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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글쓰기에 관련된 책은 별로입니다. 글쓰기에 미욱한 저를 돌아보는 일이 힘들어서입니다. 가끔 그런 책을 손에 쥘 때마다 탄식합니다. 그들은 왜 그토록 하나 같이 글을 잘 쓰는지, 나는 왜 이다지도 글쓰기에 쩔쩔매는지 답답해하면서 말이지요. 다시는 글쓰기 책에 눈길도 안 주겠다 다짐합니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합니다. 어느 날 문득 유명 작가와 문필가가 멋진 제목을 달아 내놓은 글쓰기 책을 서점 서가에서 발견합니다. 유혹합니다. 잠깐 주저하다가 지갑을 꺼내고 맙니다. 읽습니다. 탄식하고 답답해 합니다. '악순환'입니다.

책 <잘 쓰려고 하지 마라>도 그렇게 만났습니다. 그런데 첫 만남의 느낌이 여느 때와 다릅니다. 치명적인 '유혹'보다 '공감'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명색이 말글 선생이라고, 평소 글쓰기 수업을 할 때 전하는 첫 번째 말이 바로 이 말, '잘 쓰려고 하지 마라'였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을 위한 글을 써라? 아닙니다

 책 <잘쓰려고 하지 마라> 표지
책 <잘쓰려고 하지 마라> 표지 ⓒ 생각의길
책 <잘 쓰려고 하지 마라>는 퓰리처상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명성 있는 문학상 수상 작가 20인으로부터 듣는 '글쓰기' '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책입니다. 여느 글쓰기 책과 달리 이럴 때는 이렇게 쓰고 저럴 때는 저렇게 쓰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스무 명의 '독보적인' 글쟁이들이 자신들이 어떻게 글 쓰는 삶을 꾸려가는지를 간단하게 소개할 뿐입니다.

어찌 보면 그 모두가 너무나도 평범하고 당연한 내용들입니다. 글을 쓰지 않으면 '사지가 마비된다'고 말하는, 2011년 퓰리처상 픽션 부문 수상자인 제니퍼 이건. '내 안에 이야기 씨앗들이 종양처럼 자라나고 있어서, 언제가 되었든 그 이야기들을 끄집어내야만' 한다고 여기는 칠레국립문학상 수상자 이사벨 아옌데의 사례는 이야기와 글, 글쓰기에 미친 작가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스스로 무언가를 쓰려고 책상 앞에 앉는 우리도 그런 모습을 갖지 않을는지요.

그런데 그들과 우리는 왜 이렇게 다를까요. 퓰리처니 국립문학상이니 하는 휘황한 상들을 수상하는 그들과 달리 왜 우리는 곧잘 글쓰기에 미치면서도 곧장 글쓰기를 저주하는 모순에 빠질 때가 많을까요.

몇몇 작가의 조언을 들려 드립니다. 제니퍼 이건은 꾸준히 글을 쓰기 위해서는 항상 잘 쓰기만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말합니다. 많은 작가가, 그리고 글쓰기 교사들이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함량 미달의 글을 쓰는 것에 실망하지 말란 말로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건 역시 나쁜 글을 일종의 기본기 다지기, 잘 쓰기 위한 준비운동으로 여기라고 조언합니다.

국제범죄소설 명예의 전당에 등재된 데이비드 발다치는 '독자들을 위한 글을 써라'는 말에 현혹되지 말라고 말합니다. '독자' 대신에 '시장' '돈' 등을 집어넣어도 될 듯합니다. 발다치는 '내가 가장 잘 아는 독자는 나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스스로를 위한 글을 쓰라고 주문하는 말입니다. 내셔널매거진상 수상자인 세바스찬 융가도 똑같이 말했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깁니다.

'일단 쓰라'고 일갈하는 북브라더스 다이아몬드상 수상자 새러 그루언과 글을 잘 쓰는 데는 어떤 비결이나 지름길도 없으니 수년간 노력하라고 잘라 말하는 다이아몬드 대거, 평생공로상 수상자 수 그래프턴의 조언은 가장 평범하지만 글쓰기의 진실에 가장 부합하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알렉스상 수상자 조디 피코의 적절한 지적처럼, 글쓰기는 고된 노동입니다. 노동은 하기 싫다고 그만두는 게 아니지요. 그래서 피코는 이렇게 말합니다.

