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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로마의 휴일> 포스터.
영화 <로마의 휴일> 포스터. ⓒ 네이버 영화정보 검색
왜 오드리 헵번(앤 공주 역)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을까? 그레고리 펙(조 브래들리 역) 역시 왜 그냥 그렇게 걸어나갔을까? 영화 <로마의 휴일> 마지막 장면은 아직도 내게 의문이다.

왕실의 딱딱한 제약과 정해진 일정에 싫증 난 앤 공주(오드리 헵번 분)는 거리에 나가 벤치에서 잠들었다. 하지만 신사(그레고리 펙 분)를 만나 위기를 모면하고 함께 아이스크림도 먹으며 스쿠터도 타고 서민들의 즐거운 생활을 즐긴다.

신사는 특종을 노리는 신문기자였다. 공식 석상에서 사라진 앤 공주를 알아본 그에게는 공주의 로마생활 해프닝은 특종감이었다. 특종 사진을 찍었지만 앤 공주에게 이끌리는 감정을 어쩔 수 없었다. 특종 사진을 앤 공주 기자회견장에서 아무렇지 않게 건네주고 나온다.

기자회견을 마친 앤 공주는 시종들과 퇴장한다. 조 브래들리 역시 건물을 나와 걸어나간다. 두 사람은 절대 돌아보지 않는다. 우리 나라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처럼 몇 번은 돌아보고 돌아봐도 시원찮을 두 사람은 텅 빈 기자회견장의 공간처럼 공허하게 자기 갈길만 간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기에 그렇게 제 갈 길만 간 것일까. 동서양 문화의 차이인가. <로마의 휴일>은 경쾌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텅 빈 마음 전하는 마지막 장면만 빼고. 서양과 달리 동양, 우리나라는 어떠했을까?

 진주성 북장대 근처에 있는 <용다리>.
진주성 북장대 근처에 있는 <용다리>. ⓒ 김종신

햇살 고운 오후 경남 진주시 남강 진주성을 찾았다. 마지막 이파리를 떨굴 때만 기다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게 비춘다. 진주성의 정문 역할을 하는 공북문을 지나 충무공 김시민 장군상 옆으로 성벽 담을 따라 걸었다. 능소화 터널이 나타난다. 일반 상민 집에서 능소화를 심어 가꾸면 잡아다가 곤장을 때려 다시는 능소화를 심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양반집 정원에서만 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꽃을 '양반꽃'이라고도 부른다. 뜨거운 여름에 붉은 노란 꽃을 피우는 덩굴이지만 늦가을의 계절 앞에는 줄기뿐. 능소화, 양반꽃 터널을 지나 북장대에 못 미치면 돌무더기가 노란 은행잎 사이로 마치 햇살 샤워하는양 누워 있다. 용다리다.

 용다리 전설을 알면 돌무더기는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용다리 전설을 알면 돌무더기는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 김종신

다행히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은 아닌 옛날, 이씨 성을 가진 군수가 있었다. 군수의 둘째 딸이 시집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죽어 친정에 돌아와 수절하고 있었다. 돌쇠라는 머슴이 그만 상전인 아씨를 사모했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일찍 남편을 잃고 홀로 긴 밤 지새우던 아씨.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 써주는 돌쇠에게 좋은 감정이 갈수록 쌓여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사랑하지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고 손 한번 잡을 수 없는 양반과 천민의 신분. 아씨가 먼저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 진주성에서 선학재 넘어 장사 지내러 가다 길목인 용다리에서 무심결에 개울물에 비친 얼굴을 보고 "아씨~" 하며 애타게 부르다 그만 미쳐 버렸다. 결국, 돌쇠도 다리 근처에서 아씨 따라 죽었다.

조용하던 용다리 밑 개천에서 수천 마리나 될 듯한 개구리울음 소리가 들렸다. 마치 미친 돌쇠가 중얼거리며 울부짖듯. 그 뒤로 짝지은 남녀와 부부가 지나가면 개구리 울음 소리가 끊겼다고 한다. 상사병에 걸린 사람이 용다리를 두 번 왔다 갔다 하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옛 진주중안파출소 앞. 과거 용다리가 있었던 자리.
옛 진주중안파출소 앞. 과거 용다리가 있었던 자리. ⓒ 김종신

누워 있는 돌무더기가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한다고 했던가. 전설 덕분에 켜켜이 쌓인 돌무더기의 지난 세월을 더듬어 보고 싶었다. 전설 속 장소가 나는 진주 시외버스 터미널 옆 동방호텔 근처가 용다리 자리인 줄 알았다. 지나는 어르신이 여기가 아니라 하신다. 걸음을 옮겼다. 지금은 건물이 들어서고 새로 길이 나 있어 예전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건물 경비 아저씨의 도움으로 근처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할아버지를 소개받았다. 흙 속에 용머리만 비쳐 나왔다고 떠올린 어르신. 택지 개발로 흙 속에 파묻힐 뻔한 것을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파묻힌 용다리를 뺐다고 한다. 당시 문화재에 대한 고민보다 공사가 급했던 까닭에 포클레인으로 흙 속을 마구 파헤친 까닭에 용다리는 동강 났다. 다리의 흔적은 돌무더기로 진주성에 모셔져 있다. 아픈 전설을 담은 채. 문득 이 용다리를 동방호텔 앞 남강 변에 복원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국에, 아니 전 세계에 사랑에 가슴앓이하는 이들을 위해서.

(~중략) 쌓다가 부수고 또 쌓은 너의 성/ 부서지는 파도가 삼켜버린 그 한마디
정말 정말 너를 사랑했었다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삭막한 도심 한 가운데에서 용다리의 흔적을 더듬다가 양희은이 부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가사가 맴돈다. 오드리 헵번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쿨하게 돌아서지 않은 걸까?

덧붙이는 글 | 해찬솔 일기 http://blog.daum.net/haechansol71/
여성가족부 <여행상자>블로그 http://blog.daum.net/moge-family/



#용다리의 전설#상사병#로마의 휴일#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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