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는 꽃이 피기 힘들다. 남녘에는 동백이라는 꽃도 있기는 하지만 꽃이 그리운 계절이다. 그러나 꽃이 아니면서도 꽃보다도 더 아름다운 꽃이 있다. 겨울 고산지대에서만 피어나는 눈꽃이다. 산정에 세찬 바람을 맞으며 피어나는 눈꽃을 본 적이 있는가?
겨울에 더 아름다운 산이 있다. 눈꽃으로 유명한 산들이다. 그중에는 덕유산을 손가락으로 꼽는다. 덕유산이 겨울에 인기가 있는 것은 산정까지 곤돌라가 올라가는 것도 한 몫을 한다. 산을 오르기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덕유산에 가면 하얀 눈꽃을 볼 수가 있다. 설천봉 상제루의 얼음궁전은 동화속의 한 장면이다.
겨울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산덕유산을 찾아가는 건 산행만이 아니다. 덕유산은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여행지로 좋다. 애들은 커가면서 산에 가려고 하지 않는다. 애들이 어렸을 때는 같이 등산도 하고 그랬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산에 함께 가려하지 않는다. 속된 말로 머리가 커져서 또래 애들끼리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덕유산 갈까?" "아니요. 약속 있어요.""무슨 약속?""학교 다니느라 힘든데 쉬는 날은 쉬어야지요.""그래. 그럼 스키 타는 것은 어때?"방금 핑계 댄 것 때문인지 바로 대답은 못하고 웃으면서 고민하는 척 한다. 몇 년 전 애들이 어렸을 때 처음 스키장을 데리고 갔다. 그리고 이후로는 가지를 못했다.
덕유산 무주리조트로 향한다. 날씨가 무척 춥다. 이렇게 추운 날에도 스키장에 사람들이 있을까? 그러나 이런 우려는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스키장이 가까워지면서 차들이 막혔다. 신기했다. 산만 좋아하는 우리만의 세상에 너무 갇혀 살았나보다.
스키장 개장은 오전 8시 반이다. 예전에 왔던 기억을 더듬어서 준비를 했다. 먼저 리프트 이용권과 스키를 대여한다. 그리고 옷을 빌린다. 옷을 빌려 갈아입고 사물함에 넣으면 모든 준비 끝. 리프트 이용권과 스키대여료는 특정카드로는 할인이 된다.
개장 시간이라 사람들이 밀려서 옷을 대여하는 데 오래 걸렸다. 애들을 스키장으로 들여보내는데 1시간 정도 걸렸다. 애들은 마냥 즐겁다. 자주 데려오지 못한 게 미안할 정도다. 애들한테 당부를 한다. 절대 위험하게 타지 말라고.
눈꽃으로 아름다운 덕유산서둘러 산행 시작점인 삼공리로 향한다. 스키장에서 삼공리 구천동까지는 8km 정도다. 삼공리 주차장에는 산행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시설지구를 지나 산행을 시작한다. 구천동 계곡을 따라 올라간다. 길은 차가 한 대 다닐 정도의 도로다. 하얀 눈으로 도로 표면은 보이지 않는다.
인월담에서 갈림길이 있다. 칠봉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그 길은 등산객들이 많이 가지 않는다. 도로를 따라가는 길은 지루하다. 계곡은 겨울이지만 물이 흐른다. 가끔 보이는 안내판에는 구천동 33경을 소개한다. 비파담, 사자담 등등. 그러나 눈에 덮인 계곡은 다 똑같아 보인다.
도로로 된 길은 백련사까지 이어진다. 입구에서부터 6㎞를 걸어왔다. 백련사 일주문이 반갑다. 일주문 옆에는 백련사지라는 터가 있다. 예전에 절집이 있었던 자리란다. 백련사는 신라 신문왕 때 백련선사가 숨어 살던 곳에 하얀 연꽃이 솟아나왔다고 전하는 절집이다. 백련사가 있는 구천동도 구천인의 승려들이 도를 닦던 곳이어서 구천동사라는 절집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아쉽게도 지금 절집은 전쟁 이후에 다시 지은 거란다.
일주문을 지나면 계단이 나오고 계단위에는 천왕문이 하늘아래 있다. 천왕문을 지나면 아주 크고 속이 비어있는 배나무를 만난다. 배꽃이 피면 정말 아름답겠다. 다시 계단이 나오고 대웅전이 계단 끝에 자리 잡고 있다. 눈에 덮인 절집은 깔끔하다. 절집 건물 배치도 여유가 있다.
절집을 가로질러 산길로 들어선다. 백련사에서 정상인 향적봉까지는 2.5km다. 이제부터 산길은 가파르게 올라간다. 산길은 눈으로 덮여 아이젠을 하여도 조금씩 미끄러진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건너편 산들이 하얗게 드러난다. 나뭇가지들은 하얀 눈을 대롱처럼 감싸고 있다.
하얀 눈 이외에 아무것도 없는 겨울에도 새들은 부지런히 먹이 활동을 한다. 나무를 감싸고 있는 눈꽃이 점점 커진다. 앙상한 겨울나무는 하얀 옷을 입었다. 주목이나 전나무들은 눈으로 이불을 덮었다. 춥다.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사람들이 걸어가는 등산로는 군 진지처럼 움푹 들어가 있다. 깊이가 1m 정도는 될 것 같다. 산과 맞닿은 능선을 보면서 오른다. 하늘이 파랗게 빛난다. 하늘아래는 하얀 눈이다. 온 세상이 파란색과 하얀색만 남았다. 향적봉대피소에서 올라오는 산행객들은 장엄한 풍경을 연출한다.
향적봉은 덕유산 정상이다. 주목이 많아서 향적봉(香積峰)이라고 불렀다는데, 정상에는 큰 나무가 없다. 주목은 향목(香木)이라고도 불렀단다. 1604m의 높은 산이지만 높게 느껴지지 않는다. 눈 밖에 보이지 않은 산은 바람이 세차다. 온 몸이 시리다.
얼음궁전 설천봉에서의 만남옹기종기 모여 있는 등산객들 사이를 지나 설천봉으로 내려간다. 설천봉까지는 600m다. 설천봉으로 내려가는 길은 하얀 눈들이 나무마다 엉겨서 바람결을 만들고 있다. 길 끝에는 상제루가 얼음궁전처럼 자리를 잡았다. 상제루는 문이 굳게 닫혔다.
설천봉에서는 곤돌라가 운행한다. 많은 사람들이 곤돌라를 타기 위해 긴 줄을 만들었다. 곤돌라를 타려면 1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걸어서 내려가기는 너무 힘들다. 시간도 늦었다. 곤돌라는 오후 4시 반까지 운행한단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온 스키와 보드를 타는 사람들은 멋진 폼을 잡는다. 보는 사람들은 감탄을 한다. 1500m가 넘는 곳에서 아찔한 슬로프를 통통 튀면서 내려가는 모습은 너무 멋지다. 젊음이 부럽다.
애들과 설천봉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만나지 못했다. 리프트는 오후 4시에 멈췄다. 야간개장을 위해 정비를 해야 한단다. 곤돌라를 타고 한참을 내려간다. 편도 9000원이지만 아깝지 않다. 곤돌라가 내려선 곳에는 애들이 기다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 12월 21일 덕유산 풍경입니다.
리프트 이용권(주간권 08:30~16:30 기준) 70,000원(특정 카드 할인 20%)
스키렌탈료 : 33,000원(특정 카드 할인 50%)
의류렌탈료 : 상하의 21,000원(할인 없음)
곤도라 왕복 13,000원 편도 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