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크스바겐 직원들은 빈터코른 회장이 없을때 가끔 그를 '비코(Wico)'라고 부른다. 그는 단순한 회사 상사가 아니다. 그는 독일 최대기업 폴크스바겐을 이끄는 절대군주다."
독일의 유력 주간지인 <슈피겔> 기사 내용이다. 이 잡지는 지난 34호에서 "폴크스바겐이 세계 자동차시장 정복에 나섰다"면서 빈터코른 회장의 제왕적 리더십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올해 나이 66살의 빈터코른 회장. 그는 자동차 왕국 폴크스바겐을 7년째 이끌고 있다. 그의 목표는 2018년까지 폴크스바겐을 세계최대 자동차 회사로 키우는 것이다. 현재는 일본 도요타와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에 간발의 차이로 뒤쳐진 3위다.
폴크스바겐에서 그의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그는 스스로 "내가 모든 것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있다. "폴크스바겐에선 회장이 쳐다보는 곳에 풀이 자란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회장의 마음먹은대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의 독재가 가능할수 있었던 것은 그의 뛰어난 전문성과 성과 때문이다.
"폴크스바겐에선 회장이 쳐다보는 곳에 풀이 난다"빈터코른은 대학에서 금속공학과 금속물리학을 전공했다. 폴크스바겐에서 품질보증 업무를 오래동안 맡아온 그의 유일한 철학은 품질제일주의다. 소비자들이 차를 고를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품질이고, 자동차 품질을 좌우하는 것은 작은 부품과 디테일에 있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슈피겔>에 따르면 그의 품질에 대한 집착은 거의 광적(狂的)이다. 지난 여름 미국 뉴저지주에서 폴크스바겐의 미국시장 전략차에 대한 최종 테스트가 있었다. 빈터코른 회장은 이 자리에서 골프를 비롯해 파사트, 비틀 등 자신들의 자동차 뿐 아니라 경쟁사들의 차까지 몰아놓고 꼼꼼하게 비교했다.
멕시코에서 생산된 '비틀'의 외형을 살펴보던 그는 "이게 뭐야" 라며 갑자기 소리를 쳤다. 자동차 앞 보닛의 가장자리 은색 도장이 다른 데보다 두꺼웠던 것이다. 그는 곧장 비서로부터 가방을 넘겨받아 가느다란 핀을 꺼냈다. 이 핀을 보닛에 대고 누른 후 측정기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리고 "180 미크론! 이런, 이런...."이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1미크론은 1천분의 1밀리미터(mm)다. 차체 도장은 120미크론이면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1천분의 1밀리미터'까지 회장이 직접 챙기고 있는 것이다.
디트마어 하브라네크 <슈피겔>기자는 "폴크스바겐 제국은 시스템이 아닌 두사람의 권위에 기대어 유지된다"고 적었다. 빈터코른 회장과 폴크스바겐 창업주의 손자인 피에히 감독이사회 의장이다. 그의 올해 나이 76살. 하지만 그는 여전히 건재하다.
지난 9월 프랑크푸르트 인근 대형콘서트홀. 이곳에서 '폴크스바겐 나이트(Volkswagen Night)' 행사가 열렸다. 2년마다 열리는 프랑크푸르트모터쇼 바로 전날에 열리는 이 행사에는 그룹에 속해있는 전세계 12개 자동차 브랜드 대표와 미디어 관계자 등이 참석한다. 그룹 주요 경영자들이 나와 신차 소개와 함께 향후 사업계획도 내놓는다.
폴크스바겐의 제국을 이끄는 두사람, 빈터코른과 피에히
빈터코른 회장 뿐 아니라 피에히 의장도 참석한다. 빈터코른 회장이 '헤르(영어로 미스터 Mr.) 피에히'라고 소개하자, 무대위에 설치된 3개의 대형 화면에 그의 모습이 비춰진다. 피에히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박수로 그를 맞는다. 사실상 폴크스바겐 제국을 건설한 사람이다. 폴크스바겐에선 피에히가 무대 뒤에서 일을 꾸미면, 빈터코른이 무대 위에서 처리한다는 말까지 있다.
폴크스바겐 제국을 이끄는 이들을 제어할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있다. 그것도 법적으로 말이다. 폴크스바겐의 노동자평의회 의장인 베른트 오스터로다. 그의 힘은 바로 감독이사회에서 나온다. 독일 기업에서 기업의 이사회는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경영이사회와 감독이사회다. 경영이사회가 주로 이사의 임명과 해임 등 경영진 감독,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반면 감독이사회는 기업의 장기전략이나 인수합병 등 중요한 의사결정에 대한 사전 승인 또는 사후 보고를 받는 역할을 한다.
독일은 이미 법으로 기업의 이사회에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하고 있다. 기업의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이사회에서 노사 양쪽이 절반씩 참여한다. 폴크스바겐도 마찬가지다. 폴크스바겐 노동자평의회 대변인 조르크 괴터씨는 "감독이사회 20명 가운데 회사쪽은 10명, 노동자 대표도 10명씩 구성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감독이사회에 결정하는 주요 사안에 대해 노동자의 대표가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이는 빈터코른 회장도 인정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감독이사회의 규정에는 회사가 새로운 공장을 짓기 위해선 이사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도록 돼 있다. 빈터코른 회장이나 창업주인 피에히 의장도 노동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특히 회사쪽 대표 가운데 볼크스부르크가 속해있는 니더작센주(州)에서 2명이 파견된다. 왜냐하면 니더작센주가 폴크스바겐의 주식 20%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경영참여는 민주주의 실현...폴크스바겐의 경쟁력도 여기서 나온다"
독일 금속노조 니더작센주의 하노버 지부 우에 스토르레젠씨는 "폴크스바겐 (감독)이사회는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해 그동안 노력을 해왔다고 평가한다"면서 "니더작센주에서 파견돼 있는 인사들이 노동자의 대표들이 반대하는 의사결정을 하기란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회 선거 등에서 노동자가 다수인 지역적 특성을 감안할수 밖에 없다는 것. 결국 폴크스바겐 감독이사회는 절반이상이 노동자에 우호적인 인사로 구성돼 있는 셈이다.
조르크 괴터 대변인은 "노동자의 경영참여는 민주주의 실현"이라며 "폴크스바겐이 그동안 여러 위기를 넘겨오면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을 느끼면서 일하는 것이 과연 회사나 국가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하노버에서 만난 우에씨에게 '한국에선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본다'고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기업인들 입장에선 그럴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독일에서도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두고 논쟁이 있었다"면서 "동독과 통일이후에는 상대적으로 임금이 싼 동독지역의 노동력을 쓰기 위해 노사간 갈등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우에 대변인은 이어 "하지만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기업과 노조, 그리고 정부까지 서로 고통분담과 양보, 타협과 설득을 통해 공동결정제도를 유지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경영학부)는 "지난 1998년 우리나라 현대차에서도 폴크스바겐과 유사한 상황에 있었다"면서 "현대차는 노동자 3분의 1을 감축하려했고 노조는 파업과 농성 등으로 맞섰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노사관계는 정리해고 또는 각종 정책에 따른 노조의 반발, 파업으로 이어진다"면서 "회사는 무급휴직과 민형사 고소 고발 등으로 사회적비용과 후유증이 너무 크다"고 전했다.
강 교수는 이어 "폴크스바겐 사례 등을 비춰볼때 노동자를 배제하는 것보다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통해 경영 혁신을 추구하면 만족도와 효율성이 동시에 높아질수 있다"고 말했다. 노동을 단순한 비용이나 손실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투자와 자산이라는 생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독일 볼프스부르크와 하노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항상 듣고 느끼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