다' 저자로 알려진 리처드 하인버그 탈탄소연구소 소장의 모습
리처드 하인버그 소장의 기조연설 모습컨퍼런스 기조연설 중인 '제로성장의 시대가 온다' 저자로 알려진 리처드 하인버그 탈탄소연구소 소장의 모습 ⓒ 이상미

컨퍼런스는 <제로성장의 시대가 온다>의 저자 리처드 하인버그 탈탄소연구소 소장의 기조연설로 막을 열었다. 컨퍼런스의 시작에 앞서 연사와 청중이 지금 세계의 문제점을 공유하기 위함이었던 것. 청중은 연설내용을 통해 역사 이래 계속돼 왔다고 알려진 경제성장이 실은 지난 몇십 년 동안의 현실에 불과하다는 점, 지구의 한정된 천연자원이 그 양이 한정돼 있기에 앞으로 점점 고갈되어 경제성장 곡선이 꺾일 거라는 점 등을 설명하는 다양한 경제지표를 살펴볼 수 있었다. 순순히 받아들이기에 다소 불편한 진실이었다.

이 대목에서 2000년대부터 대체 에너지로 각광받기 시작한 셰릴오일을 대체에너지로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 하는 이들도 있을 게다. 하지만 셰릴오일은 지표면 깊숙히 매장돼 있는 탓에 기존 화석연료보다 채굴비용이  높다. 게다가 새 에너지를 발견했다 해도 그 매장량이 한정돼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리처드 하인버그 소장은 화석에너지의 과잉 사용으로 인한 이산화탄소량 증가로 환경이 파괴됐으며, 산업제품의 과도한 생산 및 소비를 감당 못하게 되면서 많은 이들의 생활수준이 매우 낮아졌음을 지적했다.

하인버그 소장은 악화된 사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인구 감소 및 재생에너지 사용, 식량생산 및 소비의 지역화 등 제로성장 시대에 걸맞는 삶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특히 경제발전 과정에서 급속하게 악화된 사회 복원력을 회복할 것을 강조했는데, 그는 이 말이 과거 몇 십 년 전 경제규모로 돌아가는 걸 의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석유 의존성을 낮추고 각 지역 사람들이 자기 동네에서 식량을 자주적으로 해결하는 식의 삶의 하나하나를 재구성해간다면 인간의 삶은 더욱 행복해질 거라는 게 하인버그가 전하고 싶어하는 메시지였다.

연설이 마무리된 후 기본보다 친환경적인 삶으로 옮겨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질문이 쏟아졌는데, 이에 대해 하인버그 소장이 내놓은 답은 간단하면서도 명확했다. 유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변화를 일으킬 방법을 찾아나갈 것. 경쟁하는 감수성에 익숙해진 청년들에게는 협동이란 다소 새로운 감수성을 발휘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다른 삶의 가능성을 열 자신만의 열쇠를 지닌 사람들

청년커뮤니티 별 활동 소개 모습 한국, 일본, 홍콩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청년 커뮤니티의 활동 내역이 소개됐다
청년커뮤니티 별 활동 소개 모습한국, 일본, 홍콩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청년 커뮤니티의 활동 내역이 소개됐다 ⓒ 이상미

기조연설이 끝나자 다양한 삶의 형태를 모색하는 청년 커뮤니티들의 활동 모습을 소개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청년들의 마을 공동체 커뮤니티 공간 '카페오공', 사회적 기업가나 국회보좌관 등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연결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소셜베이스캠프 '더 넥스트',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콘텐츠 기업 등 다양한 그룹을 대상으로 코워킹 스페이스를 운영하는 '스페이스 노아', IT 기술로 새로운 인터넷 솔루션 개발과 정보 디자인을 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 UFO 팩토리, 여기에 국내의 틀을 벗어나 한일 양국의 청년문제 해결을 공동으로 기획하는 '한일청년기획 포럼'과 청년들이 가진 가능성을 일깨워 아시아의 청년문제를 해결하는 '홍콩당대문화중심(MAD)' 등 총 9개의 단체가 그간의 활동을 소개했다. 이후 각 단체에서 섭외한 연사들과 더불어 개별 컨퍼런스가 열렸다.

직접 들었던 컨퍼런스는 태국의 IT 개발자들을 초대한 UFO 팩토리와  일본의 코워킹 운영자들과 함께한 스페이스 노아에서 진행한 두 프로그램. 개인적으로는 태국의 IT 개발자 그룹 '오픈드림'을 세운 파티팟 수숨파우과 패차라폰 판수완의 사례가 인상적이었다.

