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걱정 때문에 너무 노심하다가 소중한 마음을 흐리게 하지 맙시다. 돈은 편리한 것이긴 하지만, 돈이 반드시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하오. 중요한 건 참 인간성의 일치요. 비록 가난하더라도 절대로 동요하지 않는 확고부동한 부부의 사랑 그것이오. 서로가 열렬히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한다면 행복은 우리 네 가족의 것이 아니겠소."<이중섭 저, 이중섭 편지와그림들> 참 아름답고 진리로운 말이다. 하지만 이중섭이 말하는 저 아름다운 말을 마음에 매일 같이 다짐하며 살기엔 지금 우리 사회는 물질이 만능인 시대로 이미 발전해 있고 매일 같이 물질만능시대 그 이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리하여 '돈'에는 편리함은 물론이거니와 권력과 모든 것을 통달하는 힘이 얹어져 있다. 작은 예로 '패션의 완성은 월.급' 이라는 말처럼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그야말로 '웃픈' 이야기다. 이렇게 사회는 이런 웃픈 이야기에도 공감할 수밖에 없게끔 돈의 존재성이 확고해지고 있다.
이중섭의 말, 아름답기는 하지만물론 돈에서 자유로운 사람들도 있겠지만 실상 사회는 돈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또 우리를 그렇게 살 수 없게끔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카드 막음으로 이미 써버린 나의 꾸밈비가 아깝다는 생각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그 뿐이었다. 나를 화나게 한 것은 그가 써버린 꾸밈비 얼마가 아니라 나의 말을 도통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태도였다.
그 당시 그의 행패(?)를 시어머니께 알리고자 했으나 그리 득 될 행동은 아니라는 생각에 어머님께는 말씀드리지 않았다. 다만 친정 엄마에게 알리고 친정 엄마로부터 모든 공감을 얻은 위로로 조금의 이성을 찾을 수 있었다.
대화가 안 된다고 해서, 내 돈을 몽땅 써버렸다는 것이 그와의 결혼을 깨트릴 이유가 될 수 없지 않은가. 결혼은 일단 했으면 잘 살아 보려고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본다. 나는 그 최대한의 노력으로 그가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해서 가슴을 치며 화를 낼 것이 아니라 그 갈등의 실마리를 잡기로 했다.
'우리' 수중에 들어온 돈은 너, 나, 목적 구분 없이 '우리 돈'이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과, 결혼을 했다 해도 목적이 있는 돈이면 목적에 맞게 쓰여져야 하고 목적에 맞게 주인 구분이 되어야 한다는 나. 이랬기기에 대화가 어렵고 서로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재정, 경제 관념이 다른 사람들이었고, 결혼을 하면서 우리의 수익을 어떻게 관리할지 전혀 얘기가 되지 않았었다. 서로 한 달에 얼마를 벌어오는지 정확한 금액도 몰랐고, 적금은 매달 얼마씩 넣을지, 생활비는 얼마로 충당할 것인지, 신용카드 사용은 어떻게 할 것인지, 급할 때 현금화할 수 있는 비상금은 어떻게 마련해 둘 것인지 등. 재정과 관련하여 논의되어야 할 부분들이 무지 많았을 텐데 우리는 어떤 것도 전혀 얘기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그때그때 되는 사람이 돈을 쓰는 꼴이었다. 그러니 그는 나의 꾸밈비로 카드막음을 하고도 당당했고, 화를 내는 나에게 당혹스러움을 느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우리 관계에서, 더 나아가 우리 가정 안에 '돈'이라는 녀석을 사이에 두고 조정이 필요했다.
"오빠, 우리 재정 원칙이 확실히 정해지기 전까지 각자 월급 따로 관리하는 건 어때?""왜왜~ 아직도 화 나 있는 거야?""아니 그건 아닌데...""그럼 왜, 각자 관리하자는 말이 참 듣기 그렇다? 나만 그래?""그렇지, 그렇긴 한데 우리 이렇게 돈 쓰다간 빚만 늘어날 것 같아. 좀 조정기간이 필요한 것 같은데..""음......."신기하게도 그는 이전과 다르게 나의 말을 올곧게 알아듣고 이해했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은 했지만 개인의 월급을 각자 관리하기로 했다. 먼저 각자의 월급에서 생활비와 적금, 핸드폰 요금을 내기로 했고, 가족행사나 특별한 사안으로 지출이 나가야 할 경우에는 서로가 반반씩 내기로 했다.
