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는 지금, 다시 지난 대선 당시로 돌아가 있는 듯하다. 국정원에 이어 군사이버사령부에서도 온라인 게시판에 편향된 활동을 해 온 정황이 밝혀지면서 국감장은 물론 사회 전반적인 파장이 일고 있다.
더구나 대선과는 직접 관계가 없는 방송인 김미화와 김제동에 대한 비난 게시물 등도 올렸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씁쓸한 마을을 감출 수 없다.
국가의 최고 권력기관이자 국제적인 정보기관이, 그것도 예민한 대선 국면의 한가운데에서, 유력 정치인도 아닌 한 개인을 정치이념의 철장에 가두고 요리조리 편을 갈라놓았다. 유명 연예인들을 폴리테이너니 소셜테이너니 하면서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하며 살벌한 정치화 현장으로 그들을 끌어들여 왔다.
이제 정권도 바뀌었고 집권을 위한 직업 정치인들의 몸부림이 한창인 이때, 당시 시사 아이콘으로서 이슈 파이터로 빡세게 살아온 김미화씨를 만나보고 싶었다. 물론 정치이야기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고, MB 정부 하에서 '생환'해 돌아온 '극복기'를 듣기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예인으로서 또 다른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한 순수한 마음에서다.
햇살 담은 가을 바람이 살랑거리는 어느 한 날, 나도 힐링이 필요하다며 하루 좀 쉬고 오겠다는 쪽지를 남기고 훌러덩 용인으로 떠났다. 먼산을 바라보고 있는 사슴 한 마리가 카페 지붕에 서 있다.
콘테이너에 들어서자마자 주방에서 그녀가 먼저 "어서 오세요!"라고 반갑게 맞이한다. 인터뷰라기보다는 가볍게 차 한 잔하며, 담소나 나누자며 함께 커피를 들고 야외 탁자에 앉았다. 손님이 오면 직접 서빙을 해야 하니 가끔 자리를 비우겠다는 양해를 구했다.
마주 앉아 하는 대화는 처음인지라 어렵기도 하겠지만, 왠지 모를 이 친근함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그것은 아마도 매일 타임라인에서 만나는 '트친'인 것도 있지만, 한 때 팟케스트에서 최소 넘버2까지는 꾸준히 유지해온 '나꼽살'을 매일매일 애청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호칭도 마땅치 않아 두 '띨브러더스'처럼 그냥 '누님'이라고 불렀다. 물론 트위터에서도 당사자의 호불호와는 상관없이 지금도 누님으로 불리고 있다. 그래도 누님이라고 부르는 순간, "유관순 누나 반열에 오르면서 제가 드리는 최상의 레벨인 것을 감안해 달라"고 했다.
방송인 김미화는 그동안 친가인 용인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농산물 프리마켓(직거래)과 콘서트, 공연 등 농사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나누고, 농사와 예술을 융합한 색다른 문화 활동을 만들어가는, 초보 농부 딱지를 단 '순악질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농사와 예술이 있는 카페 호미'가 그것이다.
먼저 용어 정리를 하고 싶었다. '호미'나 '순악질'은 알겠는데, '농업법인'이라든지 '풀뿌리농촌문화운동', '프리마켓'이란 말이 생소했다. 그보다 '농사와 예술'이란 말이 특별해 보였다. 당연히 첫 질문일 수밖에 없다.
- 농사와 예술, 농사는 생활에 아주 근본적인 Raw나 Root의 개념이고 예술은 왠지 Classic하고 이데아적인, 극과 극의 상반된 느낌인데 어떤 철학이나 특별한 이유가 있나.
"편견이다!!!! (깜짝이야~) 농사와 예술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편견이고 틀린 생각이다. 농사가 곧 예술이다. 작고 연약한 씨 하나 심었을 뿐인데 단단한 땅을 뚫고 나와 들어 올린 흙이 쩍쩍 벌어지는 것을 보면, 감탄스러운 생명의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이것이 예술이 아니고 무엇이나? 그러니 농사를 짓는 농부가 바로 예술가다. 농산물은 예술가가 지은 예술품이다.
예술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농사는 또 다른 예술의 한 장르임에는 틀림없다. 밭에 씨를 뿌려 콩이 자라는 것이나 캔버스 위에 붓으로 장미를 그리는 것이나 모두 예술행위이다. 하여 농사가 예술인 이유이고 예술이 농사가 되는 이유이다. 예술을 결코 먼데서 찾을 필요는 없다.
직접 농부가 되어 농가를 지어보니 이전에 피상적으로만 알았던 농부의 마음을 절절하게 공감하게 된다. 농부가 도시 노동자 못지않게, 또는 더 많은 시간을 노동에 공을 들이지만 고생에 비해 대가가 너무 빈약하다. 해 뜨기 전 들에 나갔다가 뙤약볕 아래서 내내 일하고 해가 지고도 한참이나 어둑해져야 집에 돌아온다. 대단한 대가를 바라는 것도 아니면서 혼신을 다해 농사에 임한다. 게을러서는 할 수 없는 게 농사다. 그러기에 농사는 어느 노동보다 소중하고 귀하다. 내겐 농사가 예술이 아닐 수 없다. 농사가 예술이고 예술이 농사이다!"
- 그렇다면, 프리마켓은 무엇이고 풀뿌리농촌문화운동은 어떤 개념인가? 혹시 이런 것들도 '농사와 예술'의 범주 안에 속하나.
