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일까?
무슨 무슨 기념일이라든지, 새해라든지, 심지어는 내 생일도 별다른 날이 아니다 싶어 챙기질 않았다. 물론, 내가 무심하다고 남들도 무심하지는 않을 터이기에 다른 가족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은 챙겼다. 새해가 되면 마치 오늘 맞이한 것과는 전혀 다른 천지개벽 한 세상이 올 것처럼 호들갑 떠는 일들에 무관심해진 지 오래다.
매일매일 내 삶에서 처음 만나는 날이니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살자'는 것이 내 삶의 신조다. 물론, 매사에 그렇게 살아가느냐 묻는다면,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할 뿐'이라고 답한다. 어떤 날은 그러하고 또 어떤 날들은 무심결에 보내기도 하고, 어서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날도 있으니까.
그런데 2014년엔 새해라는 핑계를 대면서라도 몇 가지 계획해야 할 일들이 있다. 그냥 데면데면 다가오는 새해가 아니라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격랑의 2014년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냥 하루하루에 파묻혀 살다가는 내 삶의 중요한 순간들을 다 놓치고 내년 이맘때 더 늙어버린 노구를 바라보며 한숨 쉴 일밖에 남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작심삼일의 무모한 계획이 아니라, 2014년을 보람 있는 한 해로 만들 수 있는 계획들을 세워본다.
가장 먼저, 건강을 위해 규칙적인 운동을 할 것이다.
반세기 이상 살아온 몸, 여기저기서 나도 모르게 "끙!" 소리가 날 만큼의 신호를 보내고 있는 요즘이다. '나라 꼴이 이 모양인데 운동은 무슨?' 하는 핑계로 몸 관리에 소홀했더니 몸만 망가지는 게 아니라 그 몸에 기댄 마음도 허약해졌다.
장수하는 집안의 내력과 초고령화 사회에 편승했을 때, 노년의 삶을 준비하지 않았다가는 낭패일 것 같다. 맑은 정신을 가지고, 살아있는 동안 의미 있는 일을 하려면 건강이 기본이기에 새해에는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팔다리 근육이라도 좀 늘려놔야겠다.
둘째, 격랑의 현장을 사진으로 담아낼 것이다.
살아가면서 지금도 후회하는 것 중 하나는 1980년대 대학 시절, 민주화운동의 현장에 있었으면서도 그것을 사진으로 담아내지 못한 것이다. 모든 순간에 서 있지는 못하겠지만, 내가 서 있었던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판단하건대 작금의 현실은 1980년대 격랑의 시대보다도 더 어둡다. 그 시절 못지않게 공권력에 의한 거짓과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그들의 거짓에 편승하는 이들도 더욱 조직적이고 견고하다. 게다가 북한의 불안한 정세는 끊임없이 이 땅의 민주주의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2014년은 역사적으로 치열한 해가 될 것이다. 난 이 땅의 정의와 민주주의를 외치는 이들의 표정과 이를 가로막는 이들의 모습을 남기기 위해 부지런히 발품을 팔 것이다.
안녕하지 못한 세상, 가족을 안녕을 위해 헌신하련다
셋째, 안녕하지 못한 세상에서 가족의 안녕을 위해 헌신할 것이다.
거의 1세기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시는 부모님과 한창 꿈을 키워갈 아이들과 내 삶의 동반자로 25년 이상 살아온 아내의 행복을 지켜주는 가장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의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내가 꿈꾸던 세상은 이게 아니었는데... 내 젊은 시절보다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가 더 어려울 것 같아, 아이들에게 빚을 진 것만 같다. 그래서 난 2014년을 그 빚을 갚아가는 해로 삼고자 한다.
마지막으로는 끝없는 긍정이다.
할 수 없다. '긍정의 힘'이라는 것이 마약이라고 하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살아가는 길은 끝없이 긍정하는 길뿐이다. 사실 난 '긍정'이라는 단어의 홍수 속에서, 너나없이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고 자신의 힘겨운 삶의 이유를 개인적인 문제로 돌려버리는 현실이 싫었다.
그러나 결국, 내 삶은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없다. 어둠이 지배하는 곳에서도 빛나는 것은 있기 마련이다. 그 빛을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이 빛을 놓치지 않기 위해 책을 읽고, 자연과 호흡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처음처럼, 마지막처럼.'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일출의 순간(알파)에 오메가를 고대한다는 것은 이 둘이 하나라는 상징이다. 일출의 순간과 일몰의 순간의 빛이 같다는 것도 이 둘이 하나라는 상징이다. 반세기 조금 넘은 삶을 살아오면서 느낀 것은 이 순간들이 시간적인 오늘과 내일로 나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을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살아가는 이에게는 모든 날들이 특별하다.
너무 밋밋한 새해계획이지만 내겐 여느 해보다 구체적인 계획들이다. 이 정도의 계획도 이 시대에는 사치인 듯 느껴진다. 바라건대, 대한민국에 속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그저 자기 삶에 파묻혀 살아가도 좋은 세상이 오길 바란다. 그것이 미안하지 않은 세상이길 바란다.
2014년 갑오년은 말의 해, 그중에서도 '푸른 말'의 해라고 한다. 광풍이 지나간 대지에 푸름과 새 생명의 활력이 넘쳐나듯, 청마를 타고 광풍의 시대를 넘어 푸름과 새 생명의 활력이 넘치길 바란다. 그 '청마', 그것은 당신의 마음속에 있다. 그 청마를 길들여 진취적인 기상을 펼쳐가되, 혼자만 달려가지 말고 함께 더불어 달려가길. 그래서 모두 안녕하길!