두 사람은 오픈드림을 시작한 이유를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라고 설명했다. 모바일 관련 텔레커뮤니케이션 회사에서 일했지만 같은 일을 반복하며 승진하는 것에 별다른 의미를 찾지 못했기에, 오픈드림을 만들어 사회적 문제를 알고 있는 사람들과 자신들이 지닌 IT 기술을 연결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하게 됐단다. 실제로 다양한 앱 개발을 통해 일상생활을 하는 데 꼭 필요한 기술교욱이나 건강에 대한 자가진단,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게이미피케이션(게임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한다.

특히 오픈드림의 두 개발자가 자신들의 일에 의미를 부여하며 말한 내용은 자신의 꿈을 몸으로 실현한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메시지로 읽혔다.

"저희는 기술과 사회협력을 끌어내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과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왜냐면 저희는 개발자이고 저희 혼자서는 이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사람들을 믿습니다. 사람들이 연결되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연결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것을 통한 많은 협력과 시너지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저희가 어떻게 보다 사람답게 사는지에 대해 배운 내용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한 자신들만의 도구를 명확히 알고 있는 그들의 모습. 어떻게든 다른 모습으로 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하곤 해도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세상을 바꿀 자기만의 키워드조차 찾지 못한 청년인 나의 눈에는 한없이 부러웠다. 컨퍼런스에서 직접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라면 자기의 꿈을 당당하게 말하는 저 표정과 몸짓이 우리 자신의 모습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봤을 것 같다.

스페이스 노아 컨퍼런스 섹션 일본의 코워킹 스페이스 실무자들이 실무사례 발표를 통해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했다
스페이스 노아 컨퍼런스 섹션일본의 코워킹 스페이스 실무자들이 실무사례 발표를 통해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했다 ⓒ 이상미

그 다음 듣게 된 프로젝트 노아  컨퍼런스에서는 일본에서 코워킹 그룹을 운영하는 카와무라 츠토무, 사타니 쿄, 카타야마 유시의 발표를 들을 수 있었다. 공간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연계되면서 전혀 생각지 못한 프로젝트가 자생적으로 생겨나는 과정들, 혹은 사회적으로 취약계층이었던 직장맘들이 코워킹 공간을 통해 자립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을 확보한 것 등이 성공사례로 소개됐다.

코워킹 스페이스는 그야말로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어디든 일할 수 있는 1인 기업 혹은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소규모 스타트업에게 적합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사례발표 후 컨퍼런스 참여자 중 공간운영 자체에서 생기는 수익구조가 있는지 묻는 경우가 있었는데, 운영자들 대부분은 해당 수익이 적거나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고 답했다. 대신 사람 사이에서 새로운 일들이 벌어지는 게 매우 의미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현실을 바꿀만한 드라마틱한 결말은 아니었으나 실제 현장에서 사건들을 만들어나가며 생긴 감각에서 비롯된 답변으로 느껴졌다. 청중 입장에서는 금전적인 해결을 통해 기존 삶에서 벗어날 획기적 개선책을 듣고 싶었겠지만, 사실 현장에서 몸을 부딪혀가며 일으킨 작은 변화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은 까닭이다.

우리의 변화는 '지금 여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컨퍼런스 폐막식 때의 모습 컨퍼런스에 참여한 팀이 모두 모여 그간의 컨퍼런스 내용을 설명하고 서로 느낀 점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컨퍼런스 폐막식 때의 모습컨퍼런스에 참여한 팀이 모두 모여 그간의 컨퍼런스 내용을 설명하고 서로 느낀 점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 이상미

지난 8일의 폐막식에서는 그동안 컨퍼런스를 진행했던 모든 내용을 단체 별로 간단히 정리함과 더불어 컨퍼런스 진행과정에서 느꼈던 각자의 소감을 공유했다. 사람이란 역시 혼자 살 수 없다는 것, 사람 간 반목하게 되는 이유를 찾아 제거한다면 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는 것, 구성원 개개인이 사람과 사이좋게 어울릴 수 있도록 성장한다면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내면서 무엇이든 서로 얘기할 수 있는 사회가 될 거라 믿는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국적을 초월해 수많은 사람들이 이에 공감했다.

나의 문제가 나만의 것이 아닌 수많은 사람이 함께 고민하는 문제임을 깨달은 것. 이미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새로운 가능성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받은 과정은 참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너무 앞서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탓인지 아직 자신의 출발점이 어딘지 모르는 청년인 나는 구체적인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일단은 망설임을 멈추고 사소한 실천을 통해 경험을 쌓아가면서 몸으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삶의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청년이라면 지금, 당장 여기에서의 사소한 움직임을 함께 시작해보자고 말하고 싶다. 컨퍼런스에서 들은 내용들을 떠올리면서 우리가 움직이며 시도하는 만큼, 새로운 삶이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에.

덧붙이는 글 | 청년허브의 프로젝트형 학교인 청년학교 학생으로서 작성한 글입니다.



#청년허브 컨퍼런스#삶의 재구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