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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18일 국회 시정연설 이후 여야 대치정국이 더욱 경색됐다. 야당이 제기하는 현안 이슈에 대해 박 대통령은 '여야 합의'를 존중하겠다고 밝혔지만 새누리당은 '국정원 개혁 특위 OK, 국가기관 대선개입 특검 NO'라고 선을 그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합의가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이 상태로라면 박 대통령은 '존중'할 그 어떠한 결과물도 국회로부터 받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시정연설에서 '국회 존중'이란 표현은 왜 썼는지 의문이다.

19일 <한겨레>는 박 대통령을 일컬어 '마이너스의 손'이라 칭했다. 신문은 현 상황 관련해 "박 대통령의 승부수가 되레 사태를 악화시킨 사례는 이번만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김한길 대표가 제안한 담판 회동을 계속 미루다 3자 회담에 마지못해 응하고서도, 새로운 제안이나 양보 없이 '만나줬으니 이제 끝내자'는 태도로 일관해 민주당의 반발을 자초했다"고 분석했다. 이번 시정연설도 마찬가지라는 것.

황우여-최경환-윤상현, '배웅 3인방'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전 시정연설을 마친 뒤 국회의사당을 나서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전 시정연설을 마친 뒤 국회의사당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국회 시정연설을 마친 박 대통령이 국회를 나서며 차에 오를 때 새누리당 소속 의원 3명이 차 바로 앞에서 배웅 인사를 했다. 사진 속에는 윤상현 원내부대표, 최경환 원내대표, 그리고 황우여 대표가 웃는 얼굴로 나란히 서 있다. 권력은 거리와 비례한다. 박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새누리당 의원 3명 바로 그 사람들이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여야합의'를 강조한 순간부터 이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 다음날인 19일 새누리당이 의원총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배웅 3인방 중 황우여 대표와 최경환 원내대표는 입을 맞춘 듯이 '특검'에 대해 입을 열었다. 여야가 협상 테이블에 앉기도 전에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황우여 대표는 "국정원 개혁 특위에 대해서는 전향적으로 수용한다는 입장을 정했지만 특검에 대해서는 도저히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김진태) 검찰총장이 곧 임명될텐데 괜찮은 분"이라며 검찰에게 힘을 실어주고 수사결과를 믿고 맡기자고 말했다. 이러한 황 대표의 말은 국정원 선거개입 수사를 의욕적으로 전개하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왜 믿지 못하고 쫓아냈는지 의문스럽게 한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더욱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 최 원내대표는 "특검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 무엇보다 새로운 정쟁 유발을 위한 정략적 의도가 보이는 부분이기 때문에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는 결론"이라고 말했다. 두 문장에서 '도저히'란 표현이 중복 사용되고 있음을 볼 때 그가 어느 정도로 특검을 수용할 수 없는 입장인지 알 수 있다.

시정연설 하루 전날인 17일 3인방 중 윤상현 원내부대표가 기자회견을 갖고 NLL대화록 건에 대해 언급하다가 뜬금없이 '특검'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그는 민주당의 특검 요구에 대해 "최경환 원내대표가 특위에 대해 유연성을 발휘하겠다고 했지만 특검은 안 하겠다고 말했다"고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어서 "국회에서 여야가 풀어야 할 사안을 자꾸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은 스스로 국회를 무력화시키는 것이고 대통령을 정쟁의 중심에 놓겠다는 구태 정치의 발상"이라고 말했다.

'특검 골키퍼'를 자처한 이들 '배웅 3인방'의 활약은 왜 박 대통령이 이들을 신뢰할 수밖에 없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황 대표는 직전 검찰총장이 쫓겨난 사실은 모른다는 듯이 갑자기 새로운 검찰총장을 믿자고 했고, 최 원내대표는 '도저히, 도저히' 특검을 수용할 수 없다고 했고, 윤 원내부대표는 '최 원내대표가 특검 안 된다고 했으니까 안 된다'고 말했다.

박근혜의 말장난, 국회 존중은 말뿐이다

박근혜 대통령 첫 시정연설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4년도 예산안에 대한 정부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첫 시정연설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4년도 예산안에 대한 정부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다시 시정연설로 돌아간다. 박 대통령은 "최근 야당이 제개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포함해서 무엇이든 국회에서 여야가 충분히 논의해서 합의점을 찾아주신다면 저는 존중하고 받아들일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의 의미를 가지고 정치평론가들의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가정문을 사용했다. 즉 여야가 합의한 결과물이면 대통령이 존중하고 받아들이겠다는 것인데, 이는 말장난이다. 여야가 합의했는데 어느 대통령이 그것을 안 받아들인단 말인가. 2004년에는 국회에서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도 가결했다. 여야가 합의한 건이면 '박근혜'라서 존중하는 게 아니라 그 어느 대통령이라도 수용해야 한다.

언론에서 박 대통령이 '국회를 존중'하겠다고 밝혔다면서 큰 의미를 부여했지만 지극히 상식적인 말을 한 것 뿐이다. 다만 꼼꼼한 그녀는 새누리당을 통제함으로써 여야합의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 것이다. 배웅 3인방을 통해 지금 보여지는 것 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무치인 듯 보이는 통치'를 하겠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시정연설에서 '선(先)여야합의, 후(後)국회존중'에는 다른 의미도 깔려 있다. 그것은 일종의 야당에 대한 경고인 셈인데, 앞으로 '여야 1:1 영수회담은 없다'는 의미가 그것이다. 박 대통령 표현을 그대로 해석하면 대통령은 국회가 합의한 것을 존중하는 존재일 뿐이지, 그 합의 과정에 개입하는 위치가 아니다. 그러니 민주당은 영수회담 요구하지 말라는 말을 정치적으로 전달한 것이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박 대통령의 '국회존중'은 진정한 존중일까?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군주는 자비로운 척, 신의를 지키는 척, 인간적인 척, 경건한 척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성품을 갖추고 실천에 옮기면 위험하다."

박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회를 존중하는 척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배웅3인방'의 모습을 보노라면 그녀에게서 말에 대한 실천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연설 후 여야경색이 오히려 심해졌지만 마키아벨리 해석을 빌리자면 박 대통령은 안전한 상태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인 busase.tistory.com에도 게재하였습니다.



#박근혜#시정연설#특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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