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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은 전직 대통령인 MB에게도 뜻 깊은 날이었다. 6년 전 청와대에 입성하는 순간부터 이 날을 '트리플 데이'로 명명하며 기념했다. 트리플 데이란, 세 기념일이 겹쳐진 날로 그의 생일, 결혼기념일 그리고 2007년 12월 19일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날을 의미한다.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MB는 하루 전날인 18일 재임 당시의 비서실장 및 수석비서관들과 함께 서울의 한 횟집에서 자축하는 자리를 가졌다.

12월 19일은 단절과 청산이 아닌 '정권 재창출한 날'

이 자리에서 MB는 "퇴임 대통령의 새로운 롤모델을 고민하자"고 언급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서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얼마 전 포항을 방문할 당시 국정원 댓글 사건을 묻는 <오마이뉴스>의 기습 질문에 "부지런도 하다"고 답했던 그는 4대강 사업, 원자력 발전소를 비롯한 해외자원개발 등 국민들의 머리 속에는 사고를 많이 친 전 정권으로 인식되어 있는데 뜻밖에 매우 자신만만해 보인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동관 전 홍보수석은 마치 현직 수석처럼 거칠 게 없었다. 그는 "(4대강 사업 = 대운하라는 감사원 지적에 대해) 감사원이라는 곳이 어떤 직무, 회계 문제를 하는 곳이지 정책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곳이 아니다"며 "대운하다 아니다 하는 것은 감사원이 언급할 사안이 안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감사원에 대해 이토록 강경하고 거침 없이 목소리를 높였던 전 정권이 또 있었던가.

이 전 수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최근 구설수에 오른 이정현 홍보수석의 거침 없는 발언에 대해 "직설적 반응을 보이면 오히려 소통의 장애가 된다"며 더욱 거침 없이 말했다. 이어서 "(홍보 업무라는 것이) 관용과 인내가 필요하다"며 이 수석에 대한 친절한 조언도 마다하지 않았다. '내시' 소리까지 들어가며 나름 '윗분'의 뜻에 충실했을 텐데 이 전 수석의 말을 들었을 이정현 수석으로서는 아팠을 것이다.

18일 '트리플 데이' 모임에서 MB가 무슨 말을 했는지 많은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언론에 공개된 일부 내용을 보자면, 이 전 대통령은 "12월 19일은 단절과 청산의 날이 아닌 정권 창출에 이어 재창출한 날"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MB의 발언이 묘하다. 2007년 12월 19일 정권 창출은 분명 MB가 했다. 당시 그는 '경제 대통령' 구호로 압승을 거뒀다.

 정봉주 전 의원, MB사무실앞 1인 시위 정봉주 전 의원이 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이명박 대통령 사무실이 입주한 한 빌딩앞에서 '대선 전 2012년 9월 2일 100분간 '단 두분'께서 무슨 말을 나누셨나요?"가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 전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여당 대선후보가 배석자 없이 장시간 회동을 한 후 국정원 댓글 건수가 급증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봉주 전 의원, MB사무실앞 1인 시위정봉주 전 의원이 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이명박 대통령 사무실이 입주한 한 빌딩앞에서 '대선 전 2012년 9월 2일 100분간 '단 두분'께서 무슨 말을 나누셨나요?"가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 전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여당 대선후보가 배석자 없이 장시간 회동을 한 후 국정원 댓글 건수가 급증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 권우성

그러나 2012년 12월 19일 정권을 '재창출'한 것은 그가 아니라 박근혜 후보였다. 링 위에서 선수로 뛴 것은 박 후보였지 MB가 아니었다. 당시 그는 심판이었다. 그런데 왜 그는 지난 해의 대선승리를 마치 자신의 승리처럼 축하를 하고 있는가. 야당에서는 국가기관 대선개입의 책임을 MB에게 물으려 하고 있으며, 정봉주 전 의원은 그의 사무실 앞에서 '대선 책임'을 묻는 1인 시위까지 하고 있다. 이런 미묘한 시점에 그와 그의 세력들은 정권 재창출에 대한 자부심을 언론에 등장하면서까지 일부러 드러내고 있는지 의문이다.  

