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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만 명이 모인 여의도 농민집회에서 연설했어요, 어찌나 떨리던지…."

우찌다 게이스케(64, 농업문제 연구가, 우사토 유기협동농원 이사장, 전 구마모토현 농협중앙회 생활복지과장)씨는 생애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주저 없이 지난 2002년 11월 12일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농민대회를 꼽았다.

그는 이날 5미터 높이의 연단에 올라 떨리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오늘 농민대회에서 한국농민들이 내건 요구안은 인류공생을 위해 꼭 이루어져야 할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윤봉길 의사는 '농업은 생명 창고'라고 했다"며 "한국 농민과 일본 농민이 연대해 긍지와 자신감을 갖고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한-칠레 FTA를 체결한데 이어 WTO 쌀 개방을 앞두고 있었다. 농민들의 우려와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그의 연설에 한국농민들은 함성과 박수로 화답했다.  

"박수와 함성 소리가 마치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는 것 같았어요, 인생에 단 한 번 경험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한국농민의 넋을 느꼈습니다."

우찌다씨는 그 날을 떠올리며 잠깐 동안 지그시 눈을 감았다. 

지난달 18일 구마모토현에 있는 그의 농장에서 우찌다씨를 만났다. 겉옷 곳곳에 검거나 누런 흙이 묻어 있다.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만나기 직전까지 농장을 돌보다 온 흔적이 역력했다.

"농사조합법인 '우사토 유기협동농원'을 설립했어요,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땅과 생명과 삶을 공동으로 지킨다는 취지로 만들었습니다, 유기농업과 협동을 중심으로 생산자와 소비자간 상호 협력하고 있어요"

그는 2001년부터 2009년까지 9년 동안 한국의 충남 농민단체(전농충남도연맹)와 교류했다. 단체 사정으로 이후 교류가 중단됐지만 한국농민과 농업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했다. 공교롭게도 그가 사는 지역에 한국산 방울토마토가 대량 수입된 게 교류의 계기가 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충남 부여, 논산은 방울토마토 집산지였다.

"구마모토 야스시로 지역에 한국산 방울토마토가 많이 수입돼 지역농민들이 곤란하게 됐어요, 하지만 한국농민들과 대립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한국농민의 상황을 알기 위해 직접 충남을 찾아갔습니다"

"한일 교류 시작은 '역사인식 공유'"

 우찌다씨가 자신의 협동농원과 도시민과의 직거래를 소개하는 홍보물을 들어 보이고 있다.
 우찌다씨가 자신의 협동농원과 도시민과의 직거래를 소개하는 홍보물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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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찌다씨 농원에서 생산된 다양한 농산물
 우찌다씨 농원에서 생산된 다양한 농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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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일 교류는 역사인식을 공유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본과 한국 농민 간 교류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기초가 되는 것은 역사인식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이 일제강점기시절 무슨 짓을 했는지를 알기 위해 가장 먼저 한국독립기념관을 찾아갔어요, 윤봉길 기념관, 공주 동학농민기념탑도 찾아갔습니다, 한국 역사, 일본의 강제 지배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됐습니다."

그는 "일본이 죄를 저지른 데 대해 한국 국민에게 사죄하고 반성해야 된다"며 "아베수상과 정부가 군위안부는 없었다고 말하는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 농업의 구조적 공통점으로 낮은 식량자급률(일본 식량자급률 40%, 한국은 2011년 기준 26.7%다)과 농업을 이어갈 후계자 감소, 농업소득 감소, 농업에 대한 정치의 빈곤 등을 꼽았다. 특히 그는 "40년 전만 해도 일본 농업관련 예산은 국가총예산의 10%에 달했다"며 "지금은 2%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농업과 농민에게 차가운 나라는 세상에 둘도 없을 겁니다, 지역신문에 생명을 키우는 농업에 대한 예산을 줄이고 사람 죽이는 국방 예산은 늘리는 것은 이상하지 않냐는 내용의 투고를 했습니다, 그 이후 일부 우익인사로부터 협박을 받았습니다."

