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서울에도 소담스러운 눈이 내렸습니다. 세상에 치여 살다보면 흰눈세상의 아름다움 보다도 그로 인한 불편함이나 내린 눈이 녹은 후의 지저분함을 미리 당겨와 지금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잃고 삽니다.
때로는, 저 하얀 눈속에 덮혀있는 것들 중 추한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냥 눈감아주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때가 되면 드러나는 것이니 말입니다.
세상 온갖 근심 걱정이 사라집니다
붉은 열매와 하얀 눈이 참으로 잘 어울립니다. 낙산홍의 붉은 열매와 하얀 눈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는 시간만큼은 세상의 온갖 근심걱정도 사라져 버립니다.
열매 중에는 잘 익은 열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것들도 있었습니다. 꽃 피어난 대로 열매를 맺고, 열매를 맺은대로 다 익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잘 익은 열매만 의미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고 떨어진 꽃, 익어가다 익지 못한 것, 그냥 말라져 버린 것들이 있어 잘 익은 열매가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른바 '루저(실패자·낙오자)'인 셈이지요. 오로지 일등만 독식을 하는 우리네 세상이 질서가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자연을 보면서 우리는 그것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하얀 눈이 내린 아침, 붉은 낙산홍의 열매만 빛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쥐똥을 닮은 쥐똥나무 열매를 비롯해 강아지풀, 연산홍의 이파리, 떨어진 단풍 등 모두 소소한 풍경이지만 다 아름답습니다.
이런 날, 이런 순간은 세상사 잠시 접어두고 하얀 눈이 만들어준 풍광에만 취하는 것도 밤새 내린 하얀 눈에 대한 예의일 것 같습니다.
첫눈이라서 이런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쌓인 눈이 일상이 되고, 그것이 불편함을 가져온다면 이런 마음이 없어질지도 모를 일이지요. 하얀 눈 내린 서울의 아침, 붉은 낙산홍은 눈부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