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작은 특징 하나가 때때로 그 사람을 기억나게 한다. 도시나 마을도 마찬가지. 어처구니없는 기억 한 조각이나 사소한 풍경 하나가 그때를 불러낸다. 때론 부분이 전체보다 힘이 세다. 그런 조각들로 도시를 여행하려 한다. - 기자 말

 못생긴 생선으로 유명한 겨울생선 곰치. 삼척과 동해 지역에 가면 이런 사진을 붙이고 곰칫국을 파는 식당이 많다.
못생긴 생선으로 유명한 겨울생선 곰치. 삼척과 동해 지역에 가면 이런 사진을 붙이고 곰칫국을 파는 식당이 많다. ⓒ 김대홍

정확히 1년 전인 2013년 1월 중순, 아주 바빴던 하루가 있었다. 동해안 곰칫국을 다뤄 달라는 한 잡지사의 의뢰전화를 받고서였다. 일정이 빠듯했고, 하루 만에 경남 창녕에서 강원도 동해와 삼척 일대까지 다녀와야 했다. 왕복거리는 대략 800km. 아침 7시30분에 집을 나섰다.

거리를 보니 무리하면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경상북도 영주를 지나자 미처 몰랐던 진실을 알게 됐다. 영주를 지나 봉화에서부터는 국도로 접어들었다. 그 거리가 130km. 국도 130km를 그때는 만만하게 생각했다. 내비게이션에 남은 시간으로 2시간 40분이 찍히자 기계가 추위에 고장난 줄 알았다. 잠시 뒤 산길에 접어들자 길은 창자처럼 꼬불꼬불 휘어졌다. 게다가 눈으로 덮인 길. 1분도 쉬지 않고 달렸건만 삼척중앙시장에 닿은 시간은 정각 낮 12시였다.

벌써부터 내려갈 일이 걱정이었다. 이튿날에도 일이 있어 무조건 당일 복귀해야만 했다. 도대체 곰치란 녀석이 어떻게 생긴 녀석인지 빨리 확인하고 식당을 찾아갈 계획이었다. 아주 못생겼다는 건 미리 파악한 정보였다.

수산시장에 들어서니 특별히 한 생선이 눈에 띄었다. 배는 볼록한데다 길이가 짧아 생선들 사이에서 도드라졌다. 게다가 모든 좌판마다 깔려 있었다. 이 때 가장 많이 나는 생선인 듯했다.

"혹시 이 생선이 뭐예요?"
"그건 뚝지. 맛있어요."

 곰칫국을 파는 식당 여러 곳을 뒤졌지만 이른 아침 모두 팔리고 없었다.
곰칫국을 파는 식당 여러 곳을 뒤졌지만 이른 아침 모두 팔리고 없었다. ⓒ 김대홍
도치란 생선이었다. 겨울이 제철이며 아주 맛있다는 평이었다. 아귀, 곰치와 함께 못난이 생선으로 유명하단다. 일단 곰치 찾기는 실패. 도치는 파악했으니 다른 못생긴 생선이 보일 때마다 "곰치 있어요"를 물으며 기웃거렸다. 그 모습이 딱해 보였는지 한 상인이 입을 뗐다.

"곰치 없어요. 안 들어와요."

이유를 물었더니 놀랄 만한 답이 돌아왔다.

"아유... 요즘 한 마리 10만 원이 넘어요."

깜짝 놀랄 액수였다. 배에서 내리는 건 죄다 곧장 식당으로 간단다. 정라항 쪽에 식당들이 몰려 있단다. 곧장 차를 돌려 정라항으로 갔다.

말한 대로 식당마다 대문에 곰칫국 메뉴가 들어 있다. 몇 군데는 '곰칫국 없음'이라고 내걸었다. 오래된 분위기를 풍기는 식당문을 열고 들어섰다.

"곰칫국 됩니까?"
"곰칫국 없는데요. 대구 드세요. 싱싱해요."

이런. 첫 집에서 또 허탕이다. 다른 집을 방문해서 자세히 사정을 들었다. 요즘 곰치가 안 잡힌단다. 하긴 곰치 어획량이 절반으로 '뚝' 줄었다는 신문기사를 보긴 했다. 식당마다 하루 2~3마리 정도 들어온단다. 아침에 다 동이 난단다. 2~3만 원 하던 곰치가 7~8만 원으로 뛰었단다. 놀란 표정을 지었더니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투로 덧붙인다.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예요. 열배나 뛸 때도 있는데요."

몇 군데 식당을 더 돌았지만 정라항에서도 곰치를 파는 곳은 없었다. 난감해졌다. 겨울생선이라면 몇 가지가 더 있긴 하다. 도루묵도 있고, 도치도 있다. 긴 한숨을 내쉬는 내게 한 식당 점원이 제안을 한다.