"예술이 아닐 이유가 없다. 농부들이 직접 유기농으로 기른 채소나 과일들을 저기 저 매대 위에 직접 갖다놓고 간다. 그러면 여기 찾아온 손님들이 또 자연스럽게 그걸 사간다. 이 카페에서 직접 사고파니까 여기가 바로 프리마켓이 된다.
또 여기서 농부와 손님이 농산물을 직접 사고파는 것이나 여기서 열리는 콘서트에서 가수와 관객이 공감하는 음악세계는 서로 같은 프레임이다. 앞서 농산물이 예술품이라고 했듯 프리마켓에서 이루어지는 직거래도 콘서트나 공연처럼 예술의 범주에 들어 있는 것 아닌가?
거창할 것까지야 없지만 이런 일련의 작은 움직임들로 인해 농촌이 조금씩 변화되고 문화운동으로 커져 간다면 농촌문화운동의 풀뿌리가 되지 않겠나 싶다. 한두 번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힘닿는 대로, 할 수 있는 만큼씩 꾸준히 실천해 보고 싶은 마음이다."
- 갑자기 심훈의 상록수에서 '고향을 지키러 내려간' 주인공 채영신이 생각난다. 물론 세속적인 성공을 포기한 그들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꽤나 유명인이시고 한때 '시사계의 아이돌'이셨는데 혹시 정치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시나.
"시사 프로그램 진행 10년이다. 그동안 많은 정치인도 만났고, 선거도 여러 차례 치렀다. 지방선거나 보궐선거까지 합치면 꽤나 된다. 아마 정치하려고 마음먹었으면 한번은 욕심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분명 예인이다.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는 것이다. 어느 한분은 20년 동안, 선거 때마다 출마 하더니 국회의원 한번은 하시더라. 목적이 그랬다면 그렇게 했겠지만 나는 예인으로서 만족한다. 방송생활 30년인데 방송국을 벗어날 수 있겠나? 아직도 올라갈 무대가 있으면 언제든 콜이다."
- 방송국 얘기 나와서 말인데, KBS가 친정이라면 MBC는 시댁이나 다름없을 것 같다. 두 방송국과 처절한 소송의 분투기는 책 <웃기고 자빠졌네>를 통해서 접했다.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셨다. 지금 소회는 어떠시나? 또 계급장은 뗀 인간 MB씨를 우연히 만난다면 무슨 말이 하고프나.
"만시지탄이다. 이미 지난 과거를 두고 원망은 없다. 어떤 이념적 편 가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기와 맞지 않으면 색깔을 칠하고 마녀사냥을 하는 사회 풍토차원의 문제이지 누구를 미워하고 증오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또 솔직히 말하면 기층의 사회에서는 제동이나 나나 코미디언이라고 조금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정치 언저리에 있지 말고 남이나 웃기라는 메시지다. 지극히 한 개인으로서 정치적 스탠스를 가질 수도 있지 않나? 그렇다고 누가 정치를 하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이념에 물들어 사상운동 하는 것도 아닌데 자기들 입맛에 맞게 편을 갈라 버린다.
연예인이란 어차피 대중성을 먹고 살기 때문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기 어렵다. '블랙리스트'라니 이게 말이 되나? 이미 그 말속에는 '화이트리스트'가 존재한다는 반증이고 화이트리스트의 눈밖에 거슬리지 마라는 일종의 사회적 허세고 교만이다.
여기 '호미 카페'에 있으면 자연이 주는 총천연색 때문에 블랙도 화이트도 구별되지 않는다. 또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그들과 서로 행복을 만끽할 시간도 부족한데 누굴 미워할 시간조차도 아깝다. 그냥 지금처럼 행복하게만 살고 싶다."
행복! 그녀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얼굴에는 행복의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손님들이야 그녀를 알고 찾아오지만 그녀는 모든 손님을 알 수가 없을 텐데도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담소를 건넸다. 기자와 대화를 나누다가도 어느 새 일어나 손님을 맞이하고 차를 나르고 짬짬이 화분도 볕으로 옮겼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도 좋아하지만 분명 소박한 햇살도 즐길 줄 아는 여유와 관록을 엿볼 수 있었다.
대화를 마치고 난 시간이 오후 5시를 넘겼다. 도시의 5시와는 온도차가 있었다. 해가 떨어지자마자 추위가 몰려왔다. 야외에서 내내 앉아 있던 터이고 또 하던 대화를 이어가야 하니 해가 없는 자리라도 다른 자리로 옮길 수 없었다. 받아 적던 손이 시려 올 정도였다. 그런 나를 보고 그만 일어나야겠다며 그녀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햇살 곁으로 나왔다. 따스했다.
이런 거였는지 모른다. 지난 과거 동안 몹쓸 추위와 싸워야 했지만 다시 햇살을 받고나니 바로 따뜻해지는 것처럼, 여기 머무르며 마음껏 햇살을 누리며 추위를 털어냈는지 모른다. 그리고 웃으며 복을 받았을 것이다.
농사와 예술이 만나는 이곳, '카페 호미'에서 행복 넘치는 그녀, 김미화에게서 진정한 힐링의 정수를 느낀다. 햇살과 바람이 그녀에겐 지독한 힐링이었음을…. 느낌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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