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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히든 싱어> 화면 캡쳐
김광석<히든 싱어> 화면 캡쳐 ⓒ 곽동운

'예능 프로그램 하는 거 좋은데, 김광석 이름 팔아서 먹칠은 하지 마라. 제발 부탁이다!'

그렇게 방송이 시작될 때는 달갑지 않은 시선을 보냈답니다. 사실 <히든싱어2 김광석>을 본 것도 우연이었습니다. <히든싱어>가 방영되는 시간인 토요일 밤 11시경에는 저는 항상 잉글랜드 프리미엄리그를 시청했었으니까요. 12월 28일에는 카디프시티의 김보경과 선더랜드의 기성용이 맞붙는 '코리안 더비'를 보려고 TV앞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확인을 해보니 '코리안 더비'는 다음날 새벽 2시경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일 없이 리모컨을 돌리다가 채널 15번에서 잠시 멈췄답니다.

# 김광석이라는 이름 때문에 종편을 보게 됐다!

평소에는 종편 채널이 몰려있는 번호대를 그냥 뜀뛰기 하듯 넘어갔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날만큼은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몰입을 하고 보게 됐답니다. <히든싱어>가 방영되는 JTBC가 요즘 변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 태생적 한계 때문에 눈이 잘 가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예능 프로그램라면 더욱더 눈을 거둘 수밖에요. 그러나 김광석이라는 이름 석 자 앞에서는 그런 원칙도 우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히든싱어>는 원곡을 부른 가수와 여러명의 모창가수가 서로 경쟁을 하는 독특한 구조의 프로그램입니다. 무대에는 장막으로 가려진 방이 여러 개가 있는데 오리지널 가수와 모창가수들이 각 방에서 한 소절씩 원곡을 부르는 식으로 방송이 진행됩니다. 예를 들어 '조용필'편은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간주가 나오는데 오리지널 가수인 조용필은 3번 방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럼 1번, 2번 방에 들어간 모창가수들은 최대한 오리지널 가수처럼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부를 것입니다.

워낙 모창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참가했기 때문에 패널들이나 방청객들은 오리지널 가수가 3번인지, 1번인지 혹은 2번인지 혼돈스러워 합니다. 그래서 '신승훈'편에서는 모창 가수가 오리지널 가수를 이기는 진기한 장면까지 생성됐다고 합니다.

'김광석'편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워낙 출중한 모창 실력을 가진 지원자들이라 그런지 마치 故김광석이 실제 무대에서 직접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날 정도였습니다. 김광석의 오랜친구인 김창기, 한동준도 번호를 잘못 누를 정도였으니까요. 

그럼 1996년 1월에 저 먼 곳으로 가신이가 어떻게 <히든싱어> 무대에 설 수 있었을까요? 김광석의 앨범에서 음원을 추출하는 방법을 썼다고 합니다. 김광석의 앨범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제작되어 있어 음원 추출이 수월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음원은 뽑아내졌고 가신이도 2013년 <히든싱어>의 대미를 장식하는 자신의 무대에 당당히 설 수 있게 됐답니다.

하지만 가신이의 빈자리는 크더군요. 자신의 방문이 열리면 마이크를 잡고 서서히 무대 중앙으로 향하는 모창가수들과는 달리 오리지널 가수 방은 휑하게 비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무척 쓸쓸하고 아쉬웠습니다. 차라리 가신이의 사진이라도 그 방에 걸어주셨으면 덜 쓸쓸했을 텐데요.

히든싱어 <히든싱어> JTBC 홈페이지 캡쳐
히든싱어<히든싱어> JTBC 홈페이지 캡쳐 ⓒ 곽동운

# 광석이형의 음성은 따뜻한 격려와 위로였다네!

저는 故김광석씨를 광석이형이라고 부릅니다. 친형도 아니고 동네 선배형도 아닌데 그렇게 부릅니다. 이렇게 '친한척'을 하지만 광석이형의 제대로 된 매력을 알게 된 건 형이 저 먼 곳으로 간 이후부터였습니다. 방송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던 참가자 분은 광석이형의 죽음을 군대 전역 즈음에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 분은 큰 충격에 빠져 광석이형의 앨범을 다 불태워버렸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 비보를 군대시절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큰 느낌은 없었습니다. 그저 좋은 가수가 한 명 먼저 갔구나,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 이후 시간이 흘렀고, 저도 나이를 먹어갔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이 녹녹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언가가 '점점 더 멀어져 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럴수록 광석이형의 음성은 따뜻한 격려로 들렸고, 저는 그 따뜻한 위로 속에서 단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광석이형의 노래는 점점 더 제 귀에서 떨어지지 않게 되었답니다.

옷 벗기 경쟁에 나선 걸그룹의 음악들에서는 국적 불명의 억센 향수 냄새가 나지만 좋은 음악은 들으면 들을수록 싱그러운 향기가 납니다. 그 향기는 추억이라는 바람을 타고 널리널리 퍼져 나갑니다. 그 향기를 맡은 사람들은 하나의 공통된 기억으로 묶이게 됩니다.
'김광석 편'에 나왔던 모창 가수들도 저처럼 기억의 한 구석에 광석이형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상금을 받으면 광석이형의 웃음 짓는 동상을 만드는데 쓰고 싶다는 지원자, 감수성이 많았던 청소년 시기를 광석이형의 노래로 잘 이겨냈다는 지원자... 모두다 한결같이 광석이형의 노래로 인해 '좋은 향기'를 맡았던 것 같습니다.

# 변호인에서 참은 눈물, 광석이형 보고 쏟아냈다!

저도 그 향기를 맡았습니다. 그러니 주르르 눈물이 흐르더군요. 특히 마지막 부분인 <서른 즈음>이 흘러나왔을 때는 좀 더 크게 훌쩍였습니다. 저는 영화 <변호인>을 보면서도 눈물을 참았답니다. 주위에 사람들도 많았고 일부러 제가 감정을 억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종편에서 방영하는 예능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눈물이 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사실 저는 <변호인>에서 통쾌한 느낌을 받았답니다. 극중 송우석 변호사가 고문 경찰인 차동명에게 큰 소리로 윽박지르는 부분에서 쾌감을 느꼈으니까요. 하지만 광석이형의 목소리에서 흘러나오는 이 대목에서는 그저 눈물만 나올 뿐이었습니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그러다 <서른 즈음> 나머지 부분을 따라 부르며 한심했던 제 30대를 되돌아봤습니다. 어설펐고, 그래서 욕 먹었고, 그것 때문에 아팠고. 하지만 그것보다 배신당했다는 것에 더 가슴이 쓰렸고... 생각해보니 제 30대는 그저 어둡게만 채색된 것 같습니다. 지울 수 있으면 그 시기를 지우고 싶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겠죠.

그렇게 어두웠던 제 30대도 이제 이틀 정도가 남았습니다. 이제 '서른 즈음'이 '마흔 즈음'으로 바뀔 때가 됐네요. 제 '서른 즈음'이 한심하고, 답답했다면 제 '마흔 즈음'은 활기차고 건강하게 보내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어두침침한 방에서 엎퍼져 있지 말고 봄볕을 맞은 새싹들처럼 기운차게 '일어나'야겠지요! 광석이형의 <일어나>처럼요!

'~일어나, 일어나 봄에 새싹들처럼!' 

덧붙이는 글 | 제 다음 블로그에도 게재를 합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김광석#히든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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