한일농민의 의식의 공통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럼에도 한일농민들은 생명을 보호하고 키우고 있다는 긍지가 있습니다, 한국농민들의 경우 된장, 김치 등 식문화를 지키려는 의지와 노력이 남아 있습니다, 매우 귀중한 것입니다, 일본 농촌에서는 전통 식문화가 쇠퇴했습니다."

"원전은 괴물... TPP 체결되면 식량자급률 급락할 것"

 우찌다씨(왼쪽)가 충남 시민단체 관계자(이상선 단장)에게 무 씨앗을 전덜하고 있다.
 우찌다씨(왼쪽)가 충남 시민단체 관계자(이상선 단장)에게 무 씨앗을 전덜하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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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찌다씨는 현재 일본 농업의 현실에 대해 "생명과 문명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후쿠시마 사고로 상징되는 원전에 대해서는 "농민에게는 괴물과 같은 존재"라며 "없애야 한다"고 단언했다.

"일본은 지금 거대자본에 의해 생명과 문명이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3개월 후에 연구자의 한사람으로서 보고 듣고 오감으로 체험하기 위해 후쿠시마를 다녀왔습니다, 그 곳 농민들이 씨앗을 뿌리지 못해 고뇌하고 있었습니다, 한 농촌마을은 모든 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했습니다, 며칠 전 신문보도를 보니 후쿠시마에 사는 어린이 5만 명을 검사한 결과 50명이 갑상선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통은 100만 명당 한 명 꼴입니다, 원전은 농민에게 농사를 지을 수 없게 하는 괴물입니다, 원전은 없애야 합니다."

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유사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았다. TPP는 전 품목 관세 철폐, 예외 품목의 사전 제시 금지, 투자와 서비스 시장 자유화 등을 추구하는 높은 수준의 FTA다. 미국은 TPP를 '21세기형 FTA'로 부르며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 통합의 표준으로 삼으려고 꾀하고 있다. 현재 미국·일본·호주·멕시코·싱가포르·칠레·페루·베트남·말레이시아·캐나다·브루나이·뉴질랜드 등 12개국이 협상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 한국정부는 13번째로 참여의사를 밝혔다.

"TPP가 체결되면 일본의 식량자급률은 14%(현재 40%)까지 떨어질 것입니다, 유전자 조작 식품으로 식품 안정성도 심각한 위협에 처해질 것입니다."

"생명 산업, 긍지로 한일농민 연대해야"

 구마모토에 있는 유기협동농원을 방문한 충남방문단과 우찌다씨(왼쪽 아래에서 두번째)
 구마모토에 있는 유기협동농원을 방문한 충남방문단과 우찌다씨(왼쪽 아래에서 두번째)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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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국과 일본 농민들이 논밭을 갈고 식량을 만든다는 긍지를 회복하는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농업은 생명의 기초인 식량 즉 빵을 만드는 일입니다, 빵이 오염되면 안 됩니다, 흙을 귀중히 여겨야 합니다, 생명과 삶을 일체화시켜야 합니다, 서로 자유평등 인간상을 기초로 돕고 이끌어 나가는 협동정신이 필요합니다, 한국 농민에게서 배우는 게 참 많습니다, 한일 농민들이 서로 손을 잡고 미래를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자신이 만든 협동농원을 통해 실천해 나가고 있다. 그는 협동조합을 통해 농민들의 농업기술을 지원하고 대도시와 농산물 직거래를 통해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고 있다. 그는 이날 농장을 찾은 충남시민단체 방문단에게 한 해 동안 공 들여 얻은 무 씨앗을 한 움큼 선사했다.

"우리 협동 농원에서는 토종 종자를 지키려 애쓰고 있습니다, 이 무 씨앗도 그 중 하나입니다, 한국과 일본 농민들이 이 씨앗처럼 특성을 잃지 않으면서 함께 성장해 가길 바랍니다."


#우찌다#유기협동농원#농민#농촌#농사조합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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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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