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통해 전달되는 사건·사고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사건이 발생한 이유가 누군가의 '욕망'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보험금을 노린 살인이든, 욕정을 채우기 위한 성폭행이든 개인의 욕구를 조절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사건의 규모가 더욱 큰 군사반란이나 전쟁도 누군가의 권력욕이나 비뚤어진 신념을 정당화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 태반이지 않던가.
하지만 욕구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또한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쾌감과 복잡한 이중적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는 쾌감을 추구하는 일에 엄청난 시간과 자원을 쏟아붓는다. 쾌감은 우리 삶의 중요한 동기 요인으로, 특히 학습에 필수적이다. 음식, 물, 성적 보상 같은 것들을 찾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유전 물질을 다음 세대에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문 11쪽 중에서)<고삐 풀린 뇌>의 저자인 데이비드 J. 린든은 미국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의 교수다. 이 책은 최근 주목받는 분야인 신경심리학을 흥미로운 실험과 일화를 통해서 쉽게 풀어내며, 획일적인 이야기나 일반화를 하지 않으면서 근거가 확실한 이론들을 언급한다.
연구를 통해 밝혀낸 '쾌감회로'의 실체책은 1953년 어느 가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피터 밀너와 제임스 올즈가 했던 유명한 실험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쥐의 뇌에 전극을 연결하며 자극을 줄 수 있게끔 만든 두 사람은, '쾌감중추'로 불리는 부위의 역할을 발견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버튼을 눌러서 쥐로 하여금 직접 뇌를 자극할 수 있게 만들자, 쥐가 먹고 자는 모든 활동을 제쳐두고 24시간 동안 시간당 평균 2000번씩 버튼을 누르는 일에만 매달리는 충격적인 상황도 목격한다.
이 책에서는 이 쾌감중추를 '신경신호를 촉발하여 뉴런 다발에서 쾌감을 발생시키는 부위'로 정의하면서 '쾌감회로'라고 부른다. 문화인류학의 차원에서 쾌감과 규제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는 대신, 저자는 인간의 쾌감과 관련된 개념과 영향에 관한 생물학적 설명으로 우리의 삶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해부학과 생화학적인 작용의 결과로 뇌 속의 쾌감회로는 우리의 삶을 활성화 시키고,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인류의 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쇼핑·오르가슴·도박·기도·마리화나·인터넷 게임은 물론이고 심지어 스포츠와 학습까지도 모두 이 '쾌감회로'로 불리는 부위의 신경신호를 작동원리의 뿌리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회는 인간의 즐거운 활동을 엄격히 규제한다. 또한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음식·섹스·마약·도박에 탐닉하는 것을 경고한다. 오늘날에는 뇌 스캐너를 통해 인간의 쾌감회로가 어떻게 활성화되는지 관찰할 수 있다. 물론 이 회로는 오르가슴·단 음식과 기름진 음식·금전적 보상·향정신성 약물 같은 '약한' 자극에 의해 활성화된다.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선하다고 여기는 많은 행동들도 비슷한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자발적 운동·여러가지 명상이나 기도·사회적 인정 심지어 자선 기부조차도 모두 인간의 쾌감회로를 활성화시킨다. 신경계에서 선과 악은 하나이며, 우리가 어떤 경로를 취하든지 간에 쾌감은 우리의 나침반이다." (본문 38쪽 중에서)푸짐하게 차려진 음식을 마주했을 때의 기분, 기도할 때 어떤 커다란 존재와 연결되는 듯한 환희의 감정, 사랑하는 사람과의 황홀한 섹스, 주말 아침 운동에서 느끼는 '러너스 하이(달리기에서 고통스러운 순간 뒤에 찾아오는 짜릿함)'도 모두 뇌측전뇌 회로 활성화와 도파민 급증을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행동은 '성취를 통해 쾌감을 얻도록' 구성된 뇌의 회로 배선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런 행위들이 인류를 하루하루 살아가게 만드는 셈이다.