"물메기 드세요. 좀 작긴 하지만 겉보기엔 거의 비슷해요."

일부 지방에서 곰치와 물메기를 똑같이 취급하기도 하지만 삼척 사람들은 둘을 엄격하게 구분했다. 크기나 맛이 차이난다는 설명이었다.

 물메기국. 곰칫국처럼 김치를 넣고 시원하게 끓인다. 문외한이 보기에는 이걸 곰칫국이라고 내놓아도 분간하기 힘들 것이다.
물메기국. 곰칫국처럼 김치를 넣고 시원하게 끓인다. 문외한이 보기에는 이걸 곰칫국이라고 내놓아도 분간하기 힘들 것이다. ⓒ 김대홍

아쉬운 마음에 인근 동해시 쪽으로 다시 한 번 길을 나섰다. 곰치로 가장 유명한 곳은 삼척과 동해다. 동해 묵호항 쪽에 있는 중앙시장을 찾았다. 예상했던 대로 동해중앙시장에서도 곰치는 한 마리도 없었다.

긴 메기처럼 생긴 생선이 있어 혹시 곰치가 아닐까 싶어 물어보니 장치란다. 곰치 없냐고 물어보면서 다니니 한 상인이 넌지시 말을 건넨다.

"지금은 생태가 제일 맛있어요. 두 마리 사세요. 1만 원이예요."

포기하고 촛대바위 쪽으로 갔다. 정라항보다 더 많은 곰칫국 식당들이 있었다. 날은 이미 저물었다. 기대를 하진 않고 한 식당 문을 두드렸다.

"혹시 곰칫국 하나요?"
"그럼요. 그런데 지난주부터 값이 올랐어요. 1만2000원에서 1만5000원으로요."

곰칫국을 찾아 종일 찾아 헤맨 여행은 이렇게 허무하게 결론이 났다. 이제는 다시 밤길을 달려 창녕으로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처음부터 이리로 올 것을.

이렇게 취재한 글은 아쉽게도 실리지 못했다. 그 달 공교롭게도 잡지가 폐간됐기 때문이다. 곰칫국도 먹지 못 했고, 글도 미아 신세가 됐다. 그 덕분인지 이 계절 삼척이나 동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곰치다. 삼척, 동해, 곰치는 3종 세트처럼 기억 속 낙인으로 남았다. 그나저나 날 잡아서 곰칫국이나 한 번 먹으러 갈까나.

 김복녀씨. 함께 사는 개를 꼭 안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복녀씨. 함께 사는 개를 꼭 안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 김대홍
칠형제횟집은 곰치를 잘하는 집으로 지역에서는 꽤 유명하다. 90년에 식당을 연 뒤, 2008년 곰칫국을 시작했다. 곰칫국 바람이 '솔솔' 불 무렵이다. 지금은 아예 광풍 수준이다. 5년 전 6000원 하던 곰칫국이 7000원, 1만 원, 1만200원을 거쳐 이젠 1만5000원까지 올랐다. 엄청난 가격 폭등이다. 공급이 수요를 전혀 뒤따르지 못한다.

칠형제횟집 김복녀(65) 사장은 "그 전엔 내버리던 생선"이라며 웃는다. 곰칫국이 유명세를 타다 보니 이젠 멀리서도 많이 온단다. 서울, 경기도는 물론 제주도에서도 비행기를 타고 찾아온다고.

점심 때 물메기국을 먹었다고 하니 안타까워 하면서 곰칫국과 차이를 설명해준다. 일단 크기면에서 곰치가 물메기보다 훨씬 크다. 국을 끓였을 때 물메기에 비해 뼈가 훨씬 더 무른 것도 차이점이다. 김치를 넣고 끓였을 때 국물 맛도 곰치가 더 시원하단다. 한마디로 수준차이가 난다는 뜻.

곰칫국은 별다른 양념 없이 곰치와 신김치만 넣고 끓이기 때문에 신선함이 비결이다. 무른 살 때문에 냉동을 할 수 없어 3~4일이 지나면 먹을 수가 없다. 애(내장)가 살짝 들어가면 국이 더 맛있어진단다.

회로도 먹을 수 있다는 건 전혀 몰랐던 정보다. 식초와 막걸리로 버무려 회를 먹는다는데 맛이 좋다는 설명이다. 말려서 찜으로 먹어도 별미라 한다. 찜은 언제 먹을 수 있는지 물었더니 "곰치가 없어서 난린데 말릴 틈이 어디 있느냐"면서 먹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시간이 지나면서 곰칫국 만드는 법도 조금 달라졌다는 게 김복녀씨의 설명이다. 원래는 껍질채 끓였는데, 요즘은 껍질을 벗겨서 은색살이 보이게 끓인다고.



#곰치#곰치국#물메기#삼척#동해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