이렇게 몇 달이 지났을까. 초심을 잃은 우리 두 사람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서로의 카드값이 모자랄 땐 보태 주기도 하고, 적금을 어느 한사람이 내기도 하고, 생활비가 모자라 둘 중 한 사람이 카드를 쓰거나 현금을 쓰기도 했다.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부부관계에서 더치페이 생활을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적금 통장은 사놓고 몇 장 들쳐보다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책과 같은 존재가 되었고, 생활비 통장은 한 달도 채 안 되어 바닥을 드러내야 했다.
"아, 쉽지 않네. 정말. 돈이 이렇게도 안 모이냐, 혼자 살 땐 족히 쓰고도 저금 잘했는데.""뭐야 그 말은? 말에 가시가 있다?""가시는 무슨. 그냥 그렇다고... 왜 발끈하고 그래. 뭐 찔리는 거 있어?""야, 찔리긴 무슨, 나는 출퇴근 교통비 밖에 안 써. 간혹 커피나 마시고.""그래... 그렇겠지... 근데 카드명세서가 보고서 정도 분량은 된다. 그치?""너 카드명세서 보고 얘기해... 내가 그 정도면 넌 박사학위 논문 수준이야. 말이 나와 하는 말인데.. 제발 옷이랑 화장품 좀 그만 사. 옷장에서 내 옷 찾는게 왜 이렇게 힘드냐? 화장품도 다 비슷비슷한 것들인데 사놓고 쓰긴 하는 거야? 아님 수집에 취미둔 거야?""다 입는 거고 다 쓰는 거야. 직장 다니는 여자가 이 정도도 안 사입으면 어떻게! 그렇게 사 입어도 매일 아침 입을 옷이 없어서 고민이다!""어휴, 징그러워. 그 옷 매일 다르게 입어도 족히 2년은 입겠더라.""오빠나 잘해. 괜히 하지도 않을 운동기구 사들이지 말고!"그렇다. 그와 나는 잘못된 방향으로 재정을 굴리고 있었던 것이다. 정확한 출처도 모른 채 여전히 월급은 잉크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노력한다 했으나 결과가 달라지지 않아 속상한 것은 그나 나나 마찬가지였다.
생애 첫 마이너스 통장, 눈물이 '왈칵'재정원칙을 정한다는 핑계로 일정 금액을 내고 남은 돈을 마치 공돈처럼 써버린 대가였을까. 그 해 연말 나는 몸이 좋지 않아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고 우리는 마이너스 통장을 발급 받아야 했다. 결국 생애 첫 마이너스통장을 받아들고 나서야 우리는 정신이 들었다.
그와 나의 인생에 첫 은행 빚이었다.
"별걸 처음으로 다 가져보네. 젠장."그가 통장을 발급받고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나 역시 가슴을 무겁게 누르는 빚의 무게를 절대 무시할 수가 없었기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회사까지 그만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가져다주는 월급을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조마조마하게 관리하는 것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월급에서 절반으로 줄여 생활하니 숨이 막히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그의 표정이 어두워지고 부부 사이의 침묵의 시간이 길어졌다. 이 상태에서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씀씀이도 줄이지 못한 철부지 부부가 아이의 몫까지 책임진다는 것은 당시 우리에겐 큰 부담이었다.
직장을 그만 두고 쉬는 나는 아이를 원했으나 그놈의 마이너스통장이 무엇인지... 마이너스통장의 위엄에 눌려 지나가는 아이를 보고도 '예쁘다' 한마디도 못했고 어떤 날은 그와 나는 각자 다른 방에서 잠을 청하는 날도 잦았다.
왠지 이 재정난의 시작이 다 내 탓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가 꾸밈비로 카드막음을 한 것은 이런 사태가 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한 것이었을 수도 있었겠다'라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나 참 돈이 뭔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말도 못하게 하는 건지."
돈 걱정 때문에 너무 노심하다가 소중한 마음을 흐리게 하지 맙시다. 중요한 건 참 인간성의 일치요. 비록 가난하더라도 절대로 동요하지 않는 확고부동한 부부의 사랑 그것이오.이 말이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힘든 이유는 아마도 '확고부동한 부부의 사랑이 돈의 힘을 이기기에는 우리 사회가 이전보다 많이 편리해지고 그만큼 편리함이 요구되고 있지 않은가'라고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또 그 편리함의 깊이가 낮고, 의미를 퇴색시킨다 하더라도 돈이 가진 힘이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면 확고부동한 부부의 사랑이 돈을 이기기엔 사회가 우리를 돈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