정권 재창출을 축하한 데 이어서 MB는 "퇴임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롤(Role) 모델을 고민하자"고 말했다. 이 말의 의미를 이동관 전 수석은 "국정을 운영하면서 축적된 경험을 나라를 위해서 기여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며 "과거 퇴임 대통령의 불행한 문화는 정쟁에 얽혔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언급한 뒤 "정쟁에서 벗어나 국익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중"이라고 향후 구상을 소개했다.

5년 전 새로운 전직 롤모델 보여준 대통령, 끝까지 탄압했던 MB

MB가 꿈꾸는 전직 대통령의 새로운 롤모델은 그러나 2008년 4월 이미 뉴욕타임즈(NYT)에 의해 보도된 바 있다. 이 신문은 '집무실을 떠나 시민들 속으로(Out of Office and Into a Fishbowl in South Korea)' 제목의 기사에서 봉하마을에는 주중에는 수 천명, 주말에는 2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들이 몰려든다고 소개한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시에는 인기가 없었고 지지율이 30%를 밑돌았으나 퇴임 후에는 새로운 전직 대통령의 모습을 세웠다"고 보도했다.

전직 대통령의 새로운 문화를 세우다 봉하마을로 내려가 새로운 전직 대통령의 문화를 세우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개하는 <뉴욕타임즈> 2008년 4월 10일자 기사
전직 대통령의 새로운 문화를 세우다봉하마을로 내려가 새로운 전직 대통령의 문화를 세우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개하는 <뉴욕타임즈> 2008년 4월 10일자 기사 ⓒ 뉴욕타임즈 갈무리

뉴욕타임즈는 2008년 보도 시점 당시 생존해 있던 전직 대통령 4명은 서울에서 철저한 경호를 받으며 일반 시민들과 접촉이 드물다고 전한 뒤, 노 전 대통령은 그와 달리 봉하마을에서 자전거도 타고 나무도 심고 농부들과 청소도 한다고 소개했다. 기존과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 전직의 롤모델로 소개했던 것이다.

시골 봉하마을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맞으며 하루하루 보내던 노 전 대통령의 행복은 얼마 지속되지 못한다. 그에게 곧 악몽이 시작됐다. 시련은 2008년 12월 박연차씨가 구속되면서부터 시작됐고 2009년 4월부터 본격화된다. MB정권의 검찰은 박연차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을 압박했다. 최측근이었던 이광재 의원을 구속했고, 수족이었던 정상문 전 비서관을 구속했고,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도 구속했다. 부산상고 출신들에 대한 조사도 강도 높게 진행하는 등 전방위 압박이었다. 그는 철저하게 고립되어 갔다.

압박의 수위를 점점 높여가던 검찰은 가족을 정조준하기에 이르렀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씨를 소환했고 아들을 2009년 4월에만 5번 소환해 조사했다. 4월 22일에는 노 전 대통령을 대상으로 서면질의서를 발송했고, 4월 30일에는 드디어 소환조사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버스를 타고 서초동으로 소환되던 그날의 광경은 생생하게 TV로 생중계됐다. 그 뒤의 일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아는 그대로다. '논두렁 시계' 등을 비롯해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가지고 MB정권은 인간에게 줄 수 있는 모욕을 주었다. 그리고 비극!

그로부터 조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2008년 7월 16일 노 전 대통령이 MB에게 쓴 편지가 공개됐다. 대통령 기록물과 관련해 전현직 정부 사이에 갈등이 생겼는데 힘을 가진 현직을 전직이 이길 리는 만무했다. 자존심이 셌던 노 전 대통령은 공개편지를 통해 인간적 섭섭함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문화 하나만큼은 전통을 확실히 세우겠다는 말은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먼저 꺼낸 말"이라며 "잘 모시겠다는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한 만큼, 지금의 궁색한 내 처지가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마지막 목소리를 냈었다.   

