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시기에 두 편의 영화를 봤다. 1975~1979년 패트리시오 구즈먼의 작품인 <칠레전투> 3부작과 얼마 전 개봉한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이다. <칠레전투>는 1970년대 초반 칠레 사회의 실사를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이고 <변호인>은 1981년 '부산의 학림사건'이라는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여서 영화의 장르는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두 영화의 내용면에 있어서는 유사한 부분이 꽤 많다.
<칠레전투>는 피노체트를 중심으로 한 군사 쿠데타로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이 무너지는 전체 과정과 군부 장악에 맞서는 칠레 국민들을 사실 그대로 보여준다. 패트리시오 구즈먼은 당시 칠레 사회를 보는 시각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으로 각기 다른 정치적 사상을 가진 칠레 국민들의 인터뷰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1부에서는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칠레 내 기득권층과 부르주아, 그리고 이들 뒤에서 모든 것을 보고 있는 미 국무부가 중점적으로 다룬다. 이들은 언론을 통제하여 거짓보도를 일삼고, 국민들이 현 정부에 대해 반발심을 사게끔 서민들에게 물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1부의 마지막은 촬영 중인 카메라맨이 칠레 군에게 총을 맞고 쓰러지면서 찍은 장면으로 마무리되는데 이 장면은 칠레 국가의 불완전한 사회 분위기를 여과 없이 나타낸다.
<변호인>의 영화 속 배경은 <칠레전투>와 유사하다. 아예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던 시절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칠레전투>에서 언론을 조작했다면 <변호인>에서는 없는 사건을 조작하여 만들어버린다. 이는 국민들을 속이고 인식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송우석-칠레 국민 같은 국민은 몇이나 될까
<칠레전투> 2부는 쿠데타에 의해 무너지는 아옌데 정권을 담아냈다. 군부 세력은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군은 방송국, 대통령궁까지 공습한다. 아옌데 정부는 사면초가의 상황으로 결국 무너지고 피노체트의 쿠데타는 성공한다. 하지만 칠레 국민들은 끝까지 맞서 싸운다. 그리고 마지막 3부는 칠레의 희망의 빛 한줄기를 보여준다. '민중의 힘'이란 부제에 맞게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칠레 국민들의 단결된 의지가 단연 돋보인다. 국민 스스로 힘을 합하여 식량을 조달하고 운수업을 위해 본인의 차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나선다.
<변호인>에서 군부 정권의 지도하에 군과 경찰은 힘을 합쳐 데모하는 대학생들을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소위 빨갱이로 간주하여 국보법 위반을 구실로 납치 및 불법 감금해 거짓 자백을 만들게 한다. 송우석 변호사는 이 중 대학생을 변호하게 되면서 무자비한 권력에 맞서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영웅적인 인물로 나타난다. 칠레의 국민들과 <변호인>의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는 권력에 인권마저 억압되는 사회와 맞서 싸우는 위치에 있으면서, 권력과 대립하는 역할이라는 점이 유사하다.
<칠레 전투> 1부에서 한 노동자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다.
"이 정부의 싸움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건 내 아이들을 위한 싸움입니다." 이와 유사하게 <변호인>의 주인공도 사무장과의 대화에서 비슷한 대사를 한다.
"내 아이들에게 그런 세상 안 살게 하려고 한다." 그렇다. 두 영화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의 아이들이 살 미래를 위해 싸우는 것이었다.
송 변호사는 재판도중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을 외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칠레전투> 2부에서 한 국민은 인터뷰에서 말한다. "우리가 투표해서 대통령이 됐으니까, 우린 아옌데의 힘입니다"라고.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는 시끄럽다. 두 편의 영화를 보면서 내내 생각했다. 현 시점에서, 송 변호사처럼, 칠레의 국민들처럼 당당하게 소리칠 수 있는 대한민국 국민은 몇이나 될까하고. 하나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이란 바로 그 나라의 힘이란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시끄러운 사회 속에서 한 줄기, 아니 여러 줄기의 희망의 빛을 비추게 할 수 있는 좋은 영화 두 편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