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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은 부산에 있는 국내 최대 부랑인 시설이었다. 형제복지원의 실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 개인 소유의 목장에서 복지원 입소자들 168명을 동원해 강제노역시키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 당시 부산지검 울산지청의 김용원 검사가 1987년 1월 17일 박인근 원장 등 5인을 구속하면서부터다.

그러나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에 묻혀 형제복지원 사건은 잊혀진다. 사건의 주역인 박인근 원장에게는 1심에서 징역 10년, 벌금 6억8178만 원이 선고됐다. 하지만, 박인근 원장은 일곱 번의 재판 결과 벌금없이 2년 6월의 짧은 형을 살고, 1989년 7월 20일에 출소했다.

그러나 그후로도 박인근 일가의 복지재단 사업은 계속됐다. 형제복지지원재단은 부산시의 특별지도점검(2012.8.27.~9.7) 결과, 허가없이 임의로 장기차입(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118억)하여 횡령 또는 유용한 혐의를 받았다. 이 혐의에 따라 박인근씨는 불구속 기소된 상태이고, 3남인 박천광씨가 현재 형제복지지원재단의 대표(2011.4.7)가 재단을 운영해고 있다.

1984년 10월부터 1987년 1월까지 형제복지원에 있었던 한종선(당시 9세)씨가 지난해 5월부터 올해 2월까지 국회 앞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던 중 한국예술종합대학의 전규찬 교수를 만나 <살아남은 아이>라는 책을 발간하고, 형제복지원 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대책위 준비위원회가 뜨면서 26년 만에 형제복지원 사건은 다시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형제복지원의 전신인 형제육아원은 1960년 7월 설립 당시 보육시설이었는데, 1971년 12월 27일 부랑인보호시설로 변경된다. 1975년 7월 25일에 부산시와 '부랑인(아) 일시보호사업 위탁 계약'을 체결 후 매년 계약 갱신을 통해 국고보조금을 지원받게 된다. 1975년 12월 25일에는 '부랑인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처리 지침(내무부 훈령 410호)'이 제정되고, 부랑인의 단속과 수용에 대한 근거가 되어 '부랑인(아)'라는 낙인으로 사람들을 단속하게 된다.

내무부 훈령 410호 1절 부랑인 단속의 기본적인 업무에서는 '단속·수용·보호하는데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임무는 첫째, 윤리적 측면에서 모든 부랑인을 친부모 형제와 자식과 같이 대해야 하고'라고 하고 있으나, 피해자들의 진술에서는 부랑인이 아님에도 폭력적으로 수용돼 일상적인 폭행과 감금, 강제노동, 성폭행 등의 인권유린이 일상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모호하고,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부랑인' 정의

내무부 훈령 410호 2절의 부랑인 정의는 모호하고,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여 모든 사람들을 잠재적 부랑인으로 취급할 여지가 있다. '일정한 주거가 없이 관광업소, 접객업소, 역, 버스정류소 등 많은 사람이 모이거나 통행하는 곳과 주택가를 배회하거나 좌정하여 구걸 또는 물품을 강매함으로써 통행인을 괴롭히는 걸인, 껌팔이, 앵벌이 등 건전한 사회 및 도시질서를 저해하는 모든 부랑인을 말한다.'

실제로 대책위(준)에서 만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보면 역에서 기차를 놓쳐 파출소에서 아침을 기다리던 중, 회사원이 퇴근길에, 부산에 놀러와 역 대합실에 있다가, 시내에서 놀고 있던 10살의 소녀 등이 아무 이유 없이 경찰·선도요원들에 의해 형제복지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또한, 대책위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1987년 당시 27세였던 안아무개씨는 "홍익대생 4년 재학생으로 1986년 10월 1일에서 10일 사이에 불온유인물 소지 혐의로 구류 5일 선고받은 후 부산진경찰서에서 복지원 수용되었다"고 진술한 내용이 있어 부랑인시설에 시국사범이 포함돼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훈령에서는 시·군·구 민원실에 부랑인 신고센터를 설치하고, 시청·구청·군청에서 경찰서와 합동으로 기동단속반을 편성하고, 연고자가 확실한 자에 대한 귀향 시 인수인계 책임 또한 시·군·구에서 담당하도록 돼 있다. 시·군·구와 경찰의 합동 단속, 귀향의 책임과 국고보조를 통한 시설 운영에 대한 지시·감독을 제대로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인권침해와 최소 513명의 사망에 대한 책임을 형제복지원, 한 시설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이다. 

