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가천대학교 한의대생들이 학교 측에 '임상교육 정상화'와 '100병상 이상의 부속 한방병원 건립'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며 수업을 거부하고 있다. 지난 2004년, 2008~2009년에 이은 세 번째 항의농성이다.
항의농성이 시작된 10일 오후 4시, 가천대 한의대생 100여 명은 검은 마스크를 쓰고 교정 내 성큰플라자 광장과 비전타워 광장에서 "합의문을 이행하라" "병원 건립 추진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그 사이 일부 학생들은 "한의과대학 학생들과 한 10여 년간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무시한 학교 당국은 각성하라"는 제목의 전단을 지나는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백승준 한의대 학생회장(22대, 본과 2학년)은 "학교 측은 2004년, 2009년 당시 합의문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무조건적인 신뢰를 요구해 왔지만 10년 동안 학생들이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부속 한방병원 관련 합의 사항 이행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학생들의 교육권을 보장하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며 학교 측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어 그는 "학교 측이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않는 것은 학생들을 철저히 무시하는 처사"라며 "가천대 인근 지역에 100병상 규모의 부속 병원 건립을 가시화하지 않는다면 기말고사 거부 등 투쟁 수위를 높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권용민 차기 학생회장(본과1학년)도 "12개 한의대 가운데 부속 한방병원이 가장 열악한 곳이 가천대다. 비싼 수업료를 내고 열악한 환경에서 한의사 수업을 받는 걸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학교 측을 비난했다.
본과 1학년 임민호 학생은 한의대 교육 시스템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임민호 학생에 따르면 한의학의 정규학과는 12개임에도, 가천 한의대는 6개의 임상학과로만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또한, 실험실 공간과 장비가 부족해 한두 명만 실습하고 나머지는 관찰만 하는 실정이다.
학교 측, 합의문 이행 안 해
학교 측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는 학생들 주장은 사실이다.
학교 측도 "합의 사항을 이행함에 있어서 시간이 지체된 점은 유감으로 생각한다"며 약속 불이행을 시인했다.
학교 측은 2004년 7월 당시 학생들과 한 합의문을 통해 ▲ 2013년까지 경원대(현 가천대) 부속한방병원을 완공한다. 단 가능한 2010년까지 조기에 완공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 현재 한의대의 열악한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인근 지역에 100병상 규모의 건물을 임차해 부속병원을 조속히 마련한다 ▲ 750평 내외 규모의 한의학관을 2007년 2학기 이내에 마련할 것을 약속했다.
또한, 2009년 1월 당시에는 ▲ 2013년도까지 국제어학원에 부속 한방병원을 완성해 개원한다 ▲ 한방병원이 건립돼 실습교육이 이뤄지기까지 본과 4학년생 전원에게 1년간 전액 장학금을 지급한다 ▲ 인천한방병원에 교육공간을 추가로 확보한다. ▲ 국제어학원에 건립되는 부속 병원의 리모델링 설계도면을 조속히 발주한다 등 8가지 합의사항 이행을 약속했다.
이 합의문을 근거로 한의대생들은 그동안 끈질기게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지금까지 기다려 달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합의문이 작성되기까지 농성, 수업거부 같은 학생들의 끈질긴 집단 항의가 있었다. 학생들은 지난 2004년과 2008년~2009년, '한방부속병원건립'을 요구하며 항의 농성을 벌여 학교 측으로부터 합의문을 이끌어냈다.
가천 한의대 사태 장기화 조짐학생들이 한의대 부속 한방 병원 건립을 요구하는 이유는, 임상실습 등의 학습을 위해 부속 한방병원이 꼭 필요하지만 현재 가천대가 소유한 시설로는 충분한 학습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천대 부속 한방병원은 인천에 있는 길 한방병원이다. 학생들에 따르면 학교와의 거리가 60km로 대단히 멀고 실 병상수는 40병상 정도다. 규모로 보면 대학병원이라기보다는 개인이 운영하는 한방병원에 가깝다. 이런 탓에 학생들은 임상실습 등이 거의 불가능 하다고 주장한다.
현재 학생들은 점점 강하게 학교 측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 측은 학생들을 설득하고 타협을 이끌어 낼만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학생들 시위는 점점 격렬하고, 장기화 될 듯하다.
학생들은 학교 인근에 부속병원을 지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학교 측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인천 길 한방병원을 보강·증축하려고 한다. 또한, 학교 측은 "2015년까지 한의과 대학 교육인증 평가를 받으려면 어차피 100병상 이상의 부속 한방병원이 있어야 하니 그때까지 기다리라"고 학생들을 설득하고 있다. 학생들은 10년 동안 기다렸으니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다. 학생들 요구와 학교 측 해결방안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타임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타임즈 장혜원 기자와 공동취재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