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여성민우회(이하 민우회)는 1987년에 태어났다. 그동안 호주제폐지 운동, 성폭력특별법재정활동, 출산 휴가 90일 사회 보험화 운동, 미인대회 지상파방송중계 폐지 등, 차별받는 여성의 성을 위한, 성 평등 사회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월경대 부가가치세 면세캠페인과 산부인과 진료문화 바꾸기 프로젝트도 민우회가 해온 활동들이다.
외모는 여성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여러 가지 요소 중 거의 대표적인 것이다. 민우회는 2003년부터 외모지상주의 사회의 변화를 위한 교육을 비롯하여 여러 미디어 모니터링, 다양한 캠페인과 관련 정책 제안 등을 해오고 있다.
민우회가 올봄에 출간한 <있잖아… 나, 낙태 했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기획한 <뚱뚱해서 죄송합니까?>(후마니타스 펴냄)는 이런 활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2013년의 캠페인 "다르니까 아름답다"의 결과물이다.
민우회는 그동안 해온 활동들과 관련된 여러 권의 책을 쓰거나 기획했다. <性희롱 당신의 직장은 안전합니까?>, <있잖아… 나, 낙태 했어>, <여자들의 유쾌한 질주>, <여성주의 학교 '간다'> 등이 그 책들이다.
이 책들의 특징은 한사람 혹은 몇 사람의 시각으로 쓴 책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수의 여성들, 그 목소리가 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다수의 여성들을 인터뷰하고 그 목소리들을 최대한 반영하는 형식으로 썼다. 그만큼 공감의 폭이 넓다고 할 수 있겠다. 여러 사람과 관계된 문제인 만큼 가급 많은 사람들의 사정이나 사연을 들어보는 그만큼 여러 사람의 문제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 <뚱뚱해서 죄송합니까?> 역시 마찬가지. 성형이나 다이어트 경험이 있는 여성 24명을 인터뷰, 20명의 목소리가 책의 바탕이다. 부제처럼'예뻐지느라 아픈 그녀들의 이야기'다.
고도 비만의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녀에겐 잊을 수 없는 경험이 있다. 엄마와 어느 고층 아파트에 사는 친척집에 갔다가 나오는 길이었다. 타고 있던 엘리베이터가 중간에 멈추고 한 아저씨가 탔다. 그러자 만원을 알리는 경고음이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잠시 뒤 엄마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엄마가 뭐가 죄송해, 우리가 먼저 탄 건데!""내가 뚱뚱해서 그래……."그녀는 어린 마음에 가슴이 너무 아팠다. 그녀의 어머니는 가난이 자신의 몸 때문이라 생각했다. 사실 그런 면도 없지 않았다. 요리사였던 어머니는 몇 년에 한 번씩 직장을 바꿔야 했는데, 면접만 보면 항상 울고 들어왔다. 면접 때마다 대놓고 그렇게 몸이 뚱뚱해서 요리는 제대로 할 수 있겠냐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엄마는 "정말 잘 할 수 있습니다"하고 사정해야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살 빼라, 예뻐져야 한다'는 엄마의 주기도문에 그녀는 지방흡입수술로 답했다. 뚱뚱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뚱뚱해서 죄송하니까?> '빅뷰티의 인터뷰' 중에서그 중 한사람인 빅뷰티(25세, 대학생)는 고도비만인 엄마의 체형을 닮아 어렸을 때부터 뚱뚱했다고 한다. 뚱뚱한 것이 전혀 예쁘지 않다? 나쁘다?는 것을 미처 몰랐던 아주 어린 꼬마 때, 여러 친구들 앞에서 남자친구에게 거절당한 아픔도 있다. 뚱뚱하기 때문이었다.
빅뷰티보다 훨씬 많은 세월을 뚱뚱한 몸으로 살아온 그녀의 엄마는 살아온 세월 그만큼 차별도 많이 받아왔다. 그만큼 상처도 많고 깊다. 때문에 스스로, 단지 뚱뚱하기 때문에, 누구에게든, 막연하게 죄송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애초부터 빅뷰티의 엄마가 뚱뚱하기 때문에 스스로 죄송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이유에는 '뚱뚱하기 때문에 예쁘지 않다'에서부터 출발해 '뚱뚱한 사람은 미련하다'든가,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 등 수많은 사람들의 외모만으로 누군가를 평가하는 차별들을 셀 수 없이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빅뷰티는 그녀 스스로 지금 현재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뚱뚱한 사람이 제대로 숨쉬고 살 수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의 엄마가 먼저 성형외과로 데려가 코부터 눈까지 수술시켰고, 자칫 생명이 위험할 수 있는 7시간에 걸친 전신지방흡입술까지 격려해준 덕분이다.