형제복지원을 비롯해 관련된 시·군·구·경찰 등도 책임 있다

사건 발생 후 진행된 당시 야당 신민당의 조사 결과(1987.1.29~2.1) 보고서에서는, '100여 명의 면담자 대부분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 입소되었으며, 이는 도시미관을 위한다는 행정적 독단과 범죄 예방이라는 미명 하에 감옥의 대응으로 편의적으로 악용되었음이 조사결과 나타났다. 특히 경찰의 경우 단속기간 내지 특별단속 기간 시 연고자가 있는 만취자, 껌팔이, 구두닦이 등 생활 능력자를 수용하는 등 강제 수용절차를 임의로 자행,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신체 자유를 구속했다'고 한다.

경찰내부 근무평점 기준을 보면 구류자에는 2~3점, 형제원 입소에는 5점을 부여함으로써 부랑인 수용 실적이 성과가 되었다. 1986년도 형제복지원 수용자 3975명 중 경찰의 수용의뢰가 3117명으로 78.4%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은 보사부와 경제기획원 추천에 의해 국민포상(81.4.20)·국민훈장 동백장(84.5.11)을 수여받고, 평통자문위원 등 거물급 행세를 해왔으나 1976년도에 민간원호단체에서 보내온 원아 월동용 옷을 헌옷 상점에 판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동아일보> 76.2.6). 또한 헌병출신으로 행세하며 군 체제 형태로 원 운영을 해왔으나 사건이 터진 후 조사에서는 헌병출신이 아니라 수송병 출신이며 군복무 중 근무이탈을 해 영창을 살기도 했던 경력이  알려진다(<동아일보> 87.2.13).

재판이 계속되면서 구속 기소된 박인근에 대한 비리가 속속 밝혀졌다. 김용원 검사의 첫 공소장에서 국고보조금 횡령액은 3억6900여만 원이었는데, 수사과정에서 횡령액이 점점 커져 11억4200여만 원으로 밝혀졌지만, 상부의 압력으로 횡령금액을 6억8178만 원으로 조정됐다.

이것은 단지 2년치(85~86년) 국고보조금 38억9100여만 원에 대한 횡령액으로, 6억8178만 원이라 해도 2년치 국고보조금의 17.3%에 해당한다. 1985년 이전에도 지원금에 대한 횡령이 있었다면, 금액은 상상 이상이 될 것이다. 횡령 내역을 보면 부산 남구청 개발국장이었던 이아무개씨에게 대여(6500만 원), 다른 부랑인수용시설에 대여, 타인 명의로 아파트·골프회원권 매입 등 로비와 재산 축적의 형태를 볼 수 있다.

1987년 사건 조사 중에 폭행사망자 김계원씨(86.8.3)에 대해 병사로 허위 사망진단서를 발급한 혐의로 촉탁의사 정명국씨가 구속되었고, 신민당 조사에서는 '시체를 병원에 실험용으로 팔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고 했다. 12년(1975~1986년) 동안 513명의 공식 사망 숫자는 최소화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최소 사망자 513명과 4000여 명(1986년, 신민당 조사결과)의 수용 피해자들의 진실에 대해 침묵한다면, 용기를 내어 치부를 드러내고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에 대한 또 다른 폭력이 되지 않을까.   

용기를 낸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폭력을 가하지 않도록

형제복지원 대책위 출범 기자회견 지난 11월 22일 19개 단체가 함께 하는 형제복지원 대책위가 출범되었다
형제복지원 대책위 출범 기자회견지난 11월 22일 19개 단체가 함께 하는 형제복지원 대책위가 출범되었다 ⓒ 천주교인권위원회

2013년 11월 1일 안전행정위 국정감사에서는 진선미 의원이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과 진상 규명, 피해 보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물었다. 이에 유정복 장관은 "관련부처와 협의해서 조사도 하고 진의원님이 말씀하신 그런 부분에 대해서 검토하겠습니다"라고 답변한다. 장관의 답변이 국정감사에서 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공허한 답변이 아니었기를 기대한다.

2013년 1월에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 준비위원회의 활동을 접고, 이번 11월 22일에 19개 참여단체의 공식 대책위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책위에서는 앞으로 형제복지원 사건 해결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자들의 명예회복, 피해 배·보상을 위한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수미님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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