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곳입니다. 시장은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공간입니다. 우리에게 시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연재 '전통시장 고군분투기'는 기자를 지망하는 청년들이 시장을 직접 체험하며 느낀 점들을 다룰 것입니다. 장소는 서울의 전통시장 30곳입니다. 취재 원칙은 하나입니다. '시장 문을 열 때부터 닫을 때까지'. - 기자 말 '시장 빵집' 하면 많은 사람이 '프랜차이즈 빵집'과 비교한다. 접근성이 떨어지고, 빵 종류도 다양하지 않다. 위생에 대한 부분도 왠지 프랜차이즈 빵집이 믿음직하다. 그렇다면 시장 빵집의 모습은 어떨까 궁금했다. 그래서 서울시 성북구 장위동에 있는 장위 시장 '독일 빵집'에서 하루를 체험했다.
체험해보니 이 빵집 조금 독특하다. 시장에 있는 까닭에 장년층이 주 고객일 줄 알았지만, 유치원생부터 80대 할머니까지 다양하다. 특히 20대 고객이 많다. 수많은 젊은 손님들이 후기를 남겨 입소문을 탔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시장과 주변 프랜차이즈를 포함한 7개 빵집이 폐업하는 상황에서 살아남은 '독일 빵집'. 그들이 사는 하루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독일 빵집'에는 모두 여덟 명의 종업원이 일한다. 기자가 찾은 지난 10월 28일에는 세 명이 휴무였고, 사장 이창열(37)씨와 종업원 강순옥(57), 이은서(41), 변석민(24), 정준현(20)씨가 일했다. 이 사장과 석민, 준현씨가 빵을 만들고, 은서씨는 판매를 순옥씨는 '독일 빵집' 식구들의 식사와 재료를 준비하는 각자의 일이 있었다.
독일 빵집의 경영철학 '웃으며 일하기''독일 빵집'의 하루는 새벽 여섯 시 반에 시작된다. 일을 배운지 1년 차인 석민씨가 가게 불을 켜고 전날 준비해둔 반죽 재료를 계량 표에 맞춰 섞는다. 고소한 박력분 냄새와 알싸한 빵효모 냄새가 허기를 불러일으킨다. 반죽만 해도 일곱 종류가 넘는다. 빵마다 맛이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석민씨가 반죽을 만드는 동안 2개월 차인 준현씨는 햄버거와 샌드위치를 만든다. 아침 출근과 등굣길 사람들을 위해 여유 부릴 틈이 없다. 조용한 새벽에 반죽기계 돌아가는 소리만 들린 뿐, 서로 말이 없다.
"진짜 새벽부터 왔네요. 오늘 하루 버틸 수 있겠어요?"한 시간 후 이창열 사장이 웃으며 말을 건넨다. 이 사장이 오자 조용했던 빵집에 활기가 돈다. 반죽 상태를 점검하고 직원에게 농담을 건넨다. 입대가 얼마 남지 않은 준현씨에게 "군대 가서 이렇게 느릿하게 일하면 큰일 난다"고 말하자 석민씨도 웃으며 "많이 힘들죠"라며 거든다. 이 사장의 빵집 경영철학 중 하나는 '웃으며 일하기'다. 많은 시간을 함께 생활하는 까닭에 얼굴 붉히는 게 싫고, 재밌게 빵을 만들면 맛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새벽에 만든 반죽으로 본격적인 빵 만들기에 들어갔다. 제일 먼저 나오는 건 식빵이다. 손님이 가장 많이 찾는 빵이고, 다른 빵에 비해 빨리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오븐에서 갓 나온 식빵은 잠시 식힌 후 진열대로 향했다. 오븐이 쉬지 않고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피자 빵, 찹쌀 빵을 만들면 빈 진열대에 하나둘 자리를 잡았다.
빵이 남지 않은 이유'독일 빵집'은 '당일에 만든 빵만 판매한다'는 원칙이 있다. 이유는 두 가지다. 그동안 노하우로 요일마다 빵을 만드는 종류와 양이 다르다, 그리고 따로 시식용 빵을 두지 않고 진열된 빵 중에서 한 덩이를 잘라 손님에게 권한다. 그래서 '독일 빵집'의 빵은 장사 후에 남지 않는다.
"남기면 뭐합니까. 하나라도 더 고객이 맛보면 좋죠. 그리고 맛집이라 불리는 곳은 공통점이 있어요.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 맛이 없어요."
사실 시식용 빵이라고 하기엔 양이 많다. 취재 섭외를 위해 손님으로 빵집을 방문했을 때 이것저것 먹어보라는 권유에 먹다 보니 배가 불러 더는 먹지 못할 정도였다. 일부 손님은 시식만 하고 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 사장은 전혀 아깝지 않다.
또 다른 원칙은 '오직 맛으로 승부'다. 그동안 시장 빵집은 제품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소비자는 외면했다. 하지만 '독일 빵집'은 고급제과점에서 볼 수 있는 빵을 시장에서 팔았다. 이윤을 조금 남기더라도 맛으로 인정받고 싶은 게 이 사장의 생각이다. 시장을 찾는 장년층이 집에 빵을 사가면 자녀들이 먹고 맛에 반해 직접 찾아오게 됐다. 젊은 층이 찾다 보니 자연스레 블로그를 통한 홍보가 됐고, 다른 동네에서도 빵 맛을 보기 위해 찾는다고 한다.
