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주요 일간지 1면에 국토교통부(아래 국토부)가 낸 큼지막한 광고가 일제히 실렸다. 정부 부처 명의로 낸 광고이니 막대한 국민 세금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모두 468자에 이르는 광고 문구 중에 '국민'이라는 말이 9번이나 들어갔다. '국민의 발이 묶여 있습니다', '국민 세금', '국민 부담'(두 번 나온다.), '국민을 볼모로 한 파업', '국민여러분'(세 번이나 나온다.), '국민만을 바라보며' 등이었다. 애오라지 '국민'만 바라보는 간절한 '호소'였다.
그런데 구구절절 '국민'만을 위하는 국토부의 목소리에서 분노만 느껴지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국토부 광고는 먼저 수서발 케이티엑스(KTX) 자회사 설립이 국민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위해 철도공사의 부채와 영업 적자, 이에 따른 국민 세금 지원에 관한 내용을 언급했다. 독일와 프랑스, 일본 등이 경쟁시스템을 도입해 철도 경영혁신을 이루어냈다는 이야기도 써놓았다.
국토부 광고의 두 번째 '호소'는 독점적 기득권 유지를 위한 불법파업이 즉시 종료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철도노조의 연평균 임금을 들먹이면서 만성적자 속에서도 인건비 인상을 계속해 왔다고 말하고 있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교묘한 말장난을 통한 국민 현혹하기다. 기관사 출신 철도노동자가 쓴 <철도의 눈물>을 따라 국토부 광고가 호도한 '진실'을 찾아가보자.
독일의 공공 모델은 과연 무엇인가
현재 국토부는 우리나라 철도 개혁을 독일의 공공 모델을 따라 추진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독일 모델은 과연 무엇인가. 1990년, 독일은 사영화를 전제로 주식을 발행하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적절한 시기를 봐서 지주회사의 주식을 매각하여 사영화를 완성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독일은 실제 2008년에 그 일부 주식을 매각해 사영화 수순을 밟으려고 했다.
하지만 주식 매각은 미국발로 터진 국제 금융 위기의 여파가 갑작스럽게 밀어닥치면서 실패하게 되었다. 독일 최대 환경 단체인 분트(BUND)의 교통정책과장으로 있는 베르너 레(Werner Reh) 박사는 그때의 주식 매각 실패가 독일에서 '행복한 실패'로 불리고 있다고 말한다. 레 박사에 따르면, 현재 독일에서는 정부나 정치권, 시민사회 모두 철도 사영화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행복한 실패' 이후 독일에서는 감히 사영화를 다시 추진하자고 말하는 이가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독일 철도 모델을 '경쟁 체제'로 보는 한국 정부의 주장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나라 정부는 국유 공기업인 코레일이 자회사를 설립해 운영하도록 하는 것을 공공성을 갖춘 독일 모델에 따른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상은 모회사(코레일)와 자회사(수서발 케이티엑스 주식회사)의 고속철도가 서로 경쟁하는 방식이다. 정부 스스로도 그런 '경쟁 체제'를 공공연히 말한다. '공공성을 갖춘 독일 모델'이 어떻게 '경쟁 체제'가 될 수 있다는 말일까. 그나저나 진짜 독일식 모델은 무엇일까.
레 박사에 따르면, 코레일과 독일의 도이체반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독일에서는 2006~2007년, 자회사 가운데 기반 시설을 담당하던 회사 일부를 사영화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으나 시민단체, 환경단체, 노조 등의 반대로 실패했다. 하지만 지주회사인 독일 철도가 여러 분야를 자회사로 분리해 물류 회사, 장거리 운행 회사 등을 만들어 놓음으로써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게 되었다. 도움을 요청하는 승객에게 직원이 '우리 회사 일이 아니다'고 말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완하기 위해 여러 자회사들이 중복 투자를 하게 되면 결국 비용 낭비로 재정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2006~2007년 사이에 독일에서 있었던 사영화 실패는 예견된 것이었다. 자회사들의 중복 투자는 비용 대비 효율을 떨어뜨리는 문제를 가져왔다. 효율적인 재투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열차 운행 시간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결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독일에서는 언제든지 사영화가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지금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단지 정치적인 문제 때문일 뿐이다. 철도 사영화를 정치적으로 찬성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결국 수서발 케이티엑스 자회사 설립을 경쟁 체제 도입으로 말하는 정부의 논리 자체가 모순이다. 왜 그런가. 수서발 케이티엑스 자회사가 코레일의 진짜 경쟁 상대가 되려면 지금과 같은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먼저 그 자신의 자본금으로 레일을 깔아야 한다. 시스템을 관리하는 관제본부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 모두가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야 하는 대규모 인프라 사업이다.
독일의 경쟁시스템이 철도 경영 혁신 이뤄냈다고? 진실은...실제로는 어떤가 보자. 수서발 케이티엑스 자회사는 모회사인 코레일로부터 면허를 발급받아 누워 떡 먹기 사업을 시작한다. 모회사가 자본금까지 대준다. 주식을 발행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부채에 대한 부담은 먼 나라 얘기다. 그런 자회사가 모회사와 경쟁한다고 한다. 경쟁이라는 말 자체가 적용될 수 없는 상황이다. 백 번 양보해 경쟁이라고 하더라도 불공정 경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모회사의 등골을 빼먹어 쌩쌩한 자회사가 힘을 빼앗겨 쓰러지기 직전인 모회사보다 백 미터, 아니 천 미터 앞에서 달려 나가는 경쟁이다. 이런 것도 경쟁이라고 해야 하나.
