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나 전셋집에서 살다가 자기 집을 사서 산다는 건 대단한 로망이겠죠. 그것도 마당이 있는 집이라면 말이죠. 비록 대출이자야 꾸준히 갚아야 하겠지만 2년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는 부담감은 없겠죠. 위아래 집 눈치 보며 살던 다세대주택의 불편함도 사라지겠고요.
거기에 정감 어린 운치까지 더해준다면 어떨까요? 겨울이면 소복이 내려앉은 눈 덮인 산과 들에 혼까지 빼앗기겠죠. 여름이면 창 밖에 떨어지는 빗줄기에 복잡한 마음까지도 정화되겠죠. 마당에 있는 텃밭에서는 자족하는 비결까지도 배우지 않을까요?
물론 단독주택이 주는 불편함이 없는 것만은 아니겠죠. 여름엔 무척이나 덥고, 겨울엔 또 춥겠죠. 다세대주택이나 아파트에 비해 온갖 벌레들이 달려들 수 있겠죠. 잡스런 쓰레기를 따로 처리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을 거구요.
동네 대부분이 1종 전용주거지역이어서 건물을 높여 짓기도 어렵고 아파트 단지가 모인 곳도 아닌데다 지하철역도 없다. 장사로 큰 재미를 볼 일이 없어보였는지 프랜차이즈 영업점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동네 주민에게 필요한 가게는 꾸준히 자리를 지켜왔다.(114쪽)최재완·정성훈·허주영·정욱희의 <햇살가득 연희동집 바람솔솔 부암동집>에 나오는 이야기죠. 그들 부부들은 다세대주택이나 아파트보다 적잖은 불편함이 없지 않는데도 서울 연희동과 부암동의 단독주택을 구입하여 살게 된 이유 중 하나를 밝힌 것이죠. 이웃과 살가운 정을 나누고, 자연 속에서 마음을 정화시키며 사는 모습 말이죠.
사실 최재완 정성훈 부부가 연희동 단독주택을 리모델링하여 살게 된 이유도 그 때문이었죠. 신혼생활을 하던 아파트의 냉랭함과 2년마다 재계약해야 하는 불편함, 거기다가 해마다 치솟는 전세값도 큰 부담이 된 것 말이죠.
그에 비해 연희동 단독주택은 고층 빌딩도 없고, 화려한 상권도 없는 곳이라고 하죠. 그 집을 찾기 위해 수없이 많은 발품을 팔았지만, 끝내는 그들에게 딱 맞는 집으로 안겼다고 하죠. 그 이유가 뭐였을까요?
무엇보다도 그 동네만의 특유한 냄새와 소리가 인상적이었다고 하죠. 언제라도 마실 수 있는 한 잔의 커피를 내려주는 카페 사장도 마음에 들었고, 매일 오가는 길목에 마주칠 수 있는 책과 서점도 아늑했고, 신선한 밥상을 위해 작고 소중한 동네 가게까지도 든든하게 다가왔다고 하죠.
그와 그녀는 앞으로도 연희동을 붙잡고 살기로 다짐을 하죠. 비록 집을 리모델링하는데 3천만 원이 넘게 들어간 그 집이지만, 손님을 왕이 아니라 이웃처럼 대하는 연희동 사람들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서 말이죠. 왕의 주머니보다 이웃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그 동네 사람들 때문에요.
동네 사람들과 벗하며 사는 '단독주택 살이'의 정경 그것은 허주영 정욱희 부부가 살고 있는 부암동 집도 다르지 않죠. 비록 부암동에서도 산꼭대기에 자리한 북향집이긴 하지만 그 부부는 보석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고 자부하죠. 특히 개띠 부부에다 청숫삽살개 뭉치까지 더불어 살고 있으니 그들의 2층 벽돌집은 구락당(狗樂堂)과 다르지 않죠.
물론 그곳에서 사는 진정한 즐거움은 따로 있겠죠. 가을이면 단풍이 만개한 인왕숲길, 한겨울에 비단 옷을 입은 여러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는 금어정, 여름 장마철에 넘실거리는 백사실 계곡, 한 밤에 멋스럽게 다가오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들 말이죠.
그 뒤로 남편은 재활용쓰레기를 더 잘 분류하고 더 예쁘게 묶어서 내놓는다. 간혹 양이 많을 때는 일부만 내놓고 나머지는 다음에 내놓기도 한다. 남편은 집 앞에 내 놓은 쓰레기를 보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인품이 보인다고 했다. 거창하게 인품이라고 표현하기는 뭐하지만 최소한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 이웃으로서의 배려는 알 수 있을 것 같다.(314쪽)그 집에서 쓰레기를 버리는 남편 정욱희씨를 두고 하는 아내의 이야기죠. 물론 그 일은 그곳에 새롭게 둥지를 튼 지 얼마 되지 않아 발견한 일이라고 하죠. 그 동네 사람들은 쓰레기를 예쁘게 묶어 놓아야만 처리해 간다는 것 말이죠. 그걸 보면서 이웃을 배려하는 그 사람들의 인품과 기품까지도 기꺼이 배울 수 있었다고 하죠.
그렇듯 동네 사람들과 벗하며 사는 단독주택의 정경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풍족하지 않을까 싶어요. 더욱이 산과 들을 오를 수 있고, 온갖 새들과 벌레들과 한데 어울려 살 수 있는 그런 멋스러운 동네를 어디에 또 견줄 수 있을까요?
비록 그 두 집이 연희동과 부암동을 대표하는 집은 아니겠지만, 두 부부의 서로 다른 두 집을 통해 오늘을 사는 내 집은 어떤 곳인지, 이웃들과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새삼 되짚어봤으면 해요. 두 부부가 반한 보석 같은 동네에 한번 푹 빠져보지 않으렵니까?
덧붙이는 글 | <햇살 가득 연희동 집 바람 솔솔 부암동 집> 최재완 정성훈 허주영 정욱희 씀, 생강 펴냄, 2013. 11. 11. 344쪽, 1만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