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다양한 스타일의 부부가 있지만, 이들 부부만큼 재밌는 부부가 있을까. 세계여행을 위해 일상을 산다고 할 만큼 세계여행 마니아인 김낙빈·최희영 41세 동갑내기 부부가 안성공도에 산다.
세계여행하면서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겨지난 16일 안성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들 부부. 그들이 처음 만난 곳도 범상치 않았다. 서울 신림동 달동네에서 야학을 가르치다가 만났다. 당시 야학교사가 대부분 대학생이었다면, 이들은 서로 다른 직장을 다니면서, 조금은 늦은 나이에 야학교사에 지원한 사람들이었다. 그렇다. 이들은 야학이 아니었다면 서로 만날 일이 전혀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2006년에 결혼한 그들은 신혼여행을 유럽여행으로 선택했다. 며칠이 아닌 한 달 동안을. 이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2007년도엔 아예 1년 계획을 잡았다. 이때 이들 부부는 유서를 써놓고 떠났다. 무작정 떠나는 배낭여행이어서 생사를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2007년도 중국대지진 현장, 인도 뭄바이 테러현장 등을 경험하면서 수차례 죽음의 위기를 넘겼다. 그들은 "세계 사람들의 별꼴을 다 봤고, 우리 부부 서로 간에도 별꼴을 다 봤다"며 웃었다. 서로 더욱 친해질 수밖에 없었던 건 싫어도 좋아도 같이 얼굴을 맞대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때 1년 간 그들은 소위 배낭여행을 떠났고, 중국을 거쳐 베트남,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 인도 등을 돌아 다녔다. 세계 여행을 꿈꾸었지만, 결국 아시아여행으로 끝난 게 아쉬웠다고 했다.
그 후에도 그들은 틈만 있으면 세계여행을 감행했다. 낙빈씨는 술과 요리하기를 좋아하기에 외국인 게스트하우스에서도 인기 만점이었다. 파티를 열고, 30여 명의 외국인을 초대했다. 인도에선 이틀이 멀다하고 파티를 했단다.
어떤 때는 태국에서 부부가 3개월 살다가 오기도 했다. 어떤 때는 베트남 현지인들과 NGO활동을 같이 하기도 했다. 어떤 때는 헝가리, 베트남, 일본 등의 사람들이 이들 부부의 한국 집에 머물다가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과 SNS를 통해서 요즘도 교류하고 있다. 이들 부부에겐 '500여 건의 여행과 3400장의 여행사진'이 담겨 있는 블로그가 있다.
"여행을 떠나면 매순간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어 좋다. 뭘 먹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선택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내가 살던 곳을 떠나 다른 사람들의 다른 세계관을 접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여행은 자신을 만나는 과정"이라며 여행의 묘미를 설명하는 이들 부부. 여행을 다녀오면 "내가 이 정도는 갖추고 살아도 되겠지"란 욕심을 내려놓게 된다고 했다.
이들 부부는 왜? 그리고 어떻게?이 정도가 되면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이들 부부는 세계여행마니아가 됐을까. 그리고 틈만 나면 세계여행을 한다는데 어떻게 무슨 돈으로 그게 가능할까.
여기엔 희영씨의 아픔이 있다. 2004년 암투병을 하던 여동생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세상을 먼저 떠나고 이듬해에 여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아등바등 살던 인생에 회의감을 느꼈다. 이때, 낙빈씨의 위로가 한몫을 했다. 그들이 결혼을 하고, 세계여행을 결심한 해였다.
세상에 하나뿐인 여동생을 저세상에 보내면서 시간이 기다려주지 않음을 깨닫게 된 그녀. 하고 싶은 것을 미루고 살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원래 도전적이고 진취적이던 낙빈씨도 생각한 바였다. 부부는 그렇게 의기투합을 했다.
그럼 비용은? 1년 아시아여행은 전셋집과 차를 팔았다. 낙빈씨는 신문기자, 요리사 등을 하면서 돈을 번다. 희영씨는 특허번역(프리랜서)을 하면서 돈을 번다. 돈을 벌면 여행을 위해 저축한다.
아이는? 이들 부부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진즉에 합의를 봤다. 이들 부부의 논리는 간단하다. "우리는 자식을 낳아서 '올인'하는 삶보다 그 비용과 노력으로 여행을 하겠다"는 거다. 또한 "그 비용과 노력을 평소 사회에 기부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자신들을 위한 투자와 사회를 위한 투자 간에 균형을 맞추려 노력한다고 했다.
세계여행, 부부의 행복 공통분모또한 "우리는 최대한 재산을 소유하지 않는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은 이들 부부 집에 가보곤 놀란다. 텔레비전, 냉장고, 침대가 있을 뿐이다. 생활에 꼭 필요한 것만 갖추고, 나머지는 가지지 않는다. 이들 부부에 의하면 차량만 소유하지 않아도 1년에 5~600만 원은 절약하는 거 같다고 했다. 그동안의 세계여행 덕분에 비용절감 노하우도 생겼다.
"사람들은 '우리도 세계여행을 떠나고 싶다.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이유에 묻혀 결국 포기한다. 우리 부부는 우선순위를 정했고, 그것을 실행했다"며 세계여행 희망 부부들에게 조언도 해주었다.
"부부는 서로 뭔가를 같이 할 수 있는 게 많아야 평생 사이좋게 살 수 있을 거"라고 희영씨가 말한다. 자신들은 단지 그 공통분모로 세계여행을 선택한 거라고 했다. 이 부부는 여행하며 인생을 누리다가 고통 없이 한날에 함께 죽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다음 목적지는 남미여행을 가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 스페인어도 배우려고 한다."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떠나고 나서도, 마음이 설렌다는 이들 부부를 누가 말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