반죽 사이로 튀어나온 앙금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며 빵을 만들다 보니 오전 11시가 됐다. '독일 빵집'의 주력 상품인 마늘 바게트와 찹쌀 빵이 나오자 단골들이 찾아왔다. 단골 하선희(50)씨는 "찹쌀이 들어 있어 나이 드신 분과 아이들이 좋아한다"며 갓 구운 찹쌀 빵을 구매했다. 주력 상품이 나왔다 해서 끝이 아니다. 오전 내 어수선해진 가게를 청소한다. 청소가 끝나면 하루 중 유일하게 바닥에 앉아 쉴 수 있는 점심시간이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농담하며 먹는 밥은 오전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게 해준다.
식사 후 다시 빵 만들기에 들어간다. 조금 한가해진 틈을 타 이 사장에게 빵 만들기를 청했다. 이 사장이 소보루와 팥앙금 빵 만드는 법을 설명하고 직접 보여준다. 난생처음 빵을 만들어보는 기자는 흘려듣지 않으려 메모했다. 메모가 끝나고 본격적인 빵 만들기에 들어갔다.
"소보루 가루를 깔고 그 위에 반죽을 올려 숟가락을 대고 눌러 준다. 소보루가 적거나 너무 많으면 안 된다."처음 만져 본 반죽의 촉감은 매우 부드러웠다. 메모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여러 번 되풀이하며 만들었지만, 모양이 이 사장의 빵과 같지 않다. 가루가 듬성듬성 묻고, 또 어떤 건 너무 많이 묻어 통통해진 소보루 빵이 됐다. 미안함이 가득한 채 판매될 소보루 빵을 만들었다. 미안한 마음이 가시기 전에 이 사장이 팥앙금 빵 만드는 방법을 설명한다.
"반죽에 앙금을 넣고 호떡 모양으로 누르고 난 후 중량이 90g이 되어야 한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90g 중량 조절에 실패해 두세 번 앙금을 넣고 빼기를 반복하자 모양은 엉망이 됐다. 그중 어떤 것은 옆구리가 터져 팥앙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판매할 빵을 망쳐 "죄송하다"라고 하자 이 사장은 웃으며 "처음인데 이 정도면 잘한다"며 위로했다. 만들어 놓은 엉성한 모양의 반죽은 이 사장의 손을 거친 후 오븐으로 직행했다.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초조한 기다림 끝에 오븐에서 빵이 모습을 보였다. 예상과 다르게 판매하지 못할 만큼의 질이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빵은 봉지에 포장됐고, 손님의 선택을 받기 위해 진열대로 향했다. 가지런하게 진열된 빵을 보며 팔리기 바라는 마음만 가득했다.
독일 빵집으로 잃고 얻은 것
파운드 케이크가 나오는 오후 네 시가 되자 석민씨와 준현씨는 퇴근 준비를 한다. 퇴근 준비는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하루 내 어수선해진 제조실을 청소하고 다음날 만들 반죽거리를 준비한다. 준비를 마친 두 사람의 걸음은 가벼웠다. 빵집에는 진열대를 맡은 은서 씨만 있을 뿐, '독일 빵집'은 저녁장사를 위해 휴식을 가진다.
이 사장은 빵을 스무 살부터 빵을 만들기 시작해 17년이 됐다. 12년은 종업원 10명의 유명 제과점에서 일했다. 자신만의 빵집을 갚고 싶다는 생각에 지인의 도움으로 가게를 차렸다. 부단히 일하며 5년 후 빚을 모두 갚았지만, 스트레스로 한쪽 청력을 잃었다.
"몸이 아파보니 세상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장사가 안되더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웠고. 지금까지 소홀했던 건강과 가족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당신에게 독일 빵집이란?저녁 여덟 시가 되자 '독일 빵집'의 막바지 판매가 한창이다. 퇴근길 손님들이 시장을 지나며 빵집에서 걸음을 멈춘다. 어느 단골손님이 "빠졌군. 빠졌어"라며 원하는 빵이 없자 다른 빵을 고른다. 알아서 척척 고르는 모습이 능숙하다. 진열대에 놓여있는 소보루 빵과 팥앙금 빵을 "오늘 매우 맛있다"며 권해봤지만, 빵 모양을 힐끔 보더니 "난 다른 게 좋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황하는 기자의 표정을 보고 이은서 씨가
위로의 말을 건넨다. "원래 소보루 빵과 팥앙금 빵은 유인상품이에요. 세 개 천 원에 판매하는 빵이라 많이 팔리지는 않아요. 하지만 속상한 건 싸게 판다고 정성이 없거나 오래된 빵이 아닌데 손님들이 오해해서 속상할 때도 있어요."위로가 도움되지 않았다. 진열대에 남은 빵을 보며 기자의 마음은 조금씩 다급해졌다.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열 시가 되자 은서 씨가 퇴근한다. 결국, 내가 만든 빵은 모두 팔리지 않았다.
가게가 문을 닫는 열두 시까지 이 사장 혼자 가게를 돌본다. 주변을 정리하는 이 사장에게 "사장님께 독일 빵집이란?"을 묻자 한참을 생각 끝에 웃으며 말했다.
"독일 빵집은 제 인생 자체입니다. 많은 것을 잃고 일궈낸 곳이에요. 여기서 산 인생이 기억에 제일 많이 남고 가치 있습니다."시장체험을 마치고 퇴근하려는 기자의 손에 이 사장은 "오늘 하루 고생했다"며 빵 한 봉지를 쥐여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묵직한 건 빵 무게뿐만 아닌 삶에 대한 무거움도 함께였다. 집에 도착해 먹은 빵은 단언컨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연재는 김진석 사진작가가 기획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 재학 중인 안형준(29), 임경호(29), 박기석(27) 3명이 취재를 진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