"쓰고 싶은 기분이 안 내킬 때도 글을 써라. 세상에 뮤즈란 없다. ··· 나쁜 원고는 언제라도 교정할 수 있지만 빈 원고지를 들고 교정할 수는 없다."(본문 263쪽)

'남다른 방식'보다 중요한 '남다른 것'

 글쓰기에서 '독보적'이라고 평가받고 싶으신가요? 방법이 있습니다. '남다른 것'에 집중하십시오.
글쓰기에서 '독보적'이라고 평가받고 싶으신가요? 방법이 있습니다. '남다른 것'에 집중하십시오. ⓒ sxc

여기까지 읽어오면서 '이게 뭥미'(이게 뭐지) 하고 여기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이 책의 무엇이 '공감'가는 것이었냐면서 말이지요. 그래서 이 책에서 특별히 인상적으로 다가온 글쓰기 '비법' 하나를 알려드릴까 합니다.

글쓰기에서 '독보적'이라고 평가받고 싶으신가요. '남다른 방식'으로 쓰지 말고 '남다른 것'을 쓰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제니퍼 이건을 평가하면서 저자가 내린 조언입니다. 저자의 이 조언은 사실 제가 가장 많이 들어야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남다른 것'을 쓰기 위해서는 그 '남다른 것'을 볼 줄 아는 '눈'이 중요하겠지요. 그런데 해가 갈수록 그런 '눈'이 무뎌져 가는 듯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책과 글을 많이 자주 읽으면서 깊이 생각하되,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늘 새롭게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겠지요.

<오마이뉴스>에 글을 써 올리기 시작한 지 1년이 다 돼갑니다. 그동안 300여 개를 조금 넘는 기사를 썼습니다. 그런데 불씨만 머금은 '잉걸' 기사가 많은 게 마음에 걸립니다. 스스로 진짜 쓰고 싶어 쓴 글이라면 '잉걸'이든 '생나무'든 무슨 문제겠습니까. 제가 쓴 '잉걸'이나 '생나무' 역시 모두 제가 쓰고 싶은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버금'이나 '으뜸' '오름'이 아니라 '잉걸'과 '생나무'에 머문 게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왜 '잉걸'이나 '생나무'가 됐을까요. 바로 그 '남다른 것'의 부족 때문이 아니겠는지요. '생나무'보다는 '잉걸'이, 이들보다는 '버금'이나 '으뜸'이나 '오름'이 훨씬 더 강력하게 후속 기사 쓰기를 추동합니다. 그렇다고 늘 '으뜸'이나 '오름'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런 '괴물'(?) 같은 시민기자들도 있어서 자신의 목소리를 사방팔방에 널리 알리기도 합니다만.

하지만 '으뜸'이나 '오름'이 안 됐다고 해서 지레 주눅들지 마십시오. '생나무'나 '잉걸'이 됐다고 해서 씁쓸해하는 것은 최악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그 모든 기사가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이었다면 됩니다. 거기에서 출발하시면 되지 않겠는지요. 여기에 하버드대학 니번기금 수혜자인 수전 올리언의 말을 덧붙여 가슴에 새기시면 더 좋지 않을까 합니다.

"글쓰기를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글쓰기를 사랑한다는 걸 스스로에게 종종 일깨워라."(235쪽)

저 자신과, 이곳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리는 모든 시민기자와,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독자들에게 '글신' 강림을 축원합니다.

덧붙이는 글 | <잘 쓰려고 하지 마라> (매러디스 매런 편저, 김희숙·윤승희 옮김 | 생각의길 | 2013. 12. 6 | 328쪽 | 16,000원)
이 글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잘 쓰려고 하지 마라 - 퓰리처상 수상 작가의 유혹적인 글쓰기

메러디스 매런 엮음, 김희숙.윤승희 옮김, 생각의길(2013)


#<잘 쓰려고 하지 마라>#매러디스 매런#생각의길#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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