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아치는 조치원역 앞. 할머니는 열차를 기다리다 헛걸음하며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할머니에겐 열차 운행 정보를 미리 체크할 인터넷이 없습니다.자신의 의견을 대자보에 써 붙일 학교가 없습니다. '파업으로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 잃었다'는 허위 사실을 찍어 나를 스마트폰이 없습니다.페이스북도 트위터도 대자보도... 할머니에겐 없습니다."국토교통부 페이스북에 올라온 '안녕들 하십니까 2014'란 글의 전문입니다. 코레일 측은 24일 이런 내용의 포스팅과 동영상을 국토교통부 공식
페이스북에 게재했습니다.
국토부 "허위사실 찍어 나를 스마트폰이 할머니에겐 없다" 최근 사회 현상으로 번진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들을 패러디한 이 글과 영상은 각종 대자보와 SNS의 철도노조 찬성 의견을 '허위 사실'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세대 갈등까지 조장하고 나섰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더욱이 국토부의 게시물은 지난 22일 경찰이 철도노조 간부 9명을 체포하기 위해 <경향신문> 사옥에 위치한 민주노총 사무실을 강제 난입한 뒤 악화된 여론도 아랑곳하지 않은 것이라 SNS 상에선 이미 거센 반발이 일고 있습니다.
특히, 국토부는 "노동기본권 보장받으면서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는 노조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과 얼굴을 삽입하고,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경쟁 체제 도입을 포함한 철도산업 구조개혁방안 발언 등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기존 새누리당과 코레일 사측의 주장을 반복한 이 영상은 민영화 이슈를 피해가는 한편 현 철도노조의 파업과 '박근혜 정부'와의 연관성을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명확해 보입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배경음악을 사용하며 감성을 자극하는 코레일의 이런 글에 페이스북 사용자들은 즉각 댓글로 반박하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에겐 할머니를 모시는 노동자들의 말을 들어줄 귀가 없습니다.""수천 명 해고 건에 관해 국토부가 허위사실이라고 명시해놨으니 나중에라도 철도 노조분들 해고되심 책임지시는 거죠?""국토교통부에게는 없습니다. 생각도, 뇌도, 필력도...""그리고 그 할머니는 민영화로 비싸진 철도이용료를 보고 다시 발길을 돌리십니다."과도한 SNS 여론몰이로 '불법 파업' '시민 불편' 강조
국토교통부의 이러한 SNS 여론몰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철도노조의 파업 강도가 거세지고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대한 반향이 절정에 달하던 지난 17일, '안녕들 하십니까'란 영상을 제작·배포한 바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불법파업으로 안녕하지 못합니다"란 코레일 최연혜 사장의 발표를 첫머리에 담은 이 영상에는 2002년 이후 8번째 파업을 강조하며 '시민 불편'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요. 시민들의 인터뷰 영상을 통해 "전 국민을 볼모로 잡는 것" "자기 밥그릇 챙기는 집단이기주의 파업"이란 주장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런 행태는 트위터에서도 계속되는 중인데요. 지난 21일 국토부 공식 트위터가 올린 글은 SNS 사용자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 왔습니다.
"철도 직원여러분! 여러분이 있어야 할 곳은 철도현장입니다. 민영화에 대한 우려는 허구에 불과하며, 철도파업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국민의 불편을 담보로 한 파업은 어떠한 정당성도 가질 수 없습니다. 국민의 발인 철도가 정상화 될 수 있도록 즉시 파업을 접고 직장에 복귀해 주실 것을 다시 한 번 간곡히 당부드립니다."이렇게 철도노조의 파업 이후 국토부 공식 계정은 국토부의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반복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찰의 헛발질로 여론의 강한 질타를 받았던 22일에도 국토부 트위터엔 다음과 같은 올라와 거센 비난을 받았습니다.
"금일 철도파업과 관련하여 공권력 투입은 철도정상화를 위한 조치로서 철도노조와의 문제해결을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철도문제 이외의 다른 문제로 확산되거나 철도노조 이외의 단체 등 외부의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국민불편 해소와 산업계 피해 방지를 위해 이해와 협조가 필요합니다."국토교통부의 이런 이례적이고 과도한 여론몰이엔 서승환 장관이 박근혜 대통령과의 대를 이은 인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시각들이 우세합니다. 잘 알려진 대로, 서승환 장관의 부친인 고 서종철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당시 육군참모총장과 국방장관, 대통령 안보 담당 특별보좌관을 지냈습니다.
사장 취임 전 최연혜 "철도 민영화가 대통령 지지율 떨어뜨려"
한편, 코레일 최연혜 사장이 취임하기 전에 올린 트위터 글이 새삼 주목받고 있습니다. 최연혜 사장은 지난 6월 14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발생한 열차 충돌사고를 두고 이러한 글을 남겼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철도를 포함한 교통 부문이 1990년대 민영화된 이후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이 같은 대형 사고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잇따른 철도 사고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최연혜 사장은 지난 10월 취임했습니다. '민영화'에 반대했던 최 사장에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을 믿고 헌신하고자 마음먹은 걸까요. 최연혜 사장은 2012년 1월 <조선일보>에 기고한 '국익에 역행하는 고속철도 민간개방'이란 기고문이 다시 알려지면서 180도 바뀐 입장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변신한' 최연혜 사장과 코레일 측은 기관사 300여 명, 열차승무원 200여 명의 신규 채용을 계획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에 맞선 철도노조와 민주노총은 28일 총파업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표변한 최연혜 사장과 국토교통부의 여론몰이를 등에 업은 코레일이 철도노조와 민주노총의 총력 투쟁에 또 어떤 '감성팔이'를 이용할지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