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나누지 못한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다. 아버지가 두 눈 멀쩡히 뜨고 있는데 자식이 군침을 흘리다간 내쫓기거나 심지어는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당나라와 조선의 두 '태종'들은 아비가 순리대로 권력을 내놓을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아예 형제들을 죽이고 아비를 유폐 시키거나 멀리 쫓아 버렸다.
김정은이 장성택을 살해한 것도 마찬가지다. '장성택'으로 상징되는 아비 김정일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정일은 아들 걱정에 장성택을 키워 아들을 지켜주고자 했지만, 이제 아들은 그런 배려를 부담스러움이 아닌 위협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왕조국가나 독재국가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선거로 정권을 바꾸는 민주국가에서도 그런 흔적은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권력의 변하지 않는 속성... '절대 나누지 않는다'노태우의 6공 권력은 100% 전두환이 만들어 준 것이다. 노태우를 후계자로 지목한 전두환은 안기부와 기무사 등을 독려해 부정선거를 총기획했으며, 재벌들로부터 쓸어 모은 돈 중 1500억 원을 노태우에게 선거자금으로 은밀히 건네줬다. 심지어는 노태우가 자신의 친인척들의 비리를 담은 소책자를 발간하고 5공과의 단절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우겠다는 비상계획까지 허락해 줬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단 태우를 대통령만 만들어 놓자, 상왕(上王)은 내가 아닌가.' 이를테면 이런 속셈이 전두환에게 있었을 것이다.
'권력의 화신' 전두환도 이 지점에서 실수를 저질렀다. 권력에 너무 취한 나머지 권력의 속성을 깜빡한 것이다. 노태우는 권좌에 오르자마자 전두환이 만들어 놓은 '상왕 기구' 국가원로자문회의를 유명무실하게 축소해 버렸고, 4월 총선 민정당 공천에서 5공 실세들을 대거 탈락 시켜 버렸다.
이뿐이 아니었다. 3월 말 전격적으로 군 인사를 단행해, 임명된 지 3개월 밖에 안된 군 수뇌부를 자신의 '9·9 인맥'으로 싹쓸이했다. 그 달 말에는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을 구속 시키기까지 했다. 견디다 못한 전두환은 4월 13일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직과 민정당 명예총재직 등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해야만 했다. 그해 말 전두환은 기어이 백담사로 갔다.
노태우의 철저한 전두환 부정
전임 대통령을 죽음으로까지 몰아간 이명박의 경우는 두말할 나위도 없는 '패륜'이지만, 새로 들어 선 정권이 직전 정권을 비판하고 청산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성격이 전혀 다른 정권교체 때는 물론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권, 김대중-노무현 정권 등 성격이 같은 정권으로 교체될 때도 일정한 청산작업이 반드시 따라오게 마련이다. 전두환·노태우를 싸잡아 구속시킨 김영삼 정권, 어떤 방식으로든 대북송금 문제를 정리해야 했던 노무현 정권이 그 예다.
구 정권을 단죄하는 것만큼 새 정권에 대한 호감도와 지지율을 높이는 이벤트는 없다. 어떤 정권이든 일정 기간 권력을 휘두르다 보면 정책적 실패나 부정부패가 있기 마련이다. 비록 나중에 같은 길을 답습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선 우리 정권은 다르다는 신선한 모습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그것은 구 정권에 대한 단죄의 형태일 때 가장 극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힘을 과시하는 효과, 노태우나 김정은의 경우처럼 죽은 권력이 '감 놔라, 배 놔라' 식으로 간섭하는 것을 선제 차단하는 부수적 효과도 있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박근혜 정권이다. 이명박에 대해 꼼짝을 못하고 있다. 대개 구 정권 청산 작업은 집권 초반기에 이뤄진다. 새 정권의 힘이 가장 셀 때이면서도 아직은 권력기반이 약한 모순적인 상황에서 새 정부가 필요한 강력한 동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임 1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박근혜 정권은 묵언수행 중이다. '물태우'라 불리던 노태우의 단호함 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사실 이명박 세력이 박근혜 정권에 위협이 된다거나 간섭할 주제가 못 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정책 방향도 새 정권이 전 정권과 다르다고 딱히 내세울 것이 없다. 정체불명의 '창조경제'라는 구호만 요란할 뿐 부자감세도 그대로고, 재벌정책도 그대로고, 부동산정책도 그대로고, 핵발전소는 오히려 더 짓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다. 복지정책과 남북관계는 악화일로에 있고 노동탄압은 극을 치닫고 있다. 도무지 이명박 정권과 차별화할 아무 핑곗거리가 없는 것은 맞다.
'이명박' 앞에서는 침묵 지키는 '박근혜'
하지만 사기질 한 것, 도둑질 한 것, 깡패짓 한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널리고 널린 그런 것들 중에서도, 숨기고 누르고 거짓말하고 온갖 짓으로도 끝내 틀어막을 수 없어 정권 말기에 급하게 얼기설기 덮어 놓은 것들. 그래서 툭 건들기만 해도 고름이 줄줄 터져 나올 것들을 어떻게 좀 해 보라는 이야기다.
이명박이 대표적으로 '사기질'한 것은 4대강 사업이며 자원외교 등이며, 도둑질 한 것은 내곡동 사저터 편법매입 시도와 친인척 비리의혹들이며, 깡패짓 한 것은 민간인 사찰과 정치공작 같은 공권력 남용이다. 이런 것들만 제대로 정리해도 나는 국정원 등이 총동원된 부정선거 문제와는 별도로, 과감히 박근혜 정권 존재가치의 절반은 인정할 태세가 돼 있다.
지금쯤이 이 비장의 카드를 써먹어야 할 절호의 기회인데 박근혜 정권은 엉뚱하게 '종북몰이'와 '말꼬리잡기'로 허송세월하고 있다. 경제와 국가재정을 주의깊게 지켜보는 많은 전문가들이 국가재정 파탄의 가능성을 우려한다. 실제 공기업의 부채가 천문학적인 규모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직전 정권 핑계라도 대는 게 인지상정인데 박 정권은 여전히 말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명박을 극진히 모시는 그 사연이 궁금하다. 세간에는 오래 전부터 '이명박근혜' 정권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은 샴쌍둥이 같은 운명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그 말에 힌트가 숨어있는 듯하다.
샴쌍둥이 중에서도 머리가 붙지 않고 심장이 둘인 경우는 분리수술을 해도 둘 다 살아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반면에 등이 붙은 샴쌍둥이는 심장이 하나인 경우가 종종 있어 분리수술을 하려면 한 쪽을 희생 시켜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둘 다 죽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명박근혜'라는 샴쌍둥이에게는 뭔가 차마 이야기하지 못하는 탄생의 비밀이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불행하게도 샴쌍둥이는 분리수술을 하지 않아도 오래 살지는 못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