빅뷰티는 수술 후 자주 아프단다. 조금만 뭘 해도 금세 피곤해지고, 한 시간 이상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 머리가 아프단다. 전신지방흡입 수술 부작용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가 한편으로 행복한 것은 예전보다 뚱뚱하지 않기 때문에, 예전보다 날씬해진 만큼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엄마들이, 혹은 가족들이 뚱뚱한 내 딸 혹은 뚱뚱한 내형제 자매에게 관대한 것은 아니다. '예뻐져야 한다. 살 빼라. 살을 빼야 예뻐진다. 다이어트 안하냐?'며 끊임없는 잔소리를 하거나, 걱정 혹은 격려를 한다. 그런데 당사자에게는 그것이 상처가 되기도 한다.
혹은 모처럼 만난 누군가가 아무렇지 않게 건넨, 혹은 친밀함과 관심의 표현으로 "건강 생각해서라도 살 좀 빼!""요즘 맘 편한가봐. 살 올랐어"라든가, "옷 터지겠다!", "배가 더 나왔어!"와 같은 말들 때문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막심(23세, 간호사):"살이 찐 사람이 의료적인 조언을 하면 환자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어서 병원에서는 마른 체형을 원해요. 일부 병원들은 승무원 면접처럼 병원이 원하는 외모, 취향대로 간호사를 뽑아요. 꼭 그래야 한다는 지침은 없지만 암묵적으로 병원에서 원하는 체형이 있어요. 건강해 보여야 하지만 마른, 그런 이미지를 요구할 때도 있어요. 의사가, "000간호사, 살 좀 빼" 하고 대놓고 얘기하는 경우도 있죠."미니멜(39세, 승무원):"베스트 슬리머상이라고, 지금 몇 킬로그램인데 앞으로 몇 킬로그램을 더 빼면 상을 주는 제도가 공식적으로 시행되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승무원 다섯 명 정도에게 살이 많이 쪘다고 휴직해서 살 빼고 나오라고도 했어요. 한 명은 승무원 직에서 일반직으로 아예 전직을 시켰어요. 결국 한 후배는 회사를 그만두더라고요. 너무 자존심 상해서.-<뚱뚱해서 죄송합니까?>에서인터뷰에 응한 여성들은 16세 고등학생부터 23세 간호사, 25세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 57세 가정주부까지 다양하다.
책은 가정이나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벌어지는 뚱뚱한 사람들에 대한 그릇된 인식 혹은 차별에 대한 이야기부터, 외모를 능력과 직결시키는 직장 내 차별, 미디어들의 외모지상주의 부추기는 실태, 성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들의 성형 부작용 그 고통 등을 들려줌과 함께 우리 사회 산재한 외모지상주의 그 문제점들을 진단한다.
민우회가 이런 책을 기획한 취지는 제2부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누군가의 그릇된 시선이나 인식으로부터 상처받지 않는 방법이나 대처하는 방법, 뚱뚱한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 좀 더 당당하게 살아가는 이야기, 뚱뚱한 스스로를 바꾸는 노력, 외모지상주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되는 마인드컨트롤 등에 대해 싣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제목만으로 뚱뚱한 사람들, 혹은 여성들에게나 해당되는 책이라고 간주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단지 뚱뚱한 여성들에게만 해당되는 책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외모로 능력이나 사람 됨됨이를 평가당하는 것은 뚱뚱한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란 생각과,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지 못한 누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외모로 상처를 주는 일이 너무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때문이었다.
가족 누군가 혹은 친한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얼굴 좋아졌다?"처럼 외모와 관련된 말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는 여성들의 고백은 찌릿하게 읽혔다. 나도 더러는 누군가에게 무심코 했던 말인 동시에 누군가로부터 듣고 싶은 않은, 그래서 들으면 한동안 외모에 신경쓰이던 말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뚱뚱해서 죄송합니까?>l 사단법인 한국여성민우회 (지은이) | 후마니타스 | 2013-12-02 |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