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화면이 크고(프린트 132(335×279mm)) 사실적인 묘사에 생동감 있는 색채를 사용하여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현장에 있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인물과 함께 그려지는 주변의 세부적인 치밀한 묘사 또한 돋보인다. 글을 보지 않고 그림만 봐도 사건이 전개된다.
앞 속표지에서 호랑이가 할머니를 덮치려는 긴박함을, 뒤 속표지에서 밤톨, 자라, 쇠똥, 맷돌, 멍석, 지게, 할머니가 덩실 덩실 춤추는 모습을 무채색으로 처리하였다. 책 앞과 뒤에 무채색의 회색 사이에 끼인 생생한 그림은 이야기를 단번에 현실로 끌어 들인다.
우리 조상들의 삶에서 호랑이는 신이었다. 호환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을 갖지 못한 민중에게 호랑이는 경배의 대상이었다. 호랑이는 우리의 친근한 벗이었다. 사람이 극복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존재이지만 사람의 지혜에는 꼼짝 못하고 당하는 어리숙함을 가진 자연이다.
모든 생명이 활기차게 움직이는 봄이다. 콩(팥)은 감꽃이 필 때 심는다. 언제라도 생명을 앗아가는 호랑이가 있는 현실이지만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팥을 심는다. 민중의 모진 생활력이다. 호랑이는 할머니와 더불어 팥죽까지 먹어 치울 욕심에 시간을 기다린다.
민중에게 시간은 그냥 흐르는 것이 아니라 "팥을 뽑아 잘 떨어서 광 안에 가득 쟁여 놓"을 만큼의 생산력 증대로 나타난다. 팥죽을 한 솥 가득 쑤어 훌쩍훌쩍 울 때, "팥죽 한 그릇 주면 내 살려 주지"라고 말하는 자라, 밤톨, 맷돌, 쇠똥, 지개, 멍석에게 먹인다. 사실 음식은 나누어 먹을 때 가치가 있고 맛있다. 음식을 나눠 먹는 것, 가장 구체적인 대동세상의 구현이다.
음식은 힘이다. 팥죽을 먹은 후, 자기가 가진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서 할머니의 목숨을 앗아가려는 현실적인 권력인 호랑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라, 밤톨, 맷돌, 쇠똥, 지개, 멍석은 조직된다.
할머니를 잡아먹으려는 호랑이를 아궁이에서 밤톨이 '탁'하고 눈을 때리고, 자라가 호랑이 손을 꽉 물고, 쇠똥에 주르륵 미끄러져서 '쿵'하고 나자빠지고, 맷돌이 '퍽'하고 호랑이 머리 위로 떨어지고, 멍석이 호랑이를 둘둘 말고, 지게가 냉큼 져다가 강물에 풍덩 빠뜨려 버렸다.
할머니, 자라, 밤톨, 맷돌, 쇠똥, 지개, 멍석. 개별적인 존재로 보면 이들이 호랑이를 잡는다는 것은 영원한 꿈이다. 그러나 할머니가 이룬 생산력의 증대를 통해 민중이 조직되면 새 세상의 주인임을 분명히 이야기 하고 있다.
값 비싼 호랑이의 가죽을 이용하여 부자가 된 게 아니라 강물에 풍덩 빠뜨려 버려 기존의 질서와 완전히 결별한 질이 다른 새 세상이다.
"할머니는 어떻게 됐냐고? 아직도 재 너머에 살고 계신대." 삶은 계속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아미뉴스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