수서발 케이티엑스 자회사를 주식회사 형태로 하는 것은 문제가 없을까. 정부가 철도회사를 새로 만들어 주식을 발행해 판다면 누가 살까. 투기성 강한 외국 자본이 들어올 개연성이 크다. 실제 독일에서도 2006~2008년 사이의 철도 사유화 논쟁 과정에서 러시아 재벌 자본이 독일 철도 자회사 지분을 인수하려 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주식은 주주의 뜻을 따라가는 게 주주자본주의의 불문율이다. 이윤을 남기려는 목적으로 주식을 팔게 되면, 주주들은 당연히 더 많은 이윤을 요구하게 된다. 그때 철도의 공공성은 여지없이 사라진다.
국토부는 광고에서 독일의 경쟁시스템이 철도 경영 혁신을 이뤄냈다고 말했다. 경영 개선을 통해 돈을 더 많이 벌게 되었다는 말일 터.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독일 철도가 1990년대 이전의 적자 경영 상태에서 벗어나 흑자를 달성하게 되었다는 발표가 있긴 하다. 하지만 레 박사에 따르면, 독일 철도의 흑자는 구조적인 성과에 힘입은 것이다.
먼저 독일 정부가 철도 부채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둘째로 독일 철도가 내고 있는 현재의 흑자 이윤은 운송 사업에서가 아니라 네트워크 운영을 통해서 벌어들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가령 프랑스 철도가 독일 네트워크를 이용하게 되면 돈을 지불한다. 하지만 휴전선 이남에만 국한되어 있는 한국 철도에서는 독일과 같은 네트워크를 운영할 수 없다. 네트워크를 통해 흑자 수익을 내는 현재의 독일 모델이 한국에 흑자 이윤을 가져다 준다는 보장이 없다는 말이다.
다음은 만성적자의 문제. 국토부 광고는 철도공사의 부채를 17조6천억 원으로, 매년 영업 적자를 평균 5천700억 원으로 뽑아 놓았다. 국민들 앞에 철도공사('코레일'이 아니다. 그렇게 영어 좋아하는 대한민국 공무원들이 '코레일'이 아니라 '철도공사'를 쓰는 이유가 뭘까.)의 부채와 적자를 들이미는 국토부의 논리는 뻔하다. 철도산업의 부실 경영을 부풀림으로써 경쟁과 효율, 나아가 사영화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한국 철도산업의 부실 경영은 어디서 비롯됐나
그런데 생각해 보자. 철도산업의 부실 경영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국토부 광고에서처럼, 만성적자 속에서도 계속된 인건비 상승 때문일까. 그렇다면 인건비를 줄이면 적자 상태가 해소되기라도 한다는 말일까. 부실 경영의 일차적인 책임은 철도노조의 노동자들이 아니라 경영을 맡은 낙하산 사장들이나 그 휘하의 간부들이 먼저 지는 게 자연스러운 순서 아닌가.
사실 철도산업의 적자는 세심하게 따져봐야 한다. 현재 한국 철도는 고속철도 부문만 흑자를 내고 있다. 일반철도 분야는 적자 상태다. 그런데 일반철도의 적자는 정부의 공익서비스 의무(Public Service Obligation, PSO; 국가정책 또는 공공 목적 등을 위해 정부가 보상하는 서비스로, 장애인·노인 등의 운임 할인, 벽지 노선·특수목적 지원 등이 포함된다.) 보상 제도에 따른 보조금 미지급, 원가에 못 미치는 요금 등 다양한 원인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가령 세계 어디서나 정부가 의무적으로 제공하는 PSO를 우리나라 정부는 매해 천억 원 단위 이상으로 지급하지 않고 있다. 그것도 2008년 1600억 원, 2009년 1700억 원, 2010년 1005억 원 등으로 꾸준히 상승해 왔다.
만성적자 문제를 노동자들의 인건비에서 찾는 행태는 야비하기만 하다. 코레일 노동자들은 오랫동안 인력이 충원되지 않아 평균 연령이 상당히 높다. 코레일 임직원들의 평균연령은 40대 중반을 넘었다. 평균 근속연수도 19년에 이른다. 연봉 절대액이 높아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상황에서도 연봉액 서열은 정부 산하 공기업에서 하위권에 속한다. 임금 인상도 정부 가이드라인을 벗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노조가 독점적인 기득권을 유지한다며 몰아세우는 이 나라 정부는 도대체 어느 나라 노동자를 위해 존재할까. 단언컨대, 한국 정부는 철도노조 조합원들의 연평균 임금이 4천만 원 대에 있더라도 이와 똑같은 논리를 펼 것이다. 철도노조는 연평균 임금이 4천만 원대 규모로 만성적자 속에서도 인건비 인상을 운운하면서 말이다. 참으로 비열하다.
열차는 정해진 철로 위를 달린다. 달리는 곳을 잘 알기 때문에 크게 어긋날 우려가 없다. 문제가 생기면 제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정부는 도로를 질주하는 망나니의 스포츠카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사영화가 아니라고 힘주어 말하는 정부의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 까닭이다. '어머니의 뼈아픈 심정'을 운운하다가 대화하는 기척을 잠깐 보여준 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더욱 가관이다. 자식을 상대로 겁박을 일삼는 최 사장은 도대체 어떤 '어머니'인가. 자식에게 '최후통첩'을 내리는 최 사장은 무서운 '가짜 새엄마'일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