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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강남에서 강의를 해요?"

나는 일주일에 나흘, 강남에서 강의를 한다. 청년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하지만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내가 가르치는 것은 '영어'지 '토익'이 아니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강남 학원가에서 토익 말고 영어(특히 회화)를 가르친다는 것은, 한 마디로 밥벌이와 담쌓고 지낸다는 의미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강남'이라는 이름이 만든 현실과의 괴리다. 직업이 '영어강사'라 말할 때마다 항상 "어디서 강의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강남'이라 답하면 반응은 두 가지다.

"실력이 좋으신가 봐요." 
"돈 많이 벌겠네요."

스스로 이런 말하기 부끄럽지만 '가르치는 실력', 부인하지 않겠다. 꽤 괜찮다. 실제로 학생 중에 한 명은 토요일마다 충남 공주에서 오전 6시 30분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온다. 그의 말을 대신하면 "제대로 영어 배우는 곳"이라고 했다. 학생과 강사 관계를 떠나 인간적으로 고맙다.

 1900원짜리 주먹밥, 겉만 번지르한 강남 영어강사의 숨기고픈 비밀이다.
1900원짜리 주먹밥, 겉만 번지르한 강남 영어강사의 숨기고픈 비밀이다. ⓒ 김종훈

그런데 '돈 많이 벌겠네요'라는 말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실상을 모르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은 토익을 가르치는 일부 유명 강사에게만 해당된다. 웃픈(웃기고 슬픈) 현실이지만 카드결제 대금이 돌아오는 매달 15일이면 가벼워진 주머니 사정으로 학생들 몰래 길 건너 김밥집에 가곤 한다. 메뉴판은 따로 살피지 않는다. 언제나 1900원짜리 주먹밥과 2500원짜리 라면이다. 겉만 번지르한 강남에서 토익을 가르치지 않는 영어 강사의 숨겨진 모습이다.

그럼에도 나는 강남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지방에서 올라온 청년들이 서울에 자리 잡는 것과 비슷한 논리다. 지역과 동네에는 더 이상 자리가 없다. 영어에 대한 수요 자체가 너무 적고, 공급 또한 보습학원으로 포화상태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지역과 동네에서 무언가 도전한다는 자체가 어려운 이유기도 하다.

강남에 진출했다고 해서 사정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더욱 치열하고도 심각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영어 강사의 경우, '외국대학'을 나오지 못한 것이 차별 이유가 된다. 학원가에서 흔히 외국대학 출신 강사를 '성골'이라 부르는데. 특히 나처럼 서울 끝자락에 있는 '아~그 대학'을 나온 경우에는 학교 이름을 프로필에 기재조차 할 수 없다.

실제로 한 학원 관계자는 필자에게 '농담어린 조언'이라며 "학교 이름을 적지 말라"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학교 이름 때문에 선생님 강의 폐강될 수 있어요"란다. 농담이라 했지만 쉽게 웃을 수 없었다.

16년 영어공부 했는데... 'How'만 들리네

 호주 남부 애들레이드에 있을 당시
호주 남부 애들레이드에 있을 당시 ⓒ 김종훈

여기서 잠시 옛 이야기를 꺼내고자 한다. 나는 2009년 10월 학사장교로 40개월의 군 생활을 마쳤다. 그리고 일주일 뒤 한국을 떠났다. 그 후 2년 6개월을 공부하고 일하며 여행 다녔다. 거의 30개월을 외지에서 보낸 셈이다.

생각해보면 외국에서 혼자 살아간다는 것,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영어 때문이었다. 나름 초·중·고 합쳐 12년 동안 영어를 배웠다. 대학에 와서는 남들 다하는 토익 공부도 했다. 이 정도 했으면 어디를 가도 입이라도 뻥끗 할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처음 외국에 가서 "여기 어떻게 알고 왔어?(하우 디쥬 파인 히어/How did you find here)"란 질문을 받았을 때, 앞에 '하우(how)'만 들렸다. 그 순간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답했어야 했는데 '토익 장수생'의 자존심은 그런 '굴욕'을 허락하지 않았다. 눈칫밥으로 '하우(how)'를 통해 '잘지내?(하우 아 유/how are you)'를 유추해냈다. 100% 틀린 이해다. 문제는 자신있게 웃어 보이기까지 하며 "좋지, 고마워, 너는?(파인, 땡큐. 앤쥬/Fine, Thank you. and you)"이란 교과서용 답변을 날렸다. 계속된 상황은 모두 짐작할 것이다. 상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난 16년의 노력이 한 순간에 허망해졌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내가 했던 공부가 그저 점수를 위한 토익,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런데 이러한 사례가 비단 나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필리핀·인도·아프리카·호주에서 만난 대부분의 한국인이 그랬다. 토익 공부만 열심히 했지, 말하는 영어는 형편 없었다. 다들 벙어리 영어만 배워온 탓이다.

이때부터다. '한국에 돌아가면 제대로 된 영어를 가르치자, 함께 모여 새로운 공부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든 것이. 하지만 몰랐다. 이것이 진짜 시련의 시작이란 걸.

나 혼자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나?

 강남 YBM을 지나는 인파
강남 YBM을 지나는 인파 ⓒ 김종훈

고향땅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950점 이상의 토익 점수와 외국대학 졸업장이 없이는 강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아무리 좋은 취지로 영어회화를 가르친다 강조해도 대한민국에서 영어는 토익과 동일했다. 회화를 가르치러 왔다 말하면 토익을 가르치라는 답만 돌아왔다.

점점 마이너스를 향해 떨어지는 통장 잔고를 보며, 어쩔 수 없이 토익에 손을 대야만 했다. 무엇보다 '나 혼자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나' 하는 회의를 지울 수 없었다. 토익책 펴놓고 강의를 준비했다. 하지만 첫 번째 시연 강의를 해보고 깨달았다. 이건 아니었다. 수십 명 앉혀놓고 "문장 형식은 어떻고… 주어는 어떻고…"라고 말할수록 거짓말하며 물건을 파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무엇이든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눈앞에 닥쳤다. 바닥을 치면 오르기 마련이라 했던가. 거짓말처럼, 취지에 공감해 주는 사람을 만났다. 그를 통해 장소를 제공받았다. 하나둘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였고 결국 강남까지 오게됐다. '토익 없는 진짜 영어', 무모한 도전의 시작이었다.

잘못된 것을 바꿀 용기

 강남역 11번 출구 YBM. 우리나라 토익 교육 시장에서 YBM이 차지하는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강남역 11번 출구 YBM. 우리나라 토익 교육 시장에서 YBM이 차지하는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 김종훈

강남역 인근엔 거대한 빌딩이 많다. 8번 출구에 자리 잡은 삼성을 비롯해, 10번 출구에 위치한 GT까지. 하지만 강남 최고의 건물은 누가 뭐래도 11번 출구에 자리한 YBM이다. 투명 통유리로 된 30층짜리 건물인데, 보고 있으면 토익을 주관하는 YBM이 우리나라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분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토익 중심의 영어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한 달에 30~40만 원을 호가하는 토익학원과 어렵사리 점수를 얻고 나면 수천만원 들어 떠나야 하는 어학연수의 폐해를 말이다. 물론 사회가 요구하니까,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다들 어쩔 수 없다 말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야만 할까? 이젠 잘못된 것을 함께 바꿔 나갈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오늘도 강남 사거리에서 버티고 버티는 이유다.


#강남#먹고사니즘#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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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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