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6~7일에 서울시청에서 국제사회적경제포럼이 열렸다. 첫날 오전에 박원순 서울 시장은 첫 사례 발표자로 나서 "사회적경제를 통한 서울혁신의 현황과 발전모델"을 소개했다. 이 때 최근 여러 언론의 주목을 받은 사례가 소개되었다. 주 상품으로 와플을 만들어 파는 협동조합이다.
이 협동조합은 사업 실패의 어려움을 딛고 가족 노점으로 시작해 현재는 30여개가 넘는 매장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가맹점 개설 절차가 소개되어 있기도 하다. 전형적인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협동조합인 것이다. 그런데 이 협동조합은 홈페이지에 '프랜차이즈 업체가 아닌 협동조합 회사'임을 강조하고 있다. 분명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운영됨에도 불구하고 굳이 프랜차이즈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왜 그럴까?
한국은 취업자 대비 자영업자 비율이 OECD 평균의 2배에 이를 정도로 유난히 자영업자의 비율이 높다. 이들 중 상당수가 프랜차이즈 창업을 선택한다. 그런 탓에 아침에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파는 샌드위치를 먹고, 점심에는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밥을 먹고, 저녁에는 프랜차이즈 호프집에서 치맥을 먹는 일상은 너무나 평범한 일상일 정도로 우리에게 프랜차이즈는 익숙한 존재이다.
그러나 불평등의 비유로 떠오른 갑-을 관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프랜차이즈이기도 하다.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운영됨에도 불구하고 프랜차이즈 업체가 아님을 강조하는 것은 아마도 이처럼 프랜차이즈 기업들이 보여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프랜차이즈로 운영되는 것을 뜻하는 프랜차이징은 사업의 형식이고, 협동조합은 조직의 형식이기 때문에 양자를 대칭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등 사회적경제 영역의 조직들에게 프랜차이징은 매우 유효한 전략이기도 하다. 실제 해외에서 이런 사례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프랜차이즈 시스템은 그 자체로 '악'? 아니다 가령, 2004년에 이탈리아에서 출범한 'LE MAT'는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운영되는 숙박업 분야의 협동조합이다. LE MAT는 지역사회를 심층적으로 살펴보는 여행을 하고자 하는 이들을 주 대상으로 하면서 장애인을 비롯한 취약계층에게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탈리아 외에 스웨덴, 독일, 스페인, 폴란드, 영국에도 일종의 가맹점들이 존재한다. 그런가 하면 벨기에의 KOMOSIE라는 재활용 분야의 사회적기업은 108개에 이르는 매장을 두고 있다. 또한 영국의 CASA는 노동자자주관리기업으로서의 성격을 갖는 사회적기업으로 돌봄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맨체스터와 리즈를 비롯한 6개 지역에서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등에서도 프랜차이즈 시스템의 도입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처럼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도입해서 운영되는 사회적경제 영역의 조직들을 '사회적 프랜차이징'이라고 한다. 유럽에서는 이미 ESFN(European Social Franchising Network)라는 국제기구가 설립되어 있기도 하며, 2007년 12월에는 베를린에서 제1회 국제 사회적 프랜차이즈 대표자 회의가 열려 19개국에서 190여명이 참여하기도 했다. ESFN은 유럽에 100개 이상의 사회적 프랜차이징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사회적 프랜차이징의 사례는 국내에서도 이미 존재한다. 단지 사례가 드물고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을 뿐이다. 한 때 전국 최대 규모의 돌봄사회서비스 공급 기업이었던 (주)온케어, '에어세차'라는 기술을 도입해 친환경 세차를 하는 사회적기업인 (주)두레마을, 취약계층이 생산하는 생산품과 친환경상품을 판매하는 매장인 서로좋은가게 등이 그것이다. 부산에 기반을 두고 있는 사회적기업인 (사)안심생활도 프랜차이즈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보건복지부가 인정한 제1호 전국자활기업인 (주)희망나르미도 전국 130여개 기초지자체 가맹 사업장을 두고 배송사업을 하면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 빈곤층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물론 국내에서 사회적 프랜차이징은 여전히 낯선 개념이다. 관련 책도 번역서와 입문서가 각각 1권씩 나왔을 뿐이다. 그러나 한국의 사회적경제도 프랜차이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야할 때이다. 사회적 프랜차이징이 제기되는 두 가지 근거가 한국의 사회적경제에게도 유효한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 근거는 '규모화를 통한 지속가능성의 추구'와 '사회적 영향력의 확대'이다. 그리고 이 둘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몸을 구성한다. 사회적경제도 시장경제와 접촉하고 교류하며, 불가피하게 경쟁이 이뤄지기도 한다. 지금 한국에서 사회적경제라 일컬어질 수 있는 조직들 중 상당수는 영세하고 항상 지속가능성에 대한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사회적 프랜차이징이 이에 대한 모든 해법은 아니지만 적어도 유효한 방안의 하나일 수는 있다.
사회적 프랜차이징은 역할 분담과 협력적인 시스템의 구축을 통해서 개별 사회적경제 조직이 시장에서 부딪치는 난관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프랜차이즈 시스템은 그 자체로 일종의 네트워크이다. 네트워크는 내부의 행위자들에게 가치있는 자원과 정보를 유통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는 비즈니스 측면에서 위협 요소를 줄이고 기회 요소를 늘려가는 데 도움이 된다. 이렇게 사회적 프랜차이징은 개별 사회적경제 조직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사회적 프랜차이징은 개별 사회적경제 조직의 이해를 넘어서 사회적경제의 전반적인 규모를 확산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1+1+3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마을기업이나 자활사업단으로 운영되는 많은 카페들이 서로 협력해서 사회적 프랜차이징을 조직한다면 자연스럽게 카페 운영에 필요한 물류를 담당하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 수밖에 없다. 사회적경제 영역에 새로운 조직이 탄생하는 셈이다.
프랜차이즈 시스템은 그 자체로 결코 악이 아니다.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다를 뿐이다. 프랜차이즈 시스템은 사회의 변화를 위한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사회적 프랜차이징은 그것이 가능함을 말해주는 개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가 공저한 <사회적프랜차이징 입문:세상을 바꾸는 사회적경제의 또 다른 실천>을 기반으로 한 것입니다.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http://blog.daum.net/wed95)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