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시간을 넘게 잤는데도 피곤하다. 스마트 폰의 시간은 오후 1시 43분. 침대까지 파고드는 일요일 오후의 햇살은 심술맞도록 눈부시다. 모 언론사에서 주최한 2박 3일간의 기자학교를 마치고 어제 저녁에 집에 도착한 시간이 밤 열 시경. 해병대 캠프를 방불케 하는 꽉 짜인 일정에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되어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맞이한 일요일 오후, 바로 A.A모임이 있는 날이다. 오후 3시에 예정된 모임 시간을 두고 2시까지 고민하다가 결국 차에 오른다.
고민 끝에 모임에 가기로 한 이유는 딱 한가지, 단주 의지를 충전하기 위해서였다. 횟수로 네 번째 나가는 모임. 특별히 새로울 만한 것은 없음에도 발길이 향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멤버들이 들려주는 경험담과 회복의 과정을 듣기 위함이다. 그 시간만으로도 A.A모임의 의미는 충분하다.
아래의 내용은 지난 12월 15일과, 21일 일요일에 참석한 A.A 모임에서 들었던 멤버들의 이야기를 옮긴 것이다. 익명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부디 이분들의 진실되고, 절실한 이야기에 누가 되지 않기 바랄 뿐이다.
"포장마차 발견, 꼬박꼬박 술 마시고 교회에..."
A 선생님은 현재 단주 1년째다. 13개월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A.A모임에 참석하며 단주를 지속하고 있다. 그의 첫 병원 생활 동기는 강제 입원이었는데, 퇴원 후 가족들에게 분노와 원망이 심했다고 한다. 그 후 단주를 결심하고, 종교의 힘에 의지하고자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억지로 병원에 처넣어지고 나자, 술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디다. 3개월 만에 퇴원하고 나서 집 근처에 있는 교회를 찾았지요. 한 두 달은 견딜 수 있었어요. 그러다가 저녁예배 가는 길목에서 포장마차를 발견했습니다. 그때부터 꼬박꼬박 술을 마시고 교회에 가는거라. 그런 날이 몇 번 반복되고 나자 담임목사님께서 다른 신도들에게 피해가 되니 교회에 나오지 말아달라고 정중히 부탁하시더군요. 그리고 나서 얼마 후에 다시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단순하게 종교에 의지해서 술을 끊겠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와 같은 경험은 다른 멤버들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교회나 성당, 절에 다니면서 술 끊기를 기도했던 대부분의 알코올 중독자들은 자신의 믿음과 신의 가호만으로는 단주가 불가능했다고 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물론, 신에게 의지하며 단주의 길에 접어든 사람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분들께는 크나큰 축복임에 틀림없다. 또한, 그분들의 의지 역시 높이 살 만하고 본받을 일이다. 더불어, 알코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가능성은 줄어드는데, 그날 모임에 참여했던 열한 명의 멤버들에게는 불행히도 그러한 기회가 주어지지 못했다.
현재 A선생님은 주로 아이스크림에 의존하며 갈망을 억제하고 있으며(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모임의 멤버들은 사탕이나 캐러멜 등을 거의 입에 달고 산다. 단주 경력이 수 년 넘는 분들에게도 알코올에 대한 갈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증거다), 일주일에 두 세번 정도 모임에 나오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 오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왕복 네 시간의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A.A모임을 통해서만 단주를 지속할 수 있었다며 그 시간과 노력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오후 6시면 불안, 결국 술에 취해 잠이 듭니다"B군은 젊다. 이제 갓 삼십대 초반이나 되었을까? 그의 고민은 조금 남다르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면접이라는 걸 보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는, 면접 때마다 술을 마시고 갔습니다. 남들보다 스펙도 미약하고, 경험도 그다지 많지 않았기에 심리적 압박감이 매우 컸지요. 면접관이 술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하면, 전날 밤의 과음 탓으로 돌렸습니다. 그리고는 술기운을 빌려 과장되게 연극을 합니다."그렇게 어려운 면접을 보고 운좋게 채용이 되고 나서도 문제는 똑같았다. 첫 출근 전날 또 다른 두려움이 찾아오는 것이다. 출근해서 실력이 드러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과 심리적 압박감은 다시금 술을 찾게 만들었다.
"평상시 같으면 술을 절대 안 주죠. 하지만 취업해서 첫 출근한다고 하면 부모님이 술을 사다줍니다. 오후 6시쯤 되면 시계초침 소리에 불안해져요. 그때부터 심장이 떨리기 시작합니다. 소주 한 병 정도 마시고 좀 안정이 되는 듯하다가 밤 10시가 되면 다시 증상이 나타나죠, 그러면 또 한 병... 그렇게 새벽 두세 시까지 마시다가 결국 술에 취해 잠이 듭니다."결과는 참담했다. 출근 시간에 맞춰서 일어나지 못하면, 회사에서 전화가 오고, 집에 급한 일이 생겨서 내일부터 출근하겠습니다, 라고 둘러대지만, 그 날도, 그 다음 날도 동일한 과정은 반복된다. 이틀 정도 지나면 더 이상 회사에서 전화가 오지 않는다. 그리고 나면 자괴감에 다시 술을 찾게 된단다.
B군은 현재 취업한 직장에서 2주째 근무 중이다. 2주간 야간 작업까지 병행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쳐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시간을 내어 A.A 모임에 참석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모임에 나와야만 술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사회 생활에 대한 두려움과 면접에 대한 압박 때문에 술을 마시지는 않는다. 평소 소극적인 성격의 그가 적극적인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길들여진 것이 불행히도 술기운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스펙의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이 느꼈을 패배의식 또한 그를 알코올로 빠져드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의 절규에 가까운 마지막 말이다.
"성인군자가 되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단주하는 것이 아니고, 더 이상 예전처럼 살고 싶지 않아서, 정말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 단주를 하고, 모임에 나옵니다. 알코올 중독자가 저지르는 가장 큰 죄는 남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도 있지만, 내 자신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은 모임에 나오는 것 자체만으로 단주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모임에 나와서 다른 멤버들과 시간을 가짐으로써 술자리를 피할 수 있고, 먼저 단주의 길에 접어든 선배들의 노하우를 공유하게 된다. 또한,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며 단주에 대한 의지를 서로 북돋아준다.
단주 초년병인 필자에게도 A.A모임은 크나큰 힘이 된다. 한 치의 꾸밈이 없는 선배 멤버들의 경험담과 실천의지는 진심을 담은 화살이 되어 나의 알코올에 대한 갈망을 꿰뚫어 놓는다. 계속해서 다른 선생님들의 경험담을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