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이 '행복합니까? 아닙니다' 하는데 고백성사를 보는 거 같았어요. 하나님 앞에 고백성사하듯이…. 우리 사회가 너무나 불안합니다.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박창신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원로신부는 지난 17일 대학생들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박 신부는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과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이 주최한 '만민공동회'에 참석한 참이었다.
박 신부가 '고해성사'라 동을 뜨자, 정 전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전 교단을 단결시키고, 전 국민의 고해성사를 교황님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서 끌어내는 찬란한 능력을 보여줬다, 전 국민을 회개시킨다"며 맞장구를 쳤다. 이날 대담을 시작하며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시러 시러"라 적힌 손 팻말을, '대학생들의 대자보가 어땠냐'는 질문에 "조아 조아"라는 손 팻말을 들었던 150여 명의 청중들이 한껏 웃었다.
"나는 '좌'다, 말할 수 있는 사회가 건전한 사회"
박 신부가 이처럼 공개석상에서 발언한 건, 지난 달 시국미사 강론 이후 처음이다. 박 신부는 지난 달 22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구교구 시국미사 강론을 통해, 종불몰이 사례를 언급하며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사건은 서해 해역에서의 한미군사훈련이 북한을 도발했기 때문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다. 이후 '빨갱이'로 몰린 박 신부는 극우단체로부터 테러 위협을 받기도 했다.
지난 시국미사 당시 '종북몰이'의 해악성을 설파한 박 신부는 이날 만민공동회에서도 "좌우가 함께 있어야 새가 나는데, 우리 사회는 왼쪽을 잘라 버렸다"며 "(한국전쟁) 이후 농민운동·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면서 운동을 하지 못하게 묶어 놨다"고 말했다. 이어 "(이승만 정부 당시) 정당도 생기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게 조봉암 진보당 사건"이라며 "요즘에도 그런 게 있다, 똑같은 것"이라며 이석기 진보당 의원 사태를 빗대 설명했다.
박 신부는 "노동자와 농민들이 '나는 좌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전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좌라고 하면 빨갱이라 죽여야 한다고 하니 세상의 변화를 요구 하는 사람들이 그 말을 못한다"며 "농민운동을 하는 나도 좌다, 빨갱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종북'을 뜻하냐는 청중의 질문에 그는 "이건 북과 연결되지 않은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박 신부는 시국 미사 당시 발언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북을 적으로 규정한 게 천안함 사건이라서 (지난 11월) 강론에서 얘기한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종북몰이를 위해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 강론에서) NLL 얘기도 했는데, 거긴 분쟁지역인데 거기서 왜 훈련을 하냐는 그 말"이라며 "예를 들어 독도에서 일본군이 훈련한다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강론에 모인) 군중들이 '쏴야죠' 하기에 나도 쏴야지라고 했더니 종편과 지상파에서 말꼬리를 잡아서 나를 이렇게 유명하게 만들었다"고도 말했다.
시국 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니"라고 발언한 것도 재차 언급했다. 지난 대선에 국가기관에 개입한 정황을 두고 박 신부는 "이건 불법 선거로 무효다, 법치국가에서 공직선거법을 지키지 않으면 선거 자체가 무효"라며 "현재 상황으로도 다 드러났다, 세계 사람들이 우리나라 욕할 것"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박 신부는 "수개표 하지 않은 투표는 무효다, 그래서 부정선거 백서를 들고 강론을 한 거고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니라고 한 것"이라며 "박 대통령은 공약한 걸 지키지도 않고 재벌만 키운다, 퇴진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한 종편 방송으로부터 "종북의 두목"이라 평가 받은 박 신부는 "나는 시골신부인데 종편과 지상파 방송사가 국제적 인물로 만들어줘서 감사하다"며 여유롭게 손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민주당이 MB 청문회 하도록 끄집어 내자"
박 신부의 강연 후 2부 사회를 맡은 정 전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 집중하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그는 "(국정원이 대선 개입하게 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누가 임명했냐, 그건 국정원 단독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대통령이 (대선 개입 사실을) 알고 있었고 (원세훈의) 명령으로 진행됐을 것이다, 이게 상식적으로 맞는 얘기 아니냐"고 주장했다.
정 전 의원은 "2012년 9월 2일,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가 100분 간 독대를 했다, 대변인도 배석하지 않은 일대일 독대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라며 "그 후 국정원과 사이버 사령부가 댓글을 통해 선거 개입을 집중적으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정원 국가기관이 개입한 총체적 부정 사태에 책임이 있는 각하(이명박 전 대통령)는 왜 저렇게 행복하게 사나, 국민의 70%가 구속 수사하는 게 맞고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함에도 왜 MB를 손 못 보고 있냐"며 "둘 사이(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에 뭐가 있는 걸까"라고 의구심을 표했다.
더불어 정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안녕들 하십니까' 피켓을 들자고 제안했다. 그는 "원세훈에게 (대선개입을) 직접 지시한 것으로 추정되는 MB에 대해, 한 축에서는 '각하는 안녕하십니까' 피켓 들고 삼성동 (이명박 전 대통령) 집 앞에 가서 시위라도 해야 한다"며 "민주당이 MB 청문회를 하도록 끄집어 내면 그 분은 절대 혼자 죽지 않는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며 얘기를 할 것이다, 저들이 가장 아파할 고리는 9월 2일 100분 독대가 아닐까 추정해 본다"고 꼬집었다.
또 정 의원은 "한 시민이 내게 쇠고기 파동 때 아파트에 플래카드를 건 것처럼 아파트 베란다에 '행복하지 못합니다' 플래카드를 거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고 전했다. 그러자 만민공동회 청중들 사이에서도 여러 아이디어가 튀어나왔다.
한 청중은 작은 뱃지를 만들어서 가슴팍에 달자고 말했고, 또 다른 청중은 휴대전화 케이스에 '안녕들 하십니까' 스티커를 붙이자고 제안했다. 자동차에 조그맣게 '내려와라' 문구를 붙이자는 의견도 이어졌다. 정 전 의원은 트위터 프로필 사진을 바꾸자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경향신문사 12층 대강당에서 열린 만민공동회에는 '여기 왜 왔냐'는 질문에 답변하는 시간도 있었다. 한 중년 여성은 "난 박근혜 하야하라고 외치고 다니는 사람인데, 어디서든 날 잡아다가 쓰라고 여기 왔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또 다른 중년여성은 "부정선거는 민주주의를 살인하는 건데, 지난 대선이 부정선거라는 확신이 들어서 나왔다"고 답했다. 한 어르신은 "답답해서 나왔다, 정의 사회가 구현되길 바란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각각의 사연을 들은 정 전 의원은 "지난 1년이 좋았는지 묻기 위해 오는 19일 시청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동시다발적으로 사람들을 단결시키는 무한능력을 대선 1주년 때 확인하려고 한다"며 오는 19일 서울 광장에서 열릴 '관권 부정선거1년, 민주주의 회복 국민대회' 참여를 독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