시간은 흘렀다. 전직에게 무자비한 칼춤을 췄던 MB가 이제는 전직이 됐다. 1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스스로 표현한 것처럼 '정권 재창출'을 이뤄냈기 때문인지 노 전 대통령의 처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감사원이 '4대강=대운하'라고 했지만 '감사원이 뭘 아느냐'고 일축했다. 감사원을 대하는 게 이 정도면 보통 자신감이 아니다. 보라는 듯이 MB는 자전거를 타고 4대강인지 대운하인지를 돌았고, 재임 중 업적을 홍보하는 자서전을 쓰고 있으며, 전직의 경험을 사회에 환원할 방법을 모색하는 중이다.

19일 파티로 자축한 MB, 변호인으로 돌아온 노무현

MB가 '정권 재창출'을 축하하던 바로 그 때, 또 다른 전직인 노 전 대통령이 영화 <변호인>을 통해서 국민을 찾아왔다. 이는 고인이 된 그가 국민들에게 다가올 수 있는 가장 극적인 방법이었다. 12월 19일은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날이기도 하다. 2002년 12월 19일 그는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 위더스필름

영화는 노 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로 거듭나게 된 '부림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80년 부산에서 활동하던 배경도 없고, 돈도 없고, 가방끈도 짧은 세무변호사가 바로 노 전 대통령이다. 그는 탁월한 수완으로 자리를 잡게 되고 제법 잘 나가는 변호사 대열에 이름을 올려놓게 된다. 그리고 우연히 떠맡게 된 국밥집 아들의 변호인. 이때부터 영화 속 변호인과 실제 노무현 인생에는 반전이 시작된다. 국밥집 아들은 고문을 당했고 영화 속 변호인은 국가의 폭력에 분노하면서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다.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에도 부림사건을 대하는 35세 젊은 변호인이 등장한다. 그는 당시를 "일단 구치소로 피고인 접견을 갔다. 그런데 여기에서 상상치도 못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얼마나 고문을 받았는지…그들은 모두 영장 없이 체포되었고 짧게는 20일, 길게는 두 달 넘게 불법 구금되어 있으면서 몽둥이찜질과 물고문을 당했다"고 술회했다. 이어서 "그들이 그렇게 학대받는 동안 가족들은 딸 아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한 젊은이는 62일 동안 불법 구금되어 있었다"며 국가에 의한 폭력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의 상징문구인 '사람사는세상'은 사람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다. 그는 스스로 이 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문재인 의원은 <문재인의 운명>에서 "(동업을 하던 노 전 대통령은) 단 한 번도 내가 하고자 하는 소송의 수행 방향 등에 대해 이견을 말씀한 적이 없다. 참으로 굉장한 신뢰와 존중과 대접을 해준 것이다"고 회상했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실제 노무현은 영화 속 변호인의 모습과 같았던 것이다. 

2013년 12월 19일 왜 인지는 이해되지 않으나 대선 1주년(?) 파티를 연 MB. 이 자리에서 그는 '정권 재창출'을 자축했고, 전직 대통령 '롤모델'을 세우겠다는 포부도 밝혔고 이를 언론에 공개했다. 불과 몇 년 전, 그는 전직에게 가장 악독했던 현직이었다.

같은 날 대선 11주년을 맞아 노 전 대통령이 <변호인>으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그는 새로운 전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시골로 내려갔고, 그곳에서 악의적인 공격을 받았다. 인권 변호인 출신의 그로서는 다른 형태의 국가 폭력에 무기력한 스스로의 처지를 이겨내지 못했다. 정권은 그의 약한 점만 잔인하게 공격했다. 자존심이 누구보다 셌던 그에게 '논두렁 시계' 등 공격은 모욕이었으리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그는 과거의 이야기 속에서 그때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는 다시 <변호인>이 되었다.


#변호인#노무현#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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