중독은 중독자만의 잘못?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삐 풀린 뇌>는 술과 약물, 도박에 빠진 사람들의 사례를 다루면서 다양한 '중독'의 일화와 실험결과를 설명한다. 최근 크게 늘어나고 있는 '비만'도 그 메커니즘을 들여다보면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쾌감을 얻고 그 보상성에 중독되는 경우에 속한다. 말하자면 '음식 중독'인 것이다. 다른 중독의 경우가 그렇듯이 비만도 성인병 유발과 암 발병, 수면 장애 등 많은 문제점을 낳는다.
더불어 항비만 치료제의 실험과 개발과정도 덧붙인다. 약물 중독과 음식 중독이 뇌에서 유전학·생물학적으로 다른 부분에서 일어나지만, 기초를 공유하고 있기에 약물 중독의 치료가 곧 비만을 개선하는 일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리고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시각도 선사한다. 중독은 단순히 중독된 개인 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의 뇌와 신체가 더 많은 쾌감을 찾도록 설계되어 있고, 중독된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저 뇌의 쾌감중추가 시키는 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했을 뿐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중독을 질병이라고 말하면, 중독자들에게 반사회적인 행동과 선택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게 아닐까? 전혀 그렇지 않다. 중독을 질병으로 보는 모델에 따르면, 중독의 발병은 중독자의 책임이 아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중독에서 회복하는 것은 중독자의 책임이다.우리는 심장병 환자에게 발병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심장병 진단을 받았다면 건강한 식사, 규칙적인 운동, 치료제 복용을 통해 병에서 회복하는 것은 환자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중독이 병이라는 믿음은 중독자에게 회복과 그에 필요한 모든 노력과 책임을 면제해주지 않는다. 회복은 무임승차가 아니기 때문이다." (본문 87쪽 중에서)중독의 개선은 질병을 치료하는 일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이는 최근 한국에서 게임중독을 문제로 삼으며 청소년이나 게임회사를 비난하는 정책과 분위기를 돌아볼 때, 한국정부도 참고할 만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청소년들이 지나친 학구열 때문에 학업 과잉에 시달리다가 게임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사회환경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책에서 중독물질을 단순히 '규제'하기만 하는 것은 금단 증상을 부추길 뿐 직접적인 치료법이 아니라고 지적한 점을 보면 말이다.
쾌감의 미래,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인간과 기계의 경계'에 대한 고찰도 담겨 있다. 저자가 인용한 글에서 유명한 발명가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나노 로봇을 뇌에 심어 세포 차원의 뇌 기능을 들여다보고, 궁극적으로는 뉴런을 조작함으로써 뇌 기능의 모든 양상을 통제하는 미래를 상상했다. 나노 로봇을 도구로 삼아 뇌의 잠재력을 개척해 인간과 기계 사이의 장벽을 허물고, 인간의 모든 기억과 쾌감을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게 되는 세계를 구상한 것이다.
저자인 린든은 커즈와일의 발상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과학계의 발전이란 예측을 벗어나는 일이 잦고, 때로 급격하게 이루어지기도 했던 점을 생각해 보면 앞으로 쾌감을 둘러싼 뇌과학이 어디로 발전할지는 모를 일이다.
더불어 그는 <고삐 풀린 뇌>를 통해서 오늘날 '쾌감'에 대한 중독을 정치계와 사회적인 부분에서 비합리적으로 규제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다가올 '쾌감의 미래'를 고찰한다. 린든은 도덕적 관념이 지나치게 무겁게 잡혀 있다고 지적하며, 사회적인 구제는 거론하지 않으면서 '개인의 의지'를 문제 삼고, 치료보다 처벌을 우선시하는 것도 재고되어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이는 보수적인 사회에서는 다소 반발을 일으킬 주장으로 보이고, 아마 한국에서도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반대 여론이 강할 것 같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욕구에 대한 절제력이 없이 '뇌가 고삐 풀리면' 끔찍한 일이 벌어지곤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누구든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이해할 줄 알아야 하고, 동시에 같은 무게감으로 편견 없이 타인의 욕망도 바라볼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개인의 탐닉은 자유지만, 시인 존 드라이든이 남긴 '쾌감은 인간에게 순순히 주어지지 않으며, 하늘에서 가혹한 이자를 붙여 빌려준다'는 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고삐 풀린 뇌> (데이비드 J. 린든 씀 | 김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